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을 너무 고집하지 않기로
언제부터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필 나이트의 <슈독>을 읽은 뒤였던가ㅡ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을 본 뒤였던가ㅡ
모르겠다.
이 모든 것은 내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들이었다. 또 모두 엄청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는 것들이다. 난 슈퍼 히어로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자서전이나 자기 계발서는 다 뻔한 얘기여서 재미 없다고 멀리 했었다. 어릴 때 말이다. 그래서 나란 인간은 나이를 먹고 세월이 지난 게 다행스럽다. 아니었다면 얼마나 편협한 채로 있었을지 ㅠㅠ
나는 취향을 좀 타는(?) 사람이었다. 문학에도, 영화에도, 음악도 확실히 끌리는 것과 안끌리는 게 있었다. 이게 과거형인 이유는 이제는 좋아하던 것이 바뀌기도 하고, 옛날 같았으면 안봤을 것들에서 감동과 인사이트를 얻어서 나도 내 취향을 잘 모르겠다^^;; 싶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면 취향은 이상형만큼이나 부질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생각도 못했던, 범주 바깥의 어떤 것에 푹 빠져버리는 경험을 해본 사람은 알거다. 또 나는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잘 모를 수도 있었다. 응, 그랬다.
돌이켜보면 내게 특정한 취향이 정말로 있었던 것인지, 내 스스로 그런 취향이 있다고 생각해서 강화해버린 탓인지 도 모르겠다. 아마도 후자의 영향이 더 크지 않을까. 나는 자기만의 취향이 있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은 건 정말로 좋은 게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내가 내 취향이라고 생각했던 것 덕분에 좋았던 것도 분명 있었다. 어떤 것에 빠져버릴 수 있었고, 내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고, 그래서 결국은 어떤 것에 대해 조금은 더 깊어졌다. 그러고보면 사랑이 생각이라는 정지우 작가의 말처럼 취향도 생각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취향이라 생각했던 것 때문에 놓쳐버린 것들도 있었다. 확고한 이상형 때문에 좋은 사람을 놓치는 사람들처럼. 지나고보니 취향이 있으면서도 개방성이나 유연성을 갖추는 것이 좀 더 필요했다. 나는 어쩌면 ‘취향’이라는 이름으로 내 세계가 더 넓어지는 것을 가로막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른바 자기 계발서로 분류되는 책들,
어린 시절 나는 이런 책들을 싫어했고, 속으론 쫌 오만한 생각도 품었다. 이런 말 누구는 못해? 누가 몰라서 안하는 줄 아나, 이런 생각을 했다. 풋…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 그지없다.(알면서 안하는 건 더 문제지 안그래?ㅡㅡ)
그리고 자서전ㅡ
난 자서전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은 채 멀리했었다. 그러다가 나이키 사장님이 쓴 <슈독>을 읽고 받은 충격이란.. 그 책은 내게 그 해의 책이었다. 한 사람의 인생이 이리 재미있다니! 재미도 재미였지만 곳곳에서 얼마나 생각해볼꺼리가 많았던지.
또 제인 오스틴의 책과 마블의 히어로 영화들ㅡ
어린 시절 가졌던 그 고정관념을 깨어준 스파이더맨ㅡ
난 내가 스파이더맨을 보고 울면서 나올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최근에 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도)
그런데 둘 다 아주 좋았다. 그냥 슬퍼서 운 게 아니라, <코코>를 봤을 때처럼 내 마음 속에서 뭔가 해소되는 게 있어서ㅡ 슬프지만, 또 기쁘고, 아름다웠다.
결론은
내 취향이 아니어도 좋은 것이 너무 많았다.
아무 생각없이
아, 좋구나!
덧)
그러나 무용한 것을 좋아하는 취향은 계속 간직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