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다 달리는 사람이 되었나
2022년 3월, 20대 대선이 끝났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투표를 하기 전까지 상대 후보를 헐뜯기 위해 펼치는 가짜와 진짜 혹은 진실공방을 위한 수많은 말들 사이에서 피곤한 시간을 보냈고, 그 시간의 끝에서 확신의 마음으로 한 후보를 지지했다. 개표방송을 보는 동안 노심초사 하느라 심장이 두근거렸고, 내 마음과 같지 않은 결과를 목도했다. 며칠은 우울해서 종종 울었고, 며칠은 뉴스를 멀리하며 자연인으로서의 하루를 보내기 위해 노력했다. 문득 찾아오는 허탈함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2주를 지냈다. 차츰 외부에 쏟았던 에너지를 나를 돌보는 데에 옮겨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찌할 수 없었던 것들로부터 거리를 두고, 하면 후회는 없겠다 싶은 것을 하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 달리기였다.
달리기를 시작한 것이 처음은 아니다. 2020년 여름과 가을에 걸쳐 6개월가량 했었고, 구체적인 이유는 생각나지 않지만 결국 그만뒀다. 기초체력의 부족으로 두세 번 넘어져서 다쳤고, 날씨가 추워졌고, 운동이란 게 안 하면 편하기는 하니까 이런저런 핑계들을 모아 스스로 납득시켰을 것이다. 그렇게 몸 편한 시간을 보내다가 마음을 달래기 위해 다시 찾은 달리기. 아무리 힘들었던 과거도 지나고 나면 의미가 있었다고 포장되는데, 하는 동안 단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었고, 효능감을 느끼게 해 준 달리기는 어떻겠나. 아무 생각 없이 호흡을 내쉬고 다리를 움직여 앞으로 달려 나가는 것에만 집중하면서 매일의 크고 작은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평생 쌓아두기만 했던 묵은 체지방도 천천히 타들어 가는 것처럼 보였다. 내 무릎관절이 버텨주는 한 달리기를 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거의 2년 만에 다시 달리기를 시작하게 됐고, 새 대통령이 당선되어 지금까지 내가 얻은 유일하게 좋은 한 가지라고 단호히 말할 수 있다.
4월부터 11월까지 봄, 여름, 가을을 보내는 동안 일주일에 적어도 5일은 달렸다. 'Nike Run Club'이라는 스마트폰 앱을 사용해 달리기 추이도 살피고, 한 달에 100km 달리기 챌린지도 하며 힘들지만 즐겁게 달리는 생활을 이어갔다. 12월에 들어서부터는 겨울 한파를 뚫고 집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일상에 녹아든 것처럼 보이던 운동 습관도 일주일만 멈춰보면 안다. 내 몸은 운동하지 않는 편안한 생활에 아주 빠르게 적응한다는 것을. 전처를 밟기에는 그동안 달린 것이 아까워서 막냇동생에게 받은 실내자전거를 매일 40~50분씩 꾸준히 타며 한겨울도 운동하는 사람으로 버텨냈다. 달리기와 자전거 타기 둘 다 힘들기는 매한가지인데 내가 느끼는 운동의 효과는 확연한 차이가 났다. 허벅지 근육이 천천히 차오르고 있을 거라 위로했지만 점점 볼록해지는 아랫배와 몸의 변화를 보면서 다시 달리기를 해야 한다는 조바심이 생겼다. 날이 풀리기를 매일매일 기다렸다.
2023년 2월, 올해는 입춘이 2월 4일로 빨랐다. 봄의 기운이 서서히 돌기 시작했다. 다시 밖으로 나가서 뛸 수 있을 것 같은 날이 왔다. 롱패딩을 입고 달리는 건 너무 불편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달리는 보폭이 크지 않은 편이어서 생각보다 할만했다. 눈이 오거나 너무 추운 날이 아니면 가급적 달렸다. 오랜만에 최고심박수가 170까지 올라가는 것을 확인하면서 ‘그래, 이거다!’하고 쾌재를 불렀다. 2월 초 롱패딩으로 시작해서 플리스로 바꿨다가 지금은 봄가을용 바람막이로 외투의 무게를 덜어냈다. 티셔츠 하나만 입고 달릴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던 내 인생. 어쩌다가 달리기를 시작해서, 이만한 운동이 없다고 달리기 예찬을 하는 사람이 되기까지의 시간들. 물론 그렇다고 내가 달리기를 잘하는 건 아님을 밝힌다. 잘하는 것보다는 꾸준히 한다. 달리기 좀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나는 보통 1km를 7분 후반대에서 8분 초반대를 기록 중이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하는 사람의 기록보다 못할 수도 있겠다 싶어 가끔 자괴감이 스치지만, 사람마다 지구력, 근력, 신체조건 등의 차이가 있으므로 기록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달리기는 그저 하고 안하고의 차이만 있을 뿐, 효과는 명백하므로 속도가 느려도 그냥 꾸준히 달리면 된다고 스스로 결론 내렸다.
요즘은 웬만하면 아침에 달리기를 한다. 아침에 운동을 하면 이후 하루 일정이 어떻든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운동의 효과와 상관없이 아침 운동을 좋아한다. 일교차가 큰 환절기에 실외 아침 운동은 쉽지가 않아서 자꾸 바라게 된다. 해가 일찍 뜨기를, 날씨가 더 따뜻해지기를, 겉옷 없이 나가 뛸 수 있기를 등등 모든 것이 따뜻한 봄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어져 간다. 겨울 지나 봄. 작년 봄에 시작했던 운동을 올해 봄에도 계속하고 있는 내가 되고 싶었는데 그러고 있어 참 다행이다.
언젠가는 무릎과 발목 관절이 체중을 버티지 못해 달리기를 그만둬야 할 때가 올 것이다. 최근 김연수 작가의 장편소설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읽고 든 생각인데, 결국 달리기를 못하게 되는 날을 맞이하는 것이 나의 평범한 미래일 것이다. 그 미래를 상상한다면 달리기를 대체할 운동을 찾는 것이 조만간의 숙제가 될 테지. 달리기만큼 좋은 운동을 찾아 가능한 오래오래 운동을 놓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 그것이 내가 행복하게 사는 길에 가까워지는 방법임을 알고 있다. 내가 지지하지 않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나를 다시 달리게 했으니 세상에 100% 나쁜 것은 없다고 위로를 하며 오늘도 운동화 끈 단단히 매고 밖으로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