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시즈오카 5화
한국인들에게 점령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조용히 제 할 일을 하는 단골손님들이 더 많은 카페가 푸글렌인 것 같다. 나도 그 한국인들 중 한 명이라서 미안한 마음이지만 미안한 마음이라도 가지고 있으니 조금 봐주십시오, 하는 마음으로 간다. 첫 방문이 도쿄에서였기에 당연히 일본이 본점인 줄 알았었다. 특히 목재로 된 벽이나 인테리어 같은 것이 더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었다. 실제 푸글렌의 본점은 노르웨이 오슬로에 있다. '갈매기'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도시인 오슬로는 상당히 심심하고 색채가 별로 없는 듯한 곳이었다. 이미 이룰 것은 다 이룬 노인들의 도시 같았다. 인테리어와 메뉴판, 음악, 모든 분위기를 지구 반대 편까지 그대로 가져오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 이제 와서 보니 테이블마저 똑같았다.
요요기는 카페도 많고 작은 상점들도 많아서 좋아하는 동네다. 궁금했던 빵을 먹으러 '365日'이라는 간판의 베이커리에 갔다. 주먹만 한 빵을 골라 먹고 간다고 하니 반대편 바 자리로 가져다주었다. 한 개를 먹을지라도 정성스럽게 주는 모양새가 좋다.
일본의 지하철 의자를 좋아한다. 여러 사람의 엉덩이가 거쳐 가는 곳이니 천 보다는 딱딱한 의자가 위생에는 더 좋을 듯 하지만 서울 지하철에서 무자비한 에어컨에 차가워진 은색 의자에 앉는 순간은 정말 싫다. 일본에서는 언제나 푹-신- 그 자체다. 앉고만 싶은 생각이 점점 더 커지게 하는 지하철이다.
안녕, 시모키타자와. 내용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소설이지만 따뜻한 동네였던 것 같은 막연한 느낌으로 가 본 동네다. 흐린 날씨 때문인지 즐비한 빈티지 숍들은 아기자기한 느낌보다는 조금 추레해 보였다. 빈티지 옷 고르는 재주가 없는 내 탓 일 것이다. 고독한 미식가를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한 에피소드에 나왔다고 하는 히로시마풍 오꼬노미야끼를 먹으러 갔다. 혼자였지만 가장 푸짐해 보이고 가장 비싼 메뉴를 시켜 천천히 다 먹었다.
일본도 인스타그램이 점령을 하고 있는지 몸을 녹이려 들어간 카페에서는 예쁘장한 음료를 이곳저곳에 놓고 사진을 찍는 여고생들이 한가득이었다. 열에 아홉은 여자 손님이던 이 카페의 사장님은 가게 입구에 이런 글귀를 붙여 놓았다. "Life is parallel to hell but I must maintain". 오늘의 명언이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지하철 환승을 하며 시부야 거리를 잠시 보았다. 도쿄에서의 마지막 날, 나도 오늘의 퇴근을 함께 했다. 드디어 시즈오카로 이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