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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볕 냄새 Aug 21. 2022

스트레스 저항력이 좋은 사람

스트레스 지수는 나쁘고 저항력은 매우 좋음

나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인가?

우선 물리적인 환경 자체에 대한 민감도는 높지 않다.

인도 여행 갔을 때 에어컨이 나오지 않는(여름이었음) 3등석 기차 맨 꼭대기에서 24시간 동안 지내야했는데, 잘 때면 땀이 줄줄 흘렀지만 스트레스보다 꼭대기 층에 누워서 사람들 구경하는 게 재밌었다. 들어가자마자 바퀴벌레와 인사를 해야했던 이름만 호텔(?)인 곳에서도 침낭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자버렸다. 물론 나도 쾌적한 걸 선호하지만 필요하다면 꽤 열악한 상황을 견디는 게 그리 힘들진 않다.


소리도 좀 둔감해서 그로 인한 스트레스는 별로 없다.

옆집도 종종 부부싸움하는 소리까지 들리지만 그러려니ㅡ 어릴 때부터 한번 잠들면 소리를 잘 못 듣기도 했고, 또 고등학생 때부터 자취를 했기에 늦잠 자면 깨워줄 사람이 없어 거의 텔레비전이나 불을 켜놓고 자는 버릇이 생겼다. 그래서 잘 때 소리나는 것이 거슬리지 않고, 사실상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로 지낸다. 이건 다 좋은데 일할 때 옆사람이 하는 얘기를 잘 못듣는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결국 학교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비공식적인 소식을 가장 늦게 아는 사람이 된다. 내가 알면 모두 다 안다고..


육체적인 감각의 민감도는 낮아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별로 없지만, 인간 관계에서는 스트레스를 꽤 받는 편이다. 우선 부탁을 잘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뭘 잘 시키지도 못하며, 여러 사람의 의견을 수합하거나 조율하는 등의 일을 할 때 며칠 전부터 스트레스를 받는다. 또 학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뭔가 설명해야 할 때, 소수 인원은 괜찮은데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해야 할 때, 그런 순간이 너무 싫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며 어지러울 지경. 그래서 단체 메시지를 보낼때 고심하고, 이 문구를 써도 될지 말지, 지금 보낼지 아닐지를 고민한다. 그런 내가 맡은 업무가 교육과정부 부장 교사라니, 올해 스트레스 지수가 역대급으로 나온 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거다.



스트레스 검사의 원리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손발에 무슨 선을 연결하고 잠시 누워 있어야 했다. 건강 검진을 받기 시작한 이후 스트레스 지수가 높게 나온 건 처음이었다. 늘 스트레스가 없고 저항도도 매우 좋다고 나와서 이상하다 했었지. 나는 내가 스트레스를 꽤 많이 받는다고 생각했기에. 근데 생각해보면 직장 외의 삶에서는 그다지 큰 고민이 없었다. 장기하 노래처럼 난 별 일 없이 살고 있다. 근데 올해 맡은 업무가 내 성격과 잘 안맞는 거다. 교육과정부의 부장 교사를 맡게 되었을 때 모두가 “ 복직하자마자 힘든 일 맡았네요. “ 라고 했다. 근데 그냥 공문을 많이 만들고 특별한 프로그램을 짜고 그런 건 그래도 괜찮다. 모두가 생기부 작성 때문에 힘들어하지만 나는 생기부에 대한 심적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못하는 일은 아니니까. 내가 힘들어하는 건 메시지 보내는 것, 다른 교과나 선생님들과 시수며 과목들을 조율하고 의논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나는 혼자 계획하고 연구하고 뭘 써내라면, 뭐 어떻게든 해낼거라고 생각하는 반면, 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갈등 상황의 중심에 내가 있다고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고 겁이 난다.


그나마 스트레스 완화 방법은 알고 있어서 다행인가.

나의 스트레스 완화 방안은 ㅡ


우선 (단체로) 사람을 덜 만난다.

사람을 싫어하진 않지만, 만나면 또 신나게 잘 놀지만, 횟수가 잦으면 방전ㅡ 육체적 피로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방전되어서 혼자 충전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지면 혼자 동네 도서관 가서 박혀 있는데, 들어가서 한 시간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나에게 일주일에 약속은 한두번이 적절.. 단둘이 만나거나 이런 건 괜찮은데, 친목도모를 위한 단체 모임이 많아지면 급격히 피로감을 느끼고 말수가 적어진다. 그래서 5인 이상이 모인 그룹에서 나를 만난 사람과 4인 이하의 그룹에서 나를 만난 사람은 무척 다르게 느낄 것이다. (소그룹일 땐 수다쟁이^^)


잠을 많이 잔다.

