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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게 대해줄게요

이환희, 이지은 <들어봐, 우릴 위해 만든 노래야>

by 햇볕 냄새

2주 전 오랜만에 만난 대학 친구가 그랬다.

“ OO아, 너는 결혼하지마.”

“왜에? 나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니가 그런 얘기 할 줄은 몰랐어.” (이 친구는 스물 일곱 겨울인가, 내 여자 동기들 중에서도 거의 제일 빨리 결혼했으니까. 그리고 내 눈을 믿어보자면 친구 남편은 좋은 사람이었으니까.)

“남편은 좋은 사람이지만, 일도 결혼생활도 둘 다 잘 하긴 너무 어려워. 그리고 내가 꿈꾸던 인생을 사는 친구가 둘 있는데, 그 중 한 명이 너야. 나도 계속 공부하고 싶었거든. 그러니까 너는 계속 하고싶은 공부하면서 살아도 좋을 것 같아. 그게 아님 본인이 집에서 살림해도 괜찮다~ 하는 남자 만나서 둘이 자유롭고 재밌게 사는게 어울려.”

“어? 근데 난 좋은 사람 만나면 결혼할 건데^^”

“좋은 사람 만나기가 어렵잖아. 그리고 너는 다 주는 타입이잖아. 근데 상대 남자는 안 그럼 어떡해. 똑같이 다 주는 그런 남자 별로 없단 말이야.”

(애는 나 연애하는 거 많이 본 적도 없으면서 ㅡㅡ; 근데 반박을 못하겠어..)


그리고 일주일 뒤, 나보다 아홉살이 더 많지만 늘 “ 샘은 친구야. 난 나보다 어리다고 생각하지 않아. “라고 말하는 또 오랜 친구를 만났다. 이 친구는 “ 만두가 먹고 싶으면 혼자서라도 만들어서 먹는 샘 같은 사람이 혼자 잘 살수 있어. 샘은 결혼 같은 거 안하고도 잘 살 수 있는 사람이야. 외로워도 사람한테 별로 기대지 않잖아. “라고 했다. 음… 아… 십년, 이십년 지기라는 사람들이 다들 왜 이러는 건가. 나는 나이 먹었으니 적령기 맞춰서 결혼해야한다(사회적으로 말하는 적령기는 이미 한참 지났다.)는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평생 혼자 살겠어!! 라는 마음도 없다. 그리고 혼자 시간을 잘 보내지만, 누군가와 일상을 공유하고 가끔 힘든 순간엔 기대고싶은 마음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안보인다니 ㅜㅜ


나를 잘 아는 가까운 사람들임에도 남들이 보는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나는 꽤 간극이 크다. 어쩌면 그들이 나를 더 정확히 보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내 생각보다 더 독립적인 인간인지도. 하지만 한편으론 내가 연인이나 미래의 짝꿍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는, 어쩌면 운명의 반쪽 같은 사람을 찾는 이상주의자여서 그런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과는 나누지 못하는 것을 공유하고, 내 가장 내밀한 속내와 감정, 약해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어딘가에 있을 거라는 믿음. 모두에게 다 털어놓지 않고 그를 위해 남겨두고 싶은 부분이 있으니까. 그래서 남들 눈엔 씩씩하고 쿨해 보이는지도. 사실 내가 생각해도 파고 파고 들어가면 궁극의 씩씩함은 있지만 전혀 쿨하지도 않고, 외로움도 잘 느끼고, 불안과 긴장도도 높은 사람이라 어떻게 다른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지가 신기할 따름이다.



“ 우리 만나 볼래요? 귀하게 대해 줄게요. “

그날 저녁 서점에서 출판 편집일을 하는 부부가 쓴 글을 엮은 책을 읽었다. <들어 봐, 우릴 위해 만든 노래야>

세상을 떠난 남편이 살아 있을 때 써놓았던 글을 찾아 읽으면서 그 순간의 기억들을 불러내 편지로 남겨놓은 아내의 마음. 책에는 두 사람의 첫만남부터 이별, 애도의 시간들이 녹아있었다. 이렇게 애틋한 사람이 떠나다니.. 게다가 함께 한 시간도 너무 짧잖아. 결말만 생각하면 되게 슬픈데, 이상하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두 사람이 서로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그리 슬프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순간이 더 많았다. 이런 때에도, 또 이런 때조차 서로를 위하고 웃을 수 있다는 거지.. 이지은씨, 참 복 많은 사람이네.


이런 사람과 만나서 이런 결혼생활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손을 덜덜 떨면서도 자신을 좋아하느냐는 물음에 바로 “네”라고 답하며, “우리 만나 볼래요? 귀하게 대해 줄게요.”라고 말하는 사람을 상상해봤다. 친구가 맨날 너는 귀한 사람이라고 해줄 땐 그 친구의 종교 때문인지 그 말이 그렇게 간질하게 와닿지 않더니, 왜 이걸 인쇄된 활자로 읽는데 이렇게 마음이 덜컹.. 하는 거야. 손을 떨었다는 게 왜 더 매력적인 건지 ㅎㅎ



함께 있으면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되는 기분

글만 봐도 이환희씨는 이미 충분히 좋은 사람인데, 아내를 만나 자신이 점점 더 괜찮은 사람이 된다고 썼다. 같이 있을 때의 내가 더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고, 내가 더 좋아지도록 만드는 관계. 음.. 참, 좋네.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 <형태뿐인 사랑>에는 사고로 다리를 잃은 배우(구미)와 그녀에게 의족을 만들어주는 남자(아이라)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가 나온다. 남자는 어느날 사람이 왜 어떤 이는 사랑하고 또 다른 이는 사랑하지 않는 걸까, 생각하다가 사랑이란 상대의 존재가 나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게 해주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다. 밝게 웃는 여자를 보며 자신 곁에 있을 때의 그녀가 가장 쾌활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는 것이다. 그리고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모든 면을 볼수 없다면, 최대한 밝고 좋은 면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그늘 속의 뭔가를 말하고 싶은 그런 때는 자신에게 이야기하라고 말한다.


음.. 나는,

좋은 일이 있을 때 맘껏 기뻐해줄 수 있는 사람도 되고 싶지만, 꼭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슬프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내가 되면 좋겠다. 좋은 건 누구와도 나눌 수 있지만 반대는 그렇지 않을 거니까. 내가 뭐 엄청 위로를 잘 하는 타입도 아니고 문제 해결에 뾰족한 수가 있는 그런 사람도 전혀 못되지만.. 그냥 그런 순간에 함께 있고 싶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서로 귀하게 대해주고

힘든 때 그 곁에 있고 싶은 사람 만나서 결혼할 건데

왜 자꾸 다들 나보고 혼자서 잘 살 수 있는 사람이라며

비혼을 장려하는 건가,

정작 두 사람 다 행복하게 잘 살고 있으면서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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