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애도와 위로를 보내며.
제주에 도착한 다음날, Y에게 연락을 했다.
"일하는 중이지? 보고 싶어서 연락했어. 언제 시간 돼? 나 제주도야."
2시간 뒤 답장이 왔다.
"언니 그럼 나를 보러 와줄래요"
Y의 아버지의 푸른색 모바일 부고장과 함께.
많이 놀랐다. 냄비 뚜껑이 수증기압을 못 이겨 잔망스럽게 달그락 거리는 가스레인지 옆에서 10분 동안 가만히 Y가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를 들여다봤다. 부고장은 언제 받아도 늘 갑작스러운 것이지만 Y로부터 온 것은 부고장이라기보다는 다정한 편지 같았다. 현실감 제로. 보고 싶어서 연락했고 내일 만나러 와 달라고 하는데 약속 장소가 Y 아버지의 장례식장이라니. 2년 만에 만나는 것치고는 너무 매운맛이었다.
지난 연말 Y의 아버지가 편찮으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었다. Y가 걱정되었지만 목소리로 안부도 묻지 못하고 고작 메시지만 남겼던 게 불과 4개월 전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별 일 없이 그냥 지나가는 4개월일 수도 있겠지만 아마 Y가 보낸 그 4개월은 감당하기 힘들었던 시간이었을 것이라 짐작만 해본다. 힘든 소리 한번 들어주지 못한 채 아버지를 보낸 Y를 생각하니 마음이 심란했다. 그간의 사정을 다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몰랐던 것이 너무 마음이 아프고 슬펐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을 참 쉬운 핑계로 삼고 살았구나. 병원에서 일하는 동안 가족을 간병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수없이 봐왔는데 Y에게는 그 지난한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할 틈도 주지 못했다. 내가 너무 게을렀다. Y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내게 그런 생각하지 말라고 말하겠지만 미안하고 후회스럽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다행인 건 Y를 보러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가뜩이나 노동절과 어린이날로 황금연휴를 앞둔 시기라 항공편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나와는 비교가 안될 만큼 Y와 아주 가깝게 지내던 Y의 친구들이 서울에서 발만 동동하며 티켓 예매창을 끊임없이 새로고침하고 있을 걸 생각하니 나라도 있어 다행이었다. 이때 나는 황금연휴에 합류할 남편보다 조금 일찍 제주도에 가 있었다. 어떻게든 볼 사람은 보는구나 싶었다.
본가에서 며칠 편히 지낼 마음으로 간 상황이라 조문 가며 입을 옷이나 신발 같은 것들이 마땅치 않았다.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그나마 가져간 검정 재킷 하나에 의지하며 장례식장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어울리지 않는 복장이 신경 쓰였지만 Y를 보러 가는 것에만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가슴이 쿵쿵거렸다. 자주 연락하며 지내지는 못했지만 Y에게 가지고 있던 내적 친밀감이 컸던 터라 생각보다 마음의 동요가 컸다. 버스에서 내려 오르막길 끝에 있던 장례식장까지 걸어가는 동안 파랗고 선명한 하늘과 싱그러운 신록을 보면서 숨이 차고 가슴은 두근두근 거리면서도 날이 참 좋다고 생각했다.
