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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how May 01. 2023

부끄러운, 퇴사

_더 없이 비굴한 탈출기

듣도 보도 못했던 중노동 가운데서도 끝까지 버텨보려 애썼다.

그런 것도 책임감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4월19일, 그보다 한달전에 해서 넘겼던 작업들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자, 나는 더이상 버틸 동력을 상실했다. 퇴사결심의 도화선이 되었던 그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어느날과 마찬가지로 그날도 온몸을 잠식해들어오는 통증을 씹어삼켜가며 주어진 제품 검사 작업에 매달려있을 때, 포장부에서 호출이 왔다. 당황스러움과 불길한 예측을 다독이며 달려갔더니, 이미 한달전에 검수하여 넘겼던 어린이용 식기류에서 엄청난 불량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살펴보니, 성형과정에서 혼입된 먼지나 잡티 등의 이물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고 용기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틀림없이 내가 한게 맞았다.

처음 드는 생각은 이랬다.

하-이런....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정말로 눈앞의 현실에 어리둥절하여 머릿속이 헝클어진 수세미처럼 종잡을 수없게 심란한 순간에도 나는 자동반사적으로 작업의 증거물을 뒤적이며 잠깐이나마 진실이 아니기를 소망했다.


포장부원들이 출고를 위해 박스를 열었는데, 하도 불량품이 나오니까 피곤하고 짜증스런 상태로 나를 소환한 것이다. 당황한 나는 말할 수 없이 착찹한 심정으로, 원인을 따지는 것은 나중이고 우선 바쁘게 불량을 선별하고 제거가능한 이물을 제거하여 그들이 포장작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왔다. 그게 한두 박스가 아니었다.

그 자리에 선채로 불량선별작업을 하면서 머릿속으로 그즈음의 상황을 되감아보았다.

아마 며칠에 걸쳐서 어린이용 식기를 색상별로 다 했으니 물량이 적지 않을 것이었다. 여러 색상이 세트로 구성되기에 색상 구성이 모두 갖추어지는데 한달여가 걸렸던가 보다.



불량선별을 위해서는 기준이 필요하다.

내가 파악한 절대적 기준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용기내부 바닥에 있는 이물은 무조건 불량이다.
용기내부에서도 바닥이 아닌 변죽, 혹은 용기 내부의 벽면이라고 할까, 그 부분에 있는 이물은 칼 등의 날카로운 도구로 제거해도 된다.
단, 티가 나지 않아야 하고 나더라도 최소한이어야 한다.
||용기의 외부면이나 바닥에 있는 이물들도 마찬가지다.
가능한 한 제거되어야 하고 티가 나지 않아야 하며 어쩌다, 아주 미세하여 언뜻 보아 잘 눈에 띄지 않는 이물에 한해서 하나 정도는 있어도 용서가 된다.
|||이바리 역시 처음 제거작업에서 완전히 떨어지지 않고 남아있는 경우가 드물게 혹은 여러 건 있을 수 있는데, 그 역시 최대한 자연스럽고 매끈하게 최종적으로 제거하고 다듬어야 한다.


이러한 절대적 기준에 맞추느라 무척 힘이 들었다.

특히 핑크색이나 아이보리 등의 밝은 색상으로 제작된 용기들은 먼지나 잡티가 너무나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것들은 그래서 더욱 손이 많이 가고 시간도 오래 걸리게 마련이다.

제품에 먼지나 잡티가 많이 들어가는 경우는, 성형담당자들이 초보일 때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성형과정상에서 이물 혼입 우려가 많은데, 경력이 많은 기술자들은 아무리 밝은 색상으로 제품성형을 하더라도 그와 같은 오류가 상대적으로 적다. 어쩌면 그것이 바로 경력이고 기술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성형담당 초짜들이 만들어낸 제품의 검사를 맡게 되면 너나할 것없이 혀를 내둘렀다. 비산하는 섬유 먼지나 점보다 작은 티끌이 수없이 박혀 있곤 했다.

심지어는 머리카락이 그대로 제품의 표면에 박힌 채로 제품성형이 되어 있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그런 것들의 제거작업이 나와 우리 부서원 모두의 할일이다.


문제는 상대적기준이다.

절대적 기준에 맞추는 것은 어쩌면 시간만 충분하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일과시간이 정해져 있고 모든 일은 그 시간내에 최대한 완벽하게 처리되어야 하는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검사부원들은 각자의 기준이 필요했다.

고참들 역시 상대적인 자신만의 기준에 의해 일의 속도를 더했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나는 같은 일을 하더라도 그들의 작업속도가 매우 빠른것을 알 수 있었다.

이물투성이 어떤 작업을 할 때도 나는 3시간이 걸리는 일을 그들은 1시간 남짓이면 뚝딱 해치우는 것이었다. 정말 신기하고 이해가 안 되는 놀라운 작업속도였다.

내가 그 과정에서 버벅대며 꾸물거리는 상황에 대해 대리는 가차없이 한마디씩 했다.

이렇게 느리면 안돼요! 한 제품당 적어도 두시간 이내에 끝내야 해요!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면 피가 말랐다. 아무리 열나게 눈동자를 돌리고 손끝에 쥔 칼날에 힘을 주어도 속도가 나지 않았다. 이토록 잡티가 많은데...

그래서 잠시 쉬는 시간도 점심시간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일에 매달렸다. 속도가 나지 않으니 1분1초라도 고스란히 쏟아부어야만 했다.