난 이불킥을 많이 하는 타입이지만, 그건 모두 잠들기 전의 분노와 후회일 뿐.. 자고 일어나면, 대부분 잊거나 어떻게든 되겠지! 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화나거나 슬프면 일부러 잠을 자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그리고 눈 뜨면 배고프고, 아주 본능에 충실해지면서 지난 일은 어쩔수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그것에만 집중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게 보통 운동인데, 내 경우는 단체 종목보다 혼자 할 수 있는 운동이나 원데이 클래스를 수강하는 것이다. 이래서 내가 그렇게 그릇 만들기, 요리, 그림 그리기 등을 배울때 힐링되나보다. (금요일엔 학교에서 애들과 도장을 만들었다. 이름 새기고 파고,, 또 내가 제일 신났다!) 요즘 내게 그건 롤러 스케이트ㅡ 초보이기 때문에 넘어지지 않으려 자세만 신경 쓰고 있어서 딴 생각이 없다. 운동이든 만들기든 육체를 쓰는 활동을 해주면 스트레스가 줄어든다.


편하게 다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

사람을 덜 만나는 게 스트레스 해소 포인트 중 1번인데, 아주 친밀감을 느껴서 편하게 얘기하고 시시덕거릴 수 있는 사람은 만나줘야 한다^^ 개학하고 부서 업무가 뭔가 더 어렵게 돌아가서 짝꿍 하샘이 “ 샘은 왜 안 투덜거려? 차라리 구멍을 쫌 내. “라고 했다. “ 어, 일단 개학하고 너무 바빠서 그런 거 생각할 틈이 없었어. 근데 딱히 잘못한 사람도 없는데 누구한테 투덜거려? 그냥 상황이 이렇게 된 건데.. “ 그러자 감동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 나한테라도 해야지. “

이런 고마운 사람. 샘한테 왜 투덜대냐고 하면서도 나는 곧 교육청에서 왜 이런 공문 보내서 힘들게 하는지 모르겠다며 교육청 폭파시켜버리고 싶다고 투덜댔다. 근데 또 그 말만으로 기분이 쫌 좋아졌다. “ 에이, 약해. 그런 말투에 그 표정이면 하나도 투덜대는 느낌 아니야. “ 라며 맞장구 쳐주니까 더ㅡ 나는 화나고 억울할 때 누가 대신 욕해주거나 나보다 더 화내주면 그것만으로 괜찮아진다. 그러니 내 기분을 풀어주는 법은 “괜찮을 거야”가 아니라 “뭐 그런 인간이 다 있냐?”에 가깝다. (근데 진지하고 깊게, 또 길게 상대방 뒷담화를 하는 건 별로 원하지 않는다.) 이걸 잘 해주면 상황은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는데, 내 마음은 180도 달라져서 기분이 풀린다. 이렇게 기분 나쁜 거 슬픈 거 다 그대로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은 만나서 힐링을 좀 받아야 한다. ( 아주 오랜 친구들은 “ 뭐? 우리가 뒤에서 돌 던져줄게! “라고 하는데, 진짜 그럴일은 없지만 나는 그렇게 조금은 가볍고 웃기고 장난같지만 공감이 담긴 말을 좋아한다.)


사소하지만 기분 좋고 웃을 수 있는 일

요새 점심 도시락 먹으면서도 모니터 보고 있어서 누군가 “ 우리 인간적으로 밥 먹을 때는 일하지 맙시다. 기분 좋게 좋아하는 연예인 사진이라도 보면서 먹어요! “ 라고 했다. 그 말에 “ 누굴 떠올려야 기분이 좋아질까요? “ 했는데, 강태오, 박서준, 박보검.. 등의 답변이 들려왔다.

으음…(눈 크고 선 굵은 얼굴이 잘 생겼다고 생각해본 적 없어서) “ 전…  요샌 우영우에 나오는 강기영이요!! “이라고 말해버렸다. 그러자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하샘이 너무나도 나긋한 목소리로 “ 이말년은 어때?? “ 라고 했다. 다른 샘들은 모두 거긴 공감 못하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근데 나는.. 아, 어쩜!!!! 선생님! 내가 요즘 침착맨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았어요?? 하고 또 신이 나버렸다. “ 응. 그냥 좋아할 거 같았어. 뭔가 장항준이랑 비슷하잖아. “ 둘이 비슷한가? 몰라, 그런 건 모르지만 난 침착맨과 김풍, 주호민 콤비의 만담을 들으며 ㅋㅋㅋㅋㅋ 웃는다. 그래서 그날은 일적으론 힘든 날이었지만 웃으면서 점심을 먹었다.

하하하^^

가장 쉽고 자주 기분이 좋아지는 건, 이런 사소한 순간들이지. 일은 힘들지만 교무실 사람들은 좋다.


나의 스트레스 저항도가 높은 이유 ㅡ

사소한 것에 금방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

좀 전에 있었던 일은ㅡ 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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