장례식장에 도착해서 상주명단에 올라와 있는 Y의 이름을 보니 낯설었다. 조문하러 갈 때마다 지인이 상주인 상황은 잘 적응되지 않는다. 자꾸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향을 피우고 고인께 절을 올릴 때까지는 참을만했던 눈물이 상주 쪽을 바라보며 Y와 눈이 마주치자 울컥 쏟아졌다. 참 뻔한 이놈의 눈물. 그때에도 Y는 어렴풋이 웃어줬던 것 같다. 잘 웃는 Y. 의젓한 Y.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Y.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얼굴을 본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었다. 등 한번 어루만져 줄 수 있어서, 손 한번 꼬옥 잡아줄 수 있어서, 힘들지만 해야 하는 것들을 꿋꿋하게 해 나가는 Y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슬프면서도 다행이었고 좋았다. 장례식장에 가서 음식을 먹을 때마다 어쩐지 잘못 들어간 식당에서 원치 않는 음식을 먹는 것 같은 기분이 늘 들었는데 그날 Y가 내어 준 밥과 국, 반찬들을 천천히 꼭꼭 씹어 먹으면서 처음으로 이렇게 먹는 음식도 맛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장례식장에서 본 지 4일 만에 Y에게 연락이 왔다. 잠시 제주에 머물다 떠날 나를 배려해서 생각보다 빨리 연락을 준 것일 텐데 그 다정한 마음이 고마웠다. 며칠 뒤 Y의 집에서 만나기로 했고, 약속한 날이 왔다. Y의 집까지 1시간 30분가량 산책하듯 걸어갔는데, 집에 가까워질수록 멀리 한라산 백록담이 선명하게 보였다. 제주에 살 때에는 너무 일상이어서 아름다운 줄도 몰랐던 한라산이었는데 오랫동안 이곳을 떠나 지내보니 이런 것들이 새삼스럽게 좋다. 백록담까지 선명하게 보이는 날에는 자꾸 스마트폰을 꺼내 비슷한 사진을 계속 찍고 있는 내가 좀 웃기기도 하지만 좋은 걸 어쩌겠나. 섬 날씨는 종잡을 수 없을 만큼 변화무쌍하고 제주 안에서도 동서남북 또는 산간인지 해안인지에 따라서 차이가 크다. 조문하러 가던 날의 날씨는 참 좋았는데 이후 때아닌 장마처럼 며칠간 한라산에 1000mm 넘는 폭우가 지속되다가 다시 맑아진 지 얼마 되지 않았다. Y를 만나러 가는 날마다 날씨가 좋아서 기분이 더 좋아졌다.
Y가 결혼하고 서울에서 처음 신혼집을 꾸렸을 때 초대받아 간 적이 있었다. 깔끔한 화이트톤에 단출하면서도 취향이 느껴지는 집이었고, 참 Y다운 살림이라고 생각했었다. Y 부부가 제주에 정착해서 살고 있는 지금의 집은 전보다 두 배는 넓어 보였고, 거실 창 밖으로 한라산 자락이 동서로 시원하게 펼쳐져 보여서인지 여유가 흐르는 곳이라고 느껴졌다. Y가 정말 제주에 살고 있구나 한번 더 와닿았다. 그리고 여전히 Y처럼 편안하고 단정하고 따뜻한 분위기의 집이었다. Y가 집 앞 식당에서 포장해 온 부드러운 안심 돈가스를 남김없이 맛있게 먹고, 후식으로 Y가 내려 준 커피에 낮에 사왔다는 레몬 생크림케이크와 길쭉하고 퐁신한 도넛, 내가 가져간 다쿠아즈를 곁들여 천천히 먹었다. 2년 동안 묵혀둔 서로의 이야기를 두서없이 내키는 대로 나눴다. Y의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지만 주로는 제주에서 사는 일상, 재택업무, 키우는 식물들, 최근 읽은 책들, 나의 퇴사와 그 후의 생활 등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끊임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러고 싶었지만 한라산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깜깜해진 밤을 창밖으로 내다보며 아쉽지만 그날의 만남을 파하기로 했다. 데려다주겠다는 Y의 말을 버스정류장까지 함께 가자는 말로 오해한 나는 선뜻 그러자고 했는데 만약 오해하지 않았다면 굳이 그럴 필요 없다고 사양했겠지만 천천히 운전하는 Y의 옆자리에 앉아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더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나중에 또 이렇게 Y의 집에 가게 된다면 또 데려다 달라고 부탁해야겠다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이번이 Y와 오랜만에 만난 것이기도 했지만 우리가 제주에서 만나 같이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수다 떠는 것은 거의 10년 만이었다. Y와 알고 지낸 지도 17년이 넘었다. 그 사이 매일같이 보던 때도 있었고, 만나진 못해도 편지를 나누며 지내던 때도 있었고, 특별한 이유 없이 소원해지던 때도 있었다. 각자의 결혼과 직장 생활로 가끔씩 보며 사는 것이 자연스러워진 채로 주욱 이어졌고, 때마다 안부 묻는 다정함이 내게 없다 보니 연락조차 뜸하게 되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오랜만에 보면 그저 반가울 뿐 심리적 거리감은 없었던 사이라고 한다면 Y도 동감할지 자신은 없지만 여하튼 나는 그랬다. 그래서 더더욱 Y 아버지의 부고장을 받았던 순간을 잊지 못할 것 같다. 게을러서 후회스러웠던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싶다. 어쩌다 별일 없이 생각나면 어쩌다 생각나서 연락했다고 가벼운 메시지라도 보내며 지내야겠다. Y에게 그리고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조금은 더 부지런하게 마음을 전하고 살아야겠다. 그렇게 살기로 마음먹게 해 준 고마운 것, Y로부터 온 부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