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이면 책임은 없었으면 한다
울음소리를 처음 들은 건 지난 금요일, 늦은 오후였다. 전날 거칠게 쏟아지던 비가 그치고, 맑게 갠 하늘 아래 나는 헬스장을 가고 있었다. 내가 걷는 보도블록과 바로 옆에 높게 자리한 아파트 단지 사이 작은 풀숲 언덕에서 얼핏 병아리 울음소리 같은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걸음을 늦추며 살펴봤지만 작은 나무가 무성한 언덕 어디에도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뭐, 어딘가에 길고양이가 있겠거니 하고 무심코 그곳을 지나쳤다.
다시 울음소리를 들은 건 같은 날 늦은 밤이었다. 저녁을 해결하고, 잠들기 전 툭하면 떠오르는 술 생각을 털어내고자 산책을 나섰다. 뚜렷한 목표 없이 출발한 산책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익숙한 길목으로 향했다. 그리고 같은 곳에서 역시 울음소리가 났다. 어둠에 잠긴 울음은 아까보다 더욱 크고 서러웠다. 여태 쉬지 않고 운 게 아닐까 싶어 나는 그 언덕 위로 올라갔다.(굳이 설명하자면 나는 아파트 단지로 돌아 들어가서 단지 끝자락의 담을 넘어 언덕 위로 갔다) 그곳엔 넓게 펼쳐진 종이 상자가 있었다. 상자 두 개를 펼쳐 바닥에 깔고, 세 개 정도를 동그랗게 합쳐 세운 형태였다. 그 안엔 분홍색 담요가 아무렇게나 젖어 있었고, 조그마한 사료가 주변에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아주 여린 울음소리 역시 바로 거기에서 울리고 있었다.
소리를 따라 상자가 겹쳐져 가려진 틈을 조심스럽게 열어젖히자 한 손에 들어올 만큼 작은 고양이가 부르르 떨고 있었다. 흰고 검은 고양이의 털은 군데군데 젖어 있었고, 촉촉한 눈동자로 거대한 침입자를 두렵게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그 아이를 그대로 둔 채 집에 돌아왔다. 누군가 아이를 위해 집을 만들어줬을 뿐만 아니라, 사료도 챙겨주고 있었고, 무엇보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예사소리가 아니었다. 그건 분명 어디 있을지 모를 어미를 향한 외침이었다. 혹 어리석은 불청객으로 인해 어미가 아이에게 다가오지 못하고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는 건 아닐지 생각하니 문득 죄책감이 들었다. 고개를 돌려 둘러봤지만, 어두운 언덕 어디에도 다른 고양이가 보이지는 않았지만 내가 사라지고 나면 곧장 아이에게 다가올 어미를 생각하며 나는 얼른 자리를 피했다.
나는 그날 아주 늦잠을 잤다. 내 옆에 자리를 잡고 늘어지게 누워 있는 순덕이도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점심이 지나고서야 나는 문득 고양이가 생각났다. 그 절절한 울음소리가 살며시 떠오르더니 이내 머릿속 가득 울렸다. 노트북에 운동복에, 나갈 채비를 하고 다시 간 그 언덕 위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안경 쓴 남자아이가 한 명 올라가 있었다.(이번엔 나는 곧장 언덕 비탈을 올라갔다) 남자아이는 커다란 어른인 나를 보며 움찔했다.
여기 고양이 있지? 하고 묻자 아이는 내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양이 보고 있었어? 이어서 물었다. 아이는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아이는 무언가 자랑하고 싶은 듯 우물쭈물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얘 제 친구 고양이예요. 원래 치즈도 있어요.
이 새끼 고양이가? 의아한 목소리로 되묻자 아이는 보다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반에 은비라는 친구가 입양한 고양이예요. 나는 아이의 말에 적잖이 당황했다. 당황한 꼴이 나름 기분이 좋았는지 아이는 신나서 이야기했다.
걔가 고양이를 기르고 싶어서 엄마 몰래 입양했는데, 여기서 키우겠다고 이렇게 만든 거예요.
여기, 하고 아이는 상자 한쪽에 삐뚤거리는 글씨를 보여줬다.
“고양이 집입니다. 목요일에 데려갈 거니까 만지지 말아 주세요.”
너희 몇 학년이니?
