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킹한 인생이 힘든 록커
20대 후반 일본어를 열심히 공부하던 때,
그 공부를 열심히 하게 만들었던 장본인인 밴드 spitz의 보컬 쿠사노 마사무네. 나는 spitz의 팬카페에 가입해 있었는데(아, 비록 눈으로만 읽는 유령회원이지만 내가 유일하게 가입한 팬카페였다!) 어느 회원의 봉사심 덕분에 쿠사노 마사무네가 쓴 일기를 읽을 수 있었다. 그것으로 일본어 공부도 하고, 이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 것일까.. 이런 연구도 하는 거지^^ - 연구자의 연구 대상이 꼭 학문적인 것만은 아닌 것..^^;;
그런데 깊이 알게 되었을 때 실망스런 사람과 알수록 더 좋아지는 사람이 있다면, 마사무네는 후자에 속했다. 일기를 읽으면서 늘 더 좋아졌지, 한번도 더 싫어졌다거나 한 적이 없었다. 무슨 과자를 먹었는데 맛있었다거나, 감의 계절이 왔다거나 하는 아주 흔한 일상을 적어놓았을 때조차도 그런 일상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란 게 좋았고, 단어의 미묘한 차이나 쓰임에도 관심을 가진다는 게(나는 이게 아름다운 노랫말로도 표현되지만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것과도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옷도 잘 안사고 음식도 직접 해먹고 컵도 재활용해서 쓰는 검소한 사람이란 게 좋았고(나는 물욕이 많으면서 좋아하는 스타는 검소한 게 매력이라니 ㅋㅋㅋㅋ 모순적이지만, 나는 존경하고 배울 점이 있는 사람을 좋아하므로^^), 팬들에게 선거 참여를 독려하고 정부의 대의명분에 의문을 품으며 선거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라 좋았고,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중쇄를 찍자> 같은 거)를 같이 좋아한단 게 또 좋았고, 몇 십년간 최고의 밴드로 인기를 누리면서도 첫마음을 잊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이라서, 같은 멤버들과 30년 넘게(이제 35년이 되었나보다) 밴드 활동을 할 수 있는 그런 한결같음이 좋았다.
ㅡ 여기까지 쿠사노 마사무네 예찬론 ㅎㅎ
그리고 한 가지 더ㅡ
많은 사람들이 그를 이름처럼 초식남(쿠사노:草野 - 이름부터가 '초야'라니, 모두 그는 타고난 초식남이라고)이라고 생각하고, 아름다운 노랫말 때문인지 시인이나 화가의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내면에는 록커의 강렬함이 있다는 게 매력이다. (노래 가사를 시적으로 쓰고 또 대학은 미대를 나왔으니 시인이나 화가의 이미지도 틀린 건 아니다.)
오늘은 잠시 한가한 틈을 이용해 정말로 오랜만에(최소 4년은 넘었다!) 팬 카페에 들어가 그의 일기를 읽었다. 그 중 <꿈을 향해?>라는 제목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또 역시.. 하며 고개를 끄덕끄덕였다.
오늘 읽은 일기에는 여름 휴가를 이용해 고향 후쿠오카에 들렀을 때 친척들이나 지인들에게 사인을 해준 일화가 적혀 있었다. 스스로를 밴드맨이라 부르는 마사무네는 밴드맨은 사람들이 사인해달라고 할 때가 좋은 때이므로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하고 있으나 난처한 점이 하나 있다고 했다. 친척 중에서 학교 선생님의 부탁으로 아이들에게 "꿈을 향해 힘내!"라던가, "내일을 향해 날개짓을 해라!"와 같은 메시지를 적어달라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아, 나도 선생님이지만.. 선생님은 왜 이런 문구를 부탁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좀 더 근사하고 멋진 응원의 문구, 아님 기발하고 재미있는 문구를 떠올릴 수는 없는 것일까나, 하고 마사무네의 곤란함에 공감했다.) 하지만 마사무네가 난처함을 느낀 건 이게 재미가 없고 뻔한 것이어서가 아니라, 그가 음악을 하는 이유와 반대 지점에 있기 때문이었다.
저_ 죄송한데요.
그런 것에 맞서기 위해 음악을 시작해놔서...
No future! , Destroy!!의 정신을 근본으로 가져가고 싶어요! 아니아니, 이제 어른이니 그런
꽉 막힌 소리 하지 말고 그 정도는 그냥 써 드려,
라는 마음의 소리도 있긴 하지만,
역시 내일을 날개짓 해버리면
내가 내가 아닌 게 될만큼 큰 문제란 말이죠.
꿈을 향해 힘내라, 라고 쓸 때는
밴드맨을 그만둘 때입니다.
그래서 "무리하지 말고 즐겨라!"라는 등의
느슨한 메시지를 함께 적어주고 있습니다.
록킹한 인생도 힘들어요.
