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여행의 역사

도쿄에서 시즈오카 1화

by sincerely yours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고등학생 때, 목표 대학은 없었으나 놀고자 하는 목표는 있었다. 동아리 활동을 하는 것과 첫 여름방학 때 유럽 여행을 떠나는 것. 다행히도 하고 싶었던 동아리 활동은 했지만 동아리 활동이 방학에 집중되어 있던 게 문제였다.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오지 못하고 맞이한 1학년 2학기 중간고사 기간. 시험기간 초반에 모든 시험이 몰려 있어 4일 정도의 휴일이 생겼다. 함께 갈 친구를 찾지 못해 첫 자유여행을 포기하려던 찰나, 엄마는 혼자 가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혼자? 해외여행을 혼자?" 그 당시 마지막으로 갔던 해외여행은 중학교 1학년 때 가족끼리 갔던 태국 패키지였다. 너무 오랬동안 인천공항에도 가보지 못했는데, 혼자 여행을 가라니. 그때부터 모르는 사람과 부대끼는 것 보다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고2 때 부터 혼자 영화관에 가기 시작했으니 아주 말이 안되는 것 같진 않았다.


여행사를 통해 2박 3일의 도쿄 자유여행을 예약했다. 여러 옵션 중 가장 저렴했던 상품의 숙소는 신오쿠보의 한인텔이었다. 혼자 비행기를 타는데 어른이 다 된 것 같았다. 도쿄 교통비가 얼마나 비싼줄도 모르고 하루에 6000엔씩 총 18000엔을 환전했다. 신주쿠에서는 도대체 뭘 봐야 하는지 어리둥절해하며 가이드북에 나온 모든 곳을 가려고 다이칸야마에서 오다이바까지 이동을 강행했다. 이것이 내 귀여운 처음으로 혼자 떠난 여행이다. 이 작은 여행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도쿄와 시즈오카를 아우르는 지난 겨울의 이 여행은 퇴사 후의 방탕한 생활을 마무리하는 시간이었다. 네 번째 도쿄였고, 시즈오카는 처음이었다. 사실 후지산을 보고 싶어서 선택한 일본행이었는데 도쿄에 가보고 싶은 카페가 너무 많이 쌓여있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길어봐야 4박 5일이었던 일본을 가장 긴 시간을 내어 간 여행이었다. 혼자일 땐 중간중간 밀린 일기를 쓸 수 있다. 그 때 썼던 일기에 살을 붙여 이곳에 남기고자 한다.



공항에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었다. 가장 좋아하는 팟캐스트 '필름클럽'은 여행지에서 좋은 친구가 된다. 거리를 걸을 때 듣기도 하고, 호텔에서 틀어 놓으면 혼자 있을 때의 적막함이 줄어 들어 애용하고 있다. 팟캐스트에서 소개한 뒤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즐겨 들었는데, 마음이 차분해지는 효과가 있다.


기장의 기내 방송은 언제나 한결같다. 특히 영어로 말할 때에는 특유의 말투와 우루루 빠르게 쏟아내서 제대로 알아 들은 기억이 없다. 정보를 주는 것이 최대 목표가 아니라 해야 하니까 하는 느낌이랄까. 아마 비행 학교에서 이렇게 말하라고 가르쳐주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특히 현지 온도를 말할 때 그 정점을 찍는다.


열아홉, 나리타 공항에서 도쿄 시내로 가면서 헤매던 길을 스물 여덟이 되어서도 똑같이 헤맸다. 나리타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것은 아마 지구상에 있는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방법 중에서 가장 복잡할 것 같다. 반대편 철로에 열차가 지나가 창문이 '덜컹' 할 때에도 똑같이 '움찔'하고 말았다. 9년 전엔 지하철 환승을 하면서 티켓을 다시 사야하는 경우 너무 큰 충격을 받아 티켓 한 장 살 때마다 마음이 쪼그라 들었었는데, 이젠 적어도 교통카드인 스이카로 여유 있는 척은 할 수 있다. 도쿄의 철도 시스템을 탓하는 소심한 여행자다.


퇴사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엔 두둑한 퇴직금으로 혼자 떠나는 여행에서도 호텔을 선택 했지만 퇴직금은 이미 다 쓴지 오래라 캡슐 호텔을 예약했다. 도쿄의 수많은 캡슐 호텔 중 선정 기준은 '2층으로 되어있지 않아서 캡슐 안에서도 일어설 수 있는 높이'가 되는 곳 이었다. '마이큐브 바이 마이스테이스(Mycube by Mystays)'는 구라마에역에 위치하는데, 구라마에는 시내에서 조금 떨어져 있지만 동네가 조용한 편이고 주변에 작은 상점들이 생기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무엇보다 좋았던건 매일 체크아웃을 하지 않아도 되고, 침구도 매일 교체해주었다.


자그마한 캡슐 안에서 요란한 평창 동계올림픽 중계를 보며 내일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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