4학년이요. 아이는 뿌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분명 그것이 자못 어른스러운 행동이고, 나름 자랑거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모두 드러난 얼굴이었다.
얘는 암컷이에요. 마치 제 고양이 인양 남자아이는 자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 역시 내 안의 감정을 쉽게 숨기지 못했다.
이게 애들 장난도 아니고. 날 선 중얼거림에 일순간 남자아이의 얼굴이 굳었다.
울음소리는 어제보다도 지쳐 있었다. 어미는 애초에 이곳에 없다는 것을 밤새 고양이는 깨달은 것 같았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어미를 찾는 것보다 살려달라는 것에 가깝게 들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고양이가 마실 물이 전혀 없었다.
얘 물은? 없어?
어…… 모르겠는데……. 남자아이는 당황해서는 한 걸음 물러났다. 이건 은비가 한 거라……. 아이는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클 때까지만 키운다고 했어요…… 9월이면 6개월은 된다고…… 그때까지만 키운다고……. 목소리는 작아지고 내가 허락만 한다면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눈치였다.
조금 있으면 장만데 여기서 어떻게 키우니? 하지만 어른스럽지 못한 나는 울컥해선 괜히 은비가 아닌 은비 친구를 나무랐다.
나는 생각했었다. 애당초 나에게는 아무런 책임도 없다고. 그러니까 내가 누군가로부터 짊어진 책임이란 걸 애당초 존재하지 않으니 어리석게 보람찰 일도 없고, 또 어리석게 죄책감에 젖을 일도 없다고. 아주 쉽게 나는 마음의 집착을 덜어냈다고. 그리 생각했었다. 하지만―우스꽝스럽지만― 나는 내가 애플 워치가 없는 것에, 그런 남자친구를 만나는 애인의 감정에 씻을 수 없는 책임감을 느꼈다.
진호도 애플 워치 좀 사서 쓰면 안 돼?
그럴까. 얼마 남지 않은 통장 잔액을 따져가며 더는 미루지 않겠다 결심하고 산 애플 워치가 배송 온 날, 나는 실시간으로 그녀에게 자랑하며 아이폰과 연동해봤지만, 그 무렵 내가 쓰던 낡은 아이폰6와는 연동이 되지 않았다. 애초에 나란 놈과 애플 워치는 연결될 수 없었던 것이었다. 멋쩍게 다시 정리해 애플 워치 상자를 서랍에 넣어둘 때 그녀가 느꼈을 감정에 나는 유난스럽게 책임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녀와 헤어지고 마음을 정리하며 나는 깨달았다. 관계를 맺는 순간 온갖 것들이 내게 책임으로 쏟아진다는 것을. 인연이 생기는 순간 나는 부단히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그녀와 헤어지고 뒤늦게 중고 아이폰 11을 사 서랍에 묵혀두었던 애플 워치를 꺼내 연동하면서. 분리수거장에서 스티로폼을 챙겨 새끼 고양이의 새 보금자리를 만들면서. 나는 생각했다. 아주 사소한 사물(事物)에도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책임감에 대해. 또 어리석고 어린 사람의 빌어먹을 무책임함에 대해.
동그란 컵에 사료를 넣고, 다른 한 컵엔 물을 담아 새끼 고양이의 앞에 두었다. 물을 손가락에 묻혀 고민하는 고양이의 입술에 툭 댔다. 새끼 고양이는 입술을 할짝거리더니 조심스럽게 물컵에 다가와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잠깐 바라보다가 물컵을 새로 만든 스티로폼 상자에 넣었다. 고양이는 눈치를 살피더니 이내 스티로폼 안으로 들어가 물을 마셨다. 한참을 마시고는 더는 울지 않고 스티로폼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리고는 그만 저 구석으로 들어가서는 새근새근 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날 저녁 다시 언덕 위에 가보았을 땐 새끼 고양이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물과 사료로 봐선 내가 떠나고 나서도 얼추 챙겨 먹은 것으로 보였다. 조용히 기다려봤지만, 이따금 쌩하고 차가 지나갈 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 상자와 물컵을 그대로 둔 채 언덕에서 내려왔다. 며칠만 그대로 두고, 며칠 뒤에도 그 고양이가 없고, 물컵과 상자가 그대로라면 그때 치워야지. 인연이 떠난 자리에 남은 책임은 천천히 정리해야지 생각하면서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