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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how Sep 12. 2024

일상 속으로, 한 걸음

_어머니의 선물, 형제자매들의 마음, 국가의료정책의 진심

9월11일

7월16일께 한국에 왔던 동생이 마침내 제 가족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8월말에 9월 19일행으로 변경했던 비행기표를 다시 바꾼 것이다.


퇴원후 동생과 남편의 배려와 도움 덕분에 나는 잘 회복되고 있기에,

자매들의 병구완으로 집을 비우긴 했으나 안심할 정도까지 돌보려다 보면 한도 끝도 없기에,

두달 가까이 방치되다시피 홀로 지내는 (동생의)남편의 건강과 집 상태도 이제는 걱정되기에...


그동안 동생은, 찜통같은 한여름 폭염 속에서 허덕이면서도

뇌경색후유증과 안정되지 않는 혈압때문에 고통을 겪는 언니의 살림을 대신 살아주느라 애썼다.

그 다음에는 곧바로 3주가 넘도록 입퇴원과정에서 수족노릇을 하며 나를 보살폈다.


돈을 주고라도 사람을 써야할 상황에서도 동생은 오로지 핏줄이라는 이유 하나로, 모든 자신의 일상을 팽개치고 한달음에 달려와 헌신적으로 매달렸다.

막내여서 늘 만만하게만 보이던 쪼끄만 여자아이가 어느새 성큼 내 앞에 든든하게 서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어떻게 말로 할 수 없게 대단한 일을 해내고도 세상 쿨하게 제 가족을 향해 돌아갔다.

감사의 마음으로 목이 메었고 눈물이 또 흘렀다.


오전 9시경 택시를 불러 동생이 공항으로 떠난뒤,

나는 남편과 함께 호흡기내과 예약진료를 받으러 갔다.

여전한 설사상태에 대해 이야기하자, 좀 다른 설사약을 처방해주며

차도 없이 설사가 이어지면 다시 아무 때라도 곧장 진료를 받으러 오라고 의사는 말한다.

아마도 설사는 결핵약 부작용임에 틀림없으나 그 부작용을 일으키는 약은 뺄 수 없는 중요한 약이라 어쩔 수 없이 계속 먹어야 한단다.

어쩌라고...




며칠 전, 뜻밖에도 지난 2월 돌아가신 어머니의 선물이 도착했다.

건강보험공단에서 날아온 우편물이 그것이다.

지난해 급성담낭염으로 병원에 입퇴원을 몇차례 반복하며 썼던 1천만 원 가까운 의료비의 거의 대부분 액수를 돌려준다는 것이다.


연간 의료비 본인부담금에는 상한선이 있는데 그보다 초과 부담했던 의료비를

본인이 사망한 뒤에 돌려주니 상한제사후환급금이라는 명목이다.

우리나라 참 좋은 나라다!


상한제사후환급금이란 과도한 의료비 지출로 인하여 발생하는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하여(진짜로 부담을 줄여주려면 그 당시에 덜 받았어야 맞는 것 아닌가??) 시작된 제도로, 건강보험 가입자가 부담하는 금액 중 본인부담상한액 초과금에 대한 금액을 (금액에 대한 안내문에 따라)환급 신청할 수 있다고 한다.

아마도 어머니가 혼자사시는 동안 본인의 이름으로 건강보험료를 수십 년간 납부했기에 이런 환급이 가능한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이또한 어머니의 선물이 아니겠는가.

돌아가실 때까지도 아픈 손가락처럼 여겼던 둘째 딸에게 보내주신 당신의 마음.

꼭 필요한 때마침 재정적 지원을, 누가 그 일을 억지로 할 수 있겠는가.


안내문에 따라 환급금신청, 대표상속인 지정절차 등의 과정을 거쳐 신청 하루도 안 되어 돌려받은 적지않은 액수의 환급금은 언니의 뜻에 따라 일단 우리 네명의 형제들이 공평으로 나누기로 했다.

그런데, 그다음 언니와 동생은 자기들 몫을 그대로 내게 몰아주는 것이 아닌가....


자매들의 마음에 나는 다시 한번 할말을 잃고 눈물을 흘렸다.


이에 앞서, 내가 수술을 받게 되자 오빠, 언니와 동생 모두 이미 적지않은 액수를 지원해주었다.

수술-입원당시에는 병원비가 얼마나 나올지 모르는 상태일뿐 아니라,

휴직시에 대비하여 어느 정도 도움을 주고자 하는 무한한 배려심의 발로임을 너무나 잘 알기에, 

나는 그들의 마음에 얼마나 뜨거운 눈물을 쏟았는지 모른다.

그렇기에,

또다시, 아무리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다 해도, 어머니가 보내준 선물인가 싶다 해도, 돈 앞에서 그토록 흔쾌하게 행동하기는 누구나에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걱정말고 건강회복에나 노력하라는 모두의 진심 앞에서 나는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살아오며, 나는 그들에게 어떤 도움을 준 적이 있기나 한가...



다행히도, 다행이라고 해야할 지 아닌지 알 수 없으나,

중간정산 확인시 수술과 입원 등 내가 부담해야 할 비용은(공단부담+본인부담 합하여)500만원 넘게 잡혔었으나, 결과적으로 늑막결핵으로 확정되자 (100여만원 남짓 되는)본인부담금액도 최종적으로는 '0'으로 처리되었다. (실제 비용은 국가에서 지원)

그나마 실제로 내가 지불한 것이라고는 열흘간의 입원기간 삼시세끼 식비와 본인부담비 명목의 재료비 삽십만원 정도가 전부.

향후 치료가 종료될 때까지도 나의 결핵치료비와 약값은 계속 '0'이다.

지난해 6개월간의 치료시에도 마찬가지였다.


문득, 우리나라가 결핵치료에 정말 진심이라고 느끼게 된다.

나의 경우, 늑막결핵으로 확진되자 의사가 산정특례대상으로 등록하는 신청서를 제출함으로써 모든 혜택을 받게 되었다.



이제, 나는 일상 속으로 돌아가며
하루하루 상처와 건강회복을 위해서만 노력하기로 한다.
건강하게 다시 일상을 회복하는 것만이
내 형제자매들과 고인이 되신 어머니, 남편과 나를 아는 모든 이들에게
마음의 빚을 갚는 방법이라 여기며.



결핵 치료비는 공공 부담원칙에 의해 지원된다.
결핵산정특례제도란,
오랜 기간 치료해야 하는 결핵치료에 소요되는 고액의 진료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목적으로 만들어진 제도이다. 절차에 따라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면, 국가에서 치료비를 대신 부담하는 것이다.
2016년까지는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요양급여비용의 10%를 환자가 부담해야 했으나, 현재는 본인 부담금이 없다.
이를 통해 환자와 가족은 경제적 부담을 덜고, 환자는 빠르게 회복에 전념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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