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시즈오카 4화
혼자 하는 여행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사진이 남지 않는 것과 맛있는 음식을 여러 가지 맛보기가 힘든 것이다. 셀카봉과 가벼운 삼각대의 시대가 오면서 사진은 다방면으로 돌파구가 생겼지만, 음식에 관해서라면 돈이 아주 많아서 넘치게 시키고 남기거나 동행을 구하지 않는 이상 아쉬움을 달랠 방법이 별로 없는 것 같다. 특히 나처럼 처음 보는 사람들을 어려워하는 경우엔 더. 보기만해도 위장이 차오르는 것 같은 두툼한 팬케이크가 꼭 먹고싶어 아침부터 '시아와세 팬케이크'에 찾아갔다. 가장 기본 플레이트가 팬케이크 세 장이나 됐다. 혼자 팬케이크를 먹으며 든 생각은, 혼자서도 팬케이크를 열심히 썰고, 시럽을 붓고, 버터를 발라 음미하는 약간의 뻔뻔함과 최선을 다하는 마음이 서울에서도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오모테산도. 'Blue Bottle' 때문에 매번 오게 되는 동네다. 바로 옆엔 'Cafe Kitsune'와 'Shozo Coffee'도 있어 "도쿄에서 카페 투어를 하겠다!"고 마음먹지 않은 여행자라도 도쿄에서 한 번 쯤은 오게 된다. 서울에서 구글맵에 별을 찍을 때까지만 해도 너무나 가보고 싶었던 곳들은 막상 가지 않아도 아무래도 좋게 되어버린다. 기왕이면 새로운 곳에 가고 싶어서 이번엔 "LATTEST"로 정했다. 이곳의 시그니처 LATTEST는 얼음 없이 찬 우유와 에스프레소로 만든 커피인데 매일 세 잔씩은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카페에서 제이슨 므라즈의 A Beautiful Mess가 흘러나왔다. 느릿한 비트가 좋아서 동네를 걸어다니며 반복해서 들었다.
점심은 카레를 먹기로 했다. 일본까지 와서 일본식 카레가 아닌 인도식 카레를 먹었다. 노란색 네온 간판이 귀여운 'Curry up' (이름도 귀엽다)에서 코트와 목도리에 냄새가 잔뜩 배어버렸다. 이 냄새만 맡으면 사직동 그가게가 생각난다. 양파와 토마토를 잘게 다지고 형체가 없어질 때까지 주걱을 휘젓고 여러가지 향신료를 넣고 나면 온 몸에 카레 냄새가 났었다. 식당이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는데, 덕분에 근처의 문구점인 'PAPIER LABO.'에 갈 수 있었다. 취향은 조금 아니었지만.
여행 슬럼프가 왔다. 워낙에 계획을 잘 세우지 않고 그날 그날 가고 싶은 곳에 가는 타입이긴 하지만 가고 싶은 곳이 별로 없어졌다. 확실한 목적지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체로 길 잃은 사람처럼 우왕좌왕 하거나 마음이 백 번씩 바뀌고 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 이렇게 '열심히' 다니지 않는 이유는 10달 째 백수인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인 듯 하다. 당분간 혼자 여행을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왕좌왕 하다가 결국 또 카페로 갔다. 춥고 혼자일 때엔 선택지가 많지 않다. 'Streamer coffee company'에서 따뜻한 라떼를 마셨다.
일몰을 보려서 시간에 맞춰서 도쿄 세계 무역센터에 갔다. 도쿄타워 뷰는 앞의 건물에 조금 가리지만 전망대 가격도 비싸지 않고 비교적 사람이 많지 않은 편이다. 중간 중간 테이블도 있어서 도시락과 캔맥주를 사와서 저녁 식사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음식물 반입이 되는 줄 알았더라면 미리 사올 수 있었을텐데, 조금 아쉬웠다. 도쿄타워에 오른 적도 있었고, 모리타워 전망대에서 바라본 적도 있었지만 에펠탑처럼 바로 밑에서 보는 것 보단 멀리서 보는게 더 예쁘다고 생각한다. 조명은 한순간에 짠 하고 켜지지 않고 서서히 밝아졌다.
숙소 근처에서 저녁을 해결했다. 오랜만에 간 스키야에서 기무치 규동을 시켰다. 내 기억엔 배추김치를 올려줬던 것 같은데, 파김치가 되어있었다. 좋아하는 돈지루를 추가로 시켰더니 사발에 국이 나왔다. 잔뜩 먹은 파가 속을 긁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그건 벌써 8년이나 전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