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쥐어도 행복했던 시절은 이길 수 없다.
나는 피자를 좋아한다. 치즈 피자나 페퍼로니 피자를 콜라와 함께 먹는 걸 좋아하는데 핫 소스나 피클은 좋아하지 않는다. 영종도에 들어와 아버지는 피자가게를 열었는데 그로부터 몇 년 전 치킨집을 그만둔 이후로 다시는 장사를 하지 않기로 어머니와 한 약속과는 다른 처사였다. 어린 나로선 여간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피자 종류에 따라 토핑을 하고, 오븐에 구워지는 피자를 들여다보며 피자를 만드는 일은 내게는 재밌는 놀이였다. 가끔 치즈 오븐 스파게티도 만들었는데 그건 면을 삶고 소분(小分)하는 일부터 요리하는 것까지 모두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도우를 펴고, 완성된 피자를 자르는 것만은 가르쳐주지 않았다. 손목도 아픈 일이고. 그런 건 아들내미가 아무리 즐거워해도 고된 노동인 것이 분명했을 테니까. 이제 와 생각하면 철없이 재밌다며 일하는 아들을 보면 어미 마음에 죄스러움 같은 게 느껴졌을 것 같기도 하다. 가끔 내가 아버지 옆에 앉아 TV를 보며 피자 상자를 접는 것만으로도 두 사람은 충분히 미안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때가 그립다.
오랜 친구인 Y는 그런 우리 가족 모습을 기억한다. 학원이 끝나면 그는 피자가게에서 TV를 보고 있는 나를 찾아와선 부모님께 꾸벅 인사를 하곤 했다. 그 역시 피자를 좋아한다. 우리는 지금도 자주 피자를 사 먹는데, 그 역시 우리 어머니가 해주던 피자가 정말 맛있었다며 그리워한다.
작년 Y는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의 속사정을 모두 이야기할 순 없지만, 정규직 계약만 믿고 있던 회사에서 아무런 소득 없이 나와야만 했고, 오랜 연인과 헤어졌다. Y는 학창 시절을 후회했다. 유난히 공부를 열심히 했던 것이 어리석었다고 토로했다. 학교에서 손꼽히는 수재였던 Y는 그때와 다른 자신의 처지가 억울하다고 했다. 그런 와중에 7년 된 연인에게도 미안함이 있었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녀와 데이트 비용을 충당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넉넉지 않았기에 데이트 자체가 비루해졌고, 그런 만남이 그로선 여간 죄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었다.
가끔 그녀가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집에 데려다주었고, 가끔 그녀는 그의 집에서 저녁을 먹고 TV를 봤다. 나는 그녀가 아르바이트가 끝나기 전까지 그와 있거나, 그녀가 그의 집에서 나와 집으로 갈 때 함께 그의 차를 얻어 타기도 했다.
그는 그녀와 결혼 이후를 생각했다. 그녀와 10년 가까이 만난 그에게 그녀와의 결혼은 응당 해야 하는 것이었고, 그렇기에 예비 신부인 그녀 앞에서 자신의 모습이 더욱 초라해 보였을 거다. 크리스마스이브엔 조금씩 모은 돈 100만 원을 감염병 사태로 힘들 그녀에게 생활에 보태라 건넸는데, 그녀는 받을 수 없다며 거절했다. 아마 나로서도 그런 돈은 받을 수 없었을 것 같다고 Y에게 말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말에 그녀는 Y에게 그만 만나자고 말했다.
밖에 서서 기다리던 Y를 집으로 데려온 그녀의 부모님은 그녀가 잠시 여행을 갔다고 생각하라며 다독였고, 조금만 기다려보라고 했다. 그는 그녀의 집에서 섦에 울었고, 언제나 하악질을 하던 고양이는 조용히 그의 발목에 머리를 톡 가져다 댔다. 하지만 집에 돌아온 그녀는 역시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Y는 지금까지의 삶이 모조리 후회된다고 말했다.
아무리 좋은 사람을 만난다고 해도 어린 시절에 멋모르고 함께 했던 때를 기억하는 사람보다 나을 수 있을까? 나는 지친 Y에게 그런 말을 건넨 적이 있다.
순덕이도 내가 피자 먹는 걸 좋아하는데, 얘는 피자 상자에 묶여서 오는 이 노끈에 환장하거든. 다른 끈도 많지만 이만큼 좋아하는 것이 없어. 제대로 된 놀잇감이 아니긴 한데, 어쨌거나 순덕이한텐 엄청 재밌는 일이니까.
뭐가 좋은 건지 알 리 없잖아. Y는 피식 웃었다.
어쨌든 뭐가 좋은 거고 뭐는 구린 거다 하는 가치판단이 없을 때의 추억은 필살기 아니냐? 같이 있는 게 좋아서 무엇이든 놀이가 됐던 사람을 좋은 걸 가지고 놀게 해주는 사람 따위가 이길 순 없는 거야. 아무리 좋은 걸 받아도 서로에게 서로 같은 사람은 없는 거라고. 나는 어쩌면 그녀와 Y가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그리 위로했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그녀에게 사실 다른 남자가 생겼었다는 것을 알았다. 크리스마스에도 그녀는 그 남자를 만났었다는 말에 Y의 돈을 받지 않은 그녀의 마음이 더럽게 느껴졌다. 너 때문에 아르바이트까지 해가면서 제주도 여행을 한 게 분통하다 Y가 문자를 보내자 한참 뒤에 그녀에게선 50만 원 보냈어, 하는 잔인하게 식어버린 답장만 돌아왔다.
그래도 그녀도 네게 조금 서운했던 게 있지 않았을까? 하고 괴상한 위로를 할까 고민했지만 나는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올해 Y는 단단해졌다.
힘들어하던 Y는 마음을 다잡고 취업 학원에 등록했고, 열심히 준비한 기업 공채에 서류 탈락을 했다. 때마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고, 농구도 하곤 했지만, 그 나름대로 마음을 다잡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며 가만히 지켜보았다. 가끔 집에 와서는 글을 쓰는 내 옆에서 헤드셋을 끼고 교육 영상을 봤다. 가끔은 애니메이션도 봤다. 어쨌든 그렇게 준비한 공채에 떨어졌지만, 여전히 그는 꿋꿋이 취업 준비를 했다. 그렇게 수개월이 지나고, 며칠 전 Y는 굴지의 기업에 인턴이 되었다. 요즘은 공채 채용에도 최종 면접 이후에 인턴을 반드시 한다는데, 나는 그저 그렇구나 하고는 고개를 끄덕이고 축하해주었다. Y는 벌러덩 누운 순덕이를 쓰다듬으면서 고맙다고 말했다. 순덕이는 손이 닿는 방향에 따라 몸을 뒤집었다.
뭐 먹을래? 나는 물었다.
글쎄, 피자 먹을래? Y는 말했다.
좋지.
순덕이도 알아들은 건지 그릉, 하고 몸을 일으키며 우리를 번갈아 쳐다봤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