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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호 Jun 23. 2021

XXXIV

선(善)의 이면



    1.

     순덕이도 엄청 뛰어다니는데……

     공원을 어슬렁어슬렁 산책하는 고양이 영상을 보면서 생각했다. 검은 고양이는 하네스를 하고 영상을 찍는 주인을 따라 걸었다가 멈췄다가 걸었다가 멈췄다가를 반복하며 산책을 했다. 나무를 킁킁거리고, 흙바닥에 벌러덩 눕는 것을 보며 나는 노란 줄무늬의 순덕이를 그렸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꼬리를 세우고, 정강이에 얼굴을 쓰다듬으며 애교를 부리는 순덕이를 잠깐 지켜보고 있다. 아이가 정말 귀여워요. 어쩜 이렇게 애교가 많아…… 원래 얘가 특별해요. 산책도 좋아하고 할퀴지도 않고 간식 주면 앉아, 도 돼요…… 나는 누워 영상을 보면서 괜히 순덕이를 자랑할 상상을 하니 마음이 흥분됐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덕이는 내 옆에 누워 햇볕을 쬐며 나른한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하네스를 샀다. 폭신한 조끼처럼 된 진회색의 하네스였다. 나는 택배 봉투를 찢어 하네스를 꺼내자마자 곧바로, 역시 가만히 졸고 있는, 순덕이의 가슴에 얼른 입혔다.

     영문도 모른 채 낯선 느낌에 잠에서 깬 순덕이는 어기적거리며 일어나더니 무게중심을 잃고 픽 쓰러졌다. 그러더니 기이한 동작으로 일어나서는 뒷걸음질 치며 낯선 하네스를 벗어내려 안간힘을 썼다. 그 모습이 그것대로 참 귀여워 나는 스마트폰을 들고 영상을 찍었다. 순덕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며 낑낑 울었다. 유독 촉촉하고, 미간이 처진 눈을 보니 퍼뜩 죄스러운 마음이 일어 하네스를 벗겼다. 그러자 그릉, 소리와 함께 베란다 밖으로 도망쳤다. 멀찍이 도망치고 나서는 날카롭게 얇아진 홍채로 나를 바라봤다.

     처음엔 다들 불편해하는데, 결국에 익숙해지면 잘 움직이는 아이들도 있어요…… 하는 블로그 리뷰를 보며 적응기가 필요하니까 어쩔 수 없지, 하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입힌 것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순덕이는 가볍게 뛰어 올라오는 침대도 올라오지 못하고 고꾸라져 바닥에서 씩씩거리고 엎드려 있었다. 나는 그런 아이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우연히라도 마주 보는 날엔 끼잉, 하고 우는 아이의 바람대로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건 일종의 교육이었다. 처음에 낯설고 불편하고 억울하지만 결국은 적응하고 편안하고 재밌는 일이 될 거라고. 어떻게 된 영문인지 도대체 알 수 없다. 내가 싫다는데. 꼭 그런 얼굴을 한 순덕이는 그 후로도 몇 번이고 하네스를 착용해야 했다. 하지만 결국엔 순덕이가 아예 움직이길 포기해 나도 그만두게 되었다.



    2.

     진호야 그 사람이 너 개새끼로 생각하나 보다.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던 형은 대뜸 말했다.

     자기 눈에 보기 좋다고 강아지한테 옷 억지로 입히는 아저씨들 있잖아. 그게 자랑이라고 사진 찍어 자랑하고 그러잖아. 꼭 그런 식이네, 너 대하는 게.

     형의 말을 듣자 정말 개새끼가 된 것 같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치욕스러웠다.

     나는 대부분의 이야기를 작은형에게 공유하는데 그건 고등학생 때부터 시작된 유대감이었다. 그는 어떤 이야기를 해도 그래도 너는 참 대단하다, 하고 나를 칭찬하곤 했다. 정말 무슨 이야기를 해도 말이다. 이번엔 나는 안경을 사주겠다 강권하는 P 이야기를 했다. 지금 쓰고 있는 것도 비싼 거예요, 하는 점잖은 거절에 얼만데 그거 얼만데 말해봐, 하는 고집스러운 물음에 관해서. 정말 괜찮아요, 하는 정중한 거절에 나 말했다 분명히 말했어, 하는 무례한 위협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듣던 중 형은 자연스럽게 우회전하며, 그거 네가 제일 싫어하는 거 아니야? 하고 미소 지었다. 이내 8차선 도로가 펼쳐졌다.

     좋은 일이라고 함부로 행동하는 거. 너 존나 싫어하잖아.

     아니, 마치 내가 좋은 일해주는 거니까 너는 감사합니다, 하고 고개 숙이라는 것 같잖아. 아냐?

     그는 대답 없이 미소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나는 문득 생각이 났다. 하네스를 끼우던 내 모습을. 나 역시 다른 이를 고집스럽게 괴롭히는데 누가 누굴. 나 역시 나의 고집을 선행으로 착각할 때가 있었다. 좋은 건데 왜 싫어해. 그런 생각. 제기랄. 세상엔 온통 그런 생각을 하는 놈들밖에 없었다.

     실제로 선한 행동을 할 때마저 스스로 행동거지를 경계하는 것은 조용한 작은형뿐이었다. 형은 단지 남을 위하는 마음이 있다고 떳떳한 태도를 가지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것이 되는 것을 끊임없이 경계했다. 친절을 베푸는 순간마다 상대방이 불쾌함이나 비참함이 느끼게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형은 자신의 행동이 불쌍해서 돕는 게 아니라 소중해서 아끼는 것이 될 수 있도록 부단히 스스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런 형에게 신나게  티끌이 아닌 남의 들보나 비난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드니 이미 쏟아진 말이 모두 부끄러워졌다.

     그래도 대단해 너는. 끝까지 점잖게 말하고. 형은 역시 나를 칭찬하며 말을 끝냈다.

     나는 입을 굳게 닫고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3.

     나는 산책을 포기했고, 하네스는 옷장 깊숙이 들어가 있다. 대신 하네스에 거는 목줄은 바깥에 나와 있다. 기다란 줄은 더 이상 순덕이를 옥죄는 목줄이 아니다. 단지 그것은 순덕이의 재밌는 사냥감이다. 휙휙 휘저으면 가만히 졸던 순덕이는 몸을 바짝 엎드려 사냥 준비를 하고, 잠깐 꿈틀거리다가, 신나게 달려든다. 휙, 휙. 비록 그 용도로 산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아이가 즐거워하는 물건이 됐다. 어쩌면 선한 마음의 결과물은 결국 이런 모양이어야 한단 생각이 든다. 뭐랄까, 본연의 모습이 가진 고집을 버리고 나서, 초심만 남겨 새롭게 보이는 형태랄까.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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