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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볕 냄새 Sep 28. 2022

외로우면 외로움의 색이, 행복하면 행복의 색이

고양이의 가르릉 소리처럼

퇴근하고 문을 열면 고양이는 나를 향해 자기 머리를 자꾸만 들이민다. 빨리 쓰다듬으라고. 나는 평소엔 외롭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는데, 역시 퇴근 후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올 때면 뭔가 허전함을 느낀다. 아, 이것만은 어쩔 수가 없는 건가. 그럴 때마다 내 뒤를 졸졸졸 따라다니며 자꾸 머리를 들이미는 이 녀석이 없었다면 내 하루가 꽤 쓸쓸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면

가르릉 가르릉 소리가 들린다.

나는 그 소리로 이 녀석이 지금 편안하구나,

기분이 좋구나, 내 손길을 좋아하는구나, 알아챈다.

그럼 내 마음도 덩달아 편안해진다.

너도 지금이 좋은 거지?

알려줘서 고마워.


그리곤 사람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상대의 마음이 궁금할 때, 대놓고 묻지는 못하지만 나와 함께 있는 게 편안하고 즐거운지 알고 싶을 때, 아니면 지금 슬픈 건 아닌지 오늘 힘든 일이 있었던 건 아닌지 마음이 쓰일 때, 우리가 이 고양이들 같아서 가르릉 소리로 서로의 마음 상태를 바로 알 수 있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애써 기분을 살피지 않아도 좋은지 슬픈지 알 수 있으면 좋겠다고.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오래 전에 본 <흔히 있는 기적>이라는 일본 드라마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지하철역에서 자살하려던 한 남자를 막은 두 남녀의 이야기가. 언젠가 스스로도 자살을 생각했던 두 사람이 죽으려는 한 남자를 구해내면서 시작되는 이야기가.


수많은 장면 속에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건, 남자 주인공 쇼타가 들려주던 켈트족의 옛날 이야기였다. 켈트족이 사는 바닷속이나 땅속 큰 마을에는 외로운 사람도, 괴로운 사람도, 약한 사람도, 비겁한 사람도, 차가운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물론 행복한 사람도. 그럼 우리가 사는 이곳과 똑같지 않느냐고 묻는 여자에게 쇼타가 말한다. 여기서는 외로움이나 괴로움 같은 게 안보이지만, 그 곳에서는 잘 보인다고. 슬픈 사람에겐 슬픔의 색이, 외로우면 외로움의 색이, 행복한 사람에겐 행복의 색이 나타난다고.

- 여기서는 안보여
- 뭐가?
- 외로움 하고 괴로움 같은 게
- 그러네...
- 전부 쉬는날에 놀러온 사람들이니깐...
- 다들 행복할까?
-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 마을에서는 사람들의 인생이 잘 보여
- 어떤식으로?
- 외로운 사람은 외로운 색이,
   행복한 사람은 행복한 색이,
   슬픈 사람에게는 슬픔의 색이
- 그건 너무하네
- 그래도 그런 마을이라면 나만 슬프다고 생각하며
   살아가진 않겠지. 어째서 이 마을에서는 슬픔의 색.  , 외로움의 색이 보이지 않는걸까? 나만 힘들다고
   나만 외롭다고 생각하게 되는걸까.
                          ㅡ 드라마 <흔히 있는 기적> 중에서

이 이야기를 들으며 상상했다.

우리의 감정이 그대로 다 드러나는 그런 세상은 어떨까ㅡ

여자의 말처럼 너무하다.

사회적 가면에 익숙한 우리들은 당황할 것이다.

때론 솔직함이 상처가 되기도 하니까, 속마음은 안그렇다 해도 배려라는 걸 해야 할 때가 있으니까, 아마 모든 감정이 그대로 다 드러나는 사회는 지옥일 거다. 남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마음까지 다 보여서 비참하고 때론 잔인할 수도 있겠다. 그렇담 고양이들처럼 가르릉 소리가 나지 않는 게 다행인지도 몰라. 가르릉 소리가 편안과 행복을 나타낸다면, 머리를 쓰다듬어도 그 소리가 안들릴 땐, 어? 기분이 안좋은가? 걱정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주인공의 마음은 이해가 된다.

우리가 다 비슷하다는 걸 알 수 있어서 위로가 되겠지.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 (이런 걸 생각하면 SNS를 많이 하는 건 아주 높은 확률로 외로움을 더해줄 것 같다. 다들 행복하고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어 보이니까ㅡ)




행복한 사람은 행복의 색이, 외로운 사람에겐 외로움의 색이, 슬픈 사람에겐 슬픔의 색이 드러나는 세상은 첫 상상만큼 따뜻하진 않았다. 하지만 아주 가까운 사이에선 옅은 색이라도 이런 게 보였으면 좋겠다. 그럼 같이 기뻐해주고, 위로해주고, 응원해줄텐데ㅡ


그래서 나는 살짝 티를 내주는 사람이 좋다.


오늘은 힘든 하루였으니 그냥 안아줘,

난 이런 순간에 기분이 좋아져,

이런 말은 상처가 돼,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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