오전에는 성형되어 오는 제품들의 이바리제거작업을 거쳐 경화기에 밀어넣고, 순차적으로 완료되어 나오는대로 오후에 검사작업을 하는 것이다. 오후 4시간 정도가 실제 검사에 온전히 투입되는 시간인데 대부분 결코 넉넉한 시간은 아니었다.


어느 순간, 나는 고참들의 작업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우선, 눈앞에 쌓인 제품들 속에서 정품을 골라 내었다. 그리고 불량품중에서도 회생가능한 것들과 바로 폐기되어야 할 것을 구분한 다음, 회생가능한 것들을 본격적으로 검사하며 이물제거 등의 작업을 하는 것이다.

우선적으로 정품을 골라내는 그들의 요령이 눈에 띄었다.

한번에 하나씩 휘리릭 훑어보는 것이다. 그에 반해 나는 꼼꼼하게 하나씩 들여다보는데...

당연히 소요되는 시간이 다르다.

개당 10초씩만 차이가 난다고 해도 10개면 100초, 1분이상씩 시간차이가 누적되는 것이다.


아....! 저렇게 하는 것이구나! 


하나씩 휘리릭 훑어보면서 내 눈에 띄는 이물만 제거하면 된다-이것이 고참들의 기준, 노하우인 것이다.


실제로 또다른 고참, 5년째 일하는 그녀도 이렇게 일러주었다.


하나하나 이잡듯이 뜯어 보려고 하면 하루종일 해도 못하니까, 자기만의 기준을 세워서 훑어보다가 눈에 걸리는 것들만 처리하면 돼요. 그런데 자기 기준은 가르쳐줄 수가 없으니까, 그걸 터득하는게 요령이고 시간이 필요한 것이에요.


아, 그렇구나. 나는 자꾸만 신중하게 들여다보려는 자신을 책망하며 노회한 그녀처럼, 능숙한 고참들처럼 자기 기준을 세우려 애썼다.


바로 그과정에서 나의 불량품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고참들의 말대로 휘리릭- 훑어보면서 내 눈에 띄는 이물 불량을 골라내다보니 시간이 매우 절약되었다. 골라낸 이물불량품들만 꼼꼼하게 보면서 회생시키면 되는것이다. 그래서 시간안에 최대한 처리할 수 있었다.

문제는 나만의 기준이 너무 관대했다고나 할까.

결과를 보자니, 쉽게 말해 너무나 대충대충 검사를 한 것임이 틀림없었다.

왠만한 이물 불량품들이 제외되지 못하고 정품들 속으로 섞여들어가 버린 것이다.


그제야, 자기만의 기준을 세운다는 것이 얼마나
책임감을 수반하는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고참들처럼 따라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자기만의 기준이 완성될 수 없음을 확인했다.
 
그저 시늉만 낸 결과는 이토록 참혹하고 부끄러운 것이 아닌가.

그날 포장부에 소환되어 갔던 경험은 적지 않은 충격이 되었다.

그동안 일을 얼마나 엉터리로 했던 것일까.

단순히 나의 과오로 치부하고 끝날 일인가, 나의 실수로 인해 포장해서 출고되어야 하는 시간이 지연되고, 나는 나대로 오늘 해치워야 할 일을 끝내지 못하니 다른 부원들에게도 도미노처럼 피해가 전가되는 것이 아닌가... 내가 이럴려고 여기 들어왔던가.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다음날, 그 다음날도...
박스에 넣어 넘기며 수량을 기재했는데, 그 수량이 틀렸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100개를 넣었다고 적었으나 열어 보니 97개만 들어 있거나 하는 식이었다.
또 한번은 박스에 넣은 제품의 색상을 잘못 기록한 것이다.
실제로는 '노랑' 인데, 전표에는 '그린'이라고....

하.......도무지 그 3일동안 연속으로 그러한 실수들이
드러나고 탄로나는 상황에 봉착한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어떻게 해야 하나...계속 이 일을 해야 하는가.
버티고 계속 하다가는 회사에 피해를 주기만 하는 것은 아닌가.

주말이 되었고,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월급을 고스란히 받자고 하면 말일까지 1주일은 더 일해야 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이미 깊은 실의와 낙담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꼭 돈을 위해서 마지못해 기간을 채우는 것은 더 못할 일만 같았다.

한편으로는, 앞으로 얼마나 더 지나간 과오가 탄로날 것인지 초조하고 불안하기만 했다.

포장부 담당자가 우리 부서로 들어오기만 하면 심장이 내려앉고 걱정스러웠다.

 


비굴하지만, 나는 도망치기로 결심했다.

마침 4월 24일이면 입사한지 딱 3개월, 수습기간이 종료되는 날이었다.


그래 그날까지만 하고 끝내자, 아무래도 급격히 저하되고 있는 시력과 손관절의 통증과 양쪽 팔뚝의 치명상을 감내해가면서까지, 되풀이되는 실수를 뻔뻔하게 인정하고 뒷수습하는데도 한계가 있다.


미안하고 부끄럽기 한이 없었다.

그럼에도, 아무래도 나는 이쯤에서 수건을 던지는 것이 맞다고 생각되었다.


마지막으로 부장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며칠동안 낱낱이 드러난 나의 과오를 자백하고 더이상 계속 근무가 회사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것 같다며 퇴사의사를 밝혔다.

이는, 부장을 대면하고 퇴사이유를 구구절절이 설명하는 부담을 덜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더 이상의 배려도 나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으니, 이런 사유로 떠날테니 너는 알고나 있으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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