이 일기를 읽고 마사무네가 느낀 난처함이 어찌나 실감이 나던지 ㅋㅋㅋㅋ 록킹한 인생도 힘들다는 마지막 말에서는 웃음이 나왔다. 나는 스핏츠의 노래를 들으면서 저항정신 같은 걸 생각해본 적이 없지만 스스로에게 그는 언제나 록커였던 것이다. (내겐 언제나 청춘의 아련함, 무모함, 쓸쓸함, 달콤함.. 늘 어딘가를 달리고, 하늘을 날고 이런 가사만 들려서 마사무네의 의도와는 조금 딴판으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전에 동생의 친구 중에 일본인 부부가 있어 만난적이 있는데, 그때 남편은 "노래는 역시 오자키지!(오자키 유타카)"라고 하고 부인은 "오자키는 불량한 느낌이잖아. 노래는 역시 스핏츠지!!"라고 했다. 이 말을 마사무네가 들었다면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이쪽도 만만치 않게 불량스럽고 싶은데, 아니 어쩌면 가죽 자켓에 오토바이 타고 다닐 것 같은 오자키보다 내면은 더 할지도 모르는데.
내가 나로 살아간다는 것_
우리나라 가요에서 이런 가사를 본 기억은 별로 없는데,
일본 노래에서는 이런 표현을 종종 본다. 심지어 불량스럽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오자키 유타카의 곡 중에는 <내가 나로 있기 위해서>라는 제목의 노래도 있다.(또 딴소리지만, 이 노래도 좋다.) 스피츠의 노래 중에서는 데뷔곡인 <종달새의 마음>이 이와 비슷한 느낌을 전해준다. 이 곡에서 마사무네는 앞으로 어떤 장애물이 있어도 강하고, 씩씩하게 살아가자고 노래한다. 그게 음악을 하는 그의 첫마음이었다. 당시엔 이렇게 성공할 줄은 몰랐겠지만, 그런 것에 관계없이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을 잃지 말고 굳세게 살아가자는 이 노래가 지금도 ‘이제 나이도 먹을만큼 먹었는데, 이 정도는 그냥 해주지’를 가로막고 있는 저 밑바닥의 진심이 아닐까. ㅡ 역시 멋있어!
http://blog.naver.com/ydy2489/221087474424
僕らこれから強く生きていこう
行く手を阻む壁がいくつあっても
両手でしっかり君を抱きしめたい
涙がこぼれそうさ
ヒバリのこころ
우리 이제부터 강하게 살아가자
앞길을 막는 벽이 아무리 (많이) 있어도
양손으로 꽉 당신을 끌어안고 싶어
눈물이 넘칠 것 같아
종달새의 마음
예전에 팬들 사이에서는 미스터 칠드런과 스핏츠의 이미지를 비교해놓은 표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두 밴드는 데뷔도 비슷했고, 인기도 1,2위를 다툴 정도로 비슷해서 자주 비교 대상이 되었다.) 당시 자매님은 미스터 칠드런의 사쿠라이를 좋아했고, 나는 스핏츠의 마사무네를 좋아해서 서로 누가 더 멋있냐를 두고 경쟁하기도 했으나.. 시간이 지나 동생이 변심했다. 스피츠 노래가 더 좋네. 노래도 마사무네가 더 잘 부르는 것 같아. (오예~ ㅋㅋㅋㅋㅋ)
이 비교를 읽으며 두 사람의 이미지가 떠올라 깔깔깔 웃었다. 콘서트때 관객들에게 엄청난 호응을 유도하며 그 스스로도 자신의 노래와 공연에 취해버리는 것처럼 열정적으로 땀 흘리는 사쿠라이와, 즐겁지만 어딘지 모르게 조용히 노래하고 '도모 아리가또'하고 내려오는 마사무네가. 이 비교표는 원래 더 길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끝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먼 미래에 우리가 우주 여행을 할 수 있을 때, 우주에서 사용가능한 볼펜이 없다면 미스터 칠드런은 어떻게든 연구와 개발을 해서 일명 우주용 볼펜을 만들어낼 사람들이고, 스피츠는 그냥 연필을 들고 갈 사람들이라고.
그래서 나는 미스터 칠드런보다 스피츠를 더 좋아했다. (나는 사회 선생이지만, 성가시기보다 조금 미적지근한 사회선생인지라 ㅋㅋㅋㅋㅋ) 그런데 꿈을 향해 힘내라 대신 무리하지 말고 즐겨라~ 라는 느슨한 메시지를 전하면서 정작 아주 열심히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사람들이라니.
내가 나로 살아간다는 것이
미래를 위해 달려라, 화이팅!! 보다 열배, 백배는 어려운 것일지도. 그래서 저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웃음도 주면서 어딘지 모르게 찡.. 하기도 해.
정작 본인은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작은 것 하나도 의식하고 애쓰고 있잖아?
그 일기는 후쿠오카의 한 노포에서 먹은 우동이 맛있었다는 딴소리로 끝이 났다.
아, 좋다. 결말은 가볍고 따뜻하게^^
기억을 더듬어보니
딱 한번,
덜 좋아질 뻔(?)한 적이 있었네.
한국 배우 중에선 김태희를 좋아한다고 했을 때, 조금.. 왠지 모르지만 배신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ㅋㅋㅋㅋㅋㅋ 왜 내가 배신감을 느끼지? 생각했는데, 음.. 너무 미인을 좋아하니까 어쩐지 이질감이 든달까. 당연한 것인데도, 마사무네는 다른 남자들과 다를 줄 알았는데... 이런 느낌? 마사무네는 이상형일 뿐이었으니까 괜찮아 하면서도 괜히 김태희가 부러웠더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