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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볕 냄새 Apr 22. 2024

자신을 지킨다는 것

정지혜, <정순>

정순,

나이는 정확히 모르겠다. 결혼을 앞둔 딸이 있는 걸로 봐서 오십대 중후반 정도? 남편은 없고 혼자 살고 있다. 과자 같은 것을 포장하는 식품 공장에서 일하며, 잘못된 건 한마디라도 하고야 마는 성격이다. 안쓰러운 사람도 그냥 못봐 넘긴다. 길가의 노숙자가 죽었을까봐 흔들어 깨우기도 하고, 잠을 깨운 자신에게 욕을 해도 노숙자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슬며시 미소지으며 도망치는 사람. 공장에 새로 온 남자 직원이 어리바리해 보이자 일을 도와주고, 하나뿐인 딸이 한번뿐인 결혼식을 예쁘고 근사하게 했으면 좋겠어서 잔소리를 하고, 반찬을 챙기는 보통의 엄마.


그녀는 그런 친절함과 다정한 성품 때문에 일이 꼬인다.


공장에 새로 온 그 남자,

돈도 없고, 무릎도 다쳤대고, 나이도 있는데 젊은 작업반장에게 무시당한다. 주말에 동료들과 함께 떠난 등산, 술에 취해 토하는 남자를 챙겨주다 두 사람은 함께 드라이브도 가고 모텔에서 잠을 자기도 하는 사이가 되었다. 회사에서 작업반장에게 당한 일을 서로 위로해주며 두 사람은 그렇게 가까워진 듯 하다. (공장에 나가면서 입술을 바르고 화장을 고치는 정순의 모습이 귀엽다. 나이가 들었다고 마음까지 다 늙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그 남자는 같은 마음이 아니었던가보다. 정순이 속옷만 입은채 자신에게 노래 불러주던 영상을 회사 작업반장에게 공유하고(그것도 그 작업반장 무리에 끼기 위해서) 그렇게 정순의 인생은 하루아침에 곤두박질친다. 얼굴 한번 본적 없는 사람들도, 직장 동료들도, 심지어 딸의 회사 동료들까지 정순의 영상을 돌려보며 이 아줌마 좀 보라며  수근수근 낄낄댄다.


수근거림의 실체를 확인한 정순은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남자는 연락두절이 되었다. 상견례를 앞둔 딸은 남자친구에게 사실을 말하고 결혼을 미뤄도 괜찮다며 경찰서에 신고를 했다. 정순은 바보같이 그런 놈에게 마음을 주고 영상을 찍도록 허락한 자신이 너무 싫다. 그래서 집안에 얼굴이 비치는 모든 것을 가려버리고 하루 종일 이불을 뒤집어쓴채 누워만 지낸다. 그 와중에 그 나쁜놈은 찾아와 사과란 걸 한답시고는 호적에 빨간줄 그이면 자긴 어떡하냔다.

(아, 나쁘다 못해 정말 찌질한 XX)



“그만하면 되었어,

없는 사람한테 손해배상받는 것도 그렇고.“


유포된 동영상이 삭제되고 가해자들이 반성문을 썼다고 하자 정순은 딸 몰래 고소를 취하하고 사건을 종결지어버린다. 딸은 그런 엄마를 이해할수 없어 소리지른다.


그런다고 그 놈들이 고마워 할줄 아냐, 더 만만하게 본다. 가만히 있으면 내가 알아서 할 건데 왜 그러냐.


그때 정순은 그만하면 되었다고ㅡ

알아서 할테니 제발 가만히 있으라며 화를 내는 딸에게 정순은 울부짖으며 소리친다.


내 일이잖아. 그놈하고 놀아난 것도. 동영상을 찍은 것도. 다 내가 한 일인데, 왜 네가 다 알아서 하고 나는 가만히 있어야 해! 내 일인데.. 내 일이잖아.. 엄마.. 엉엉


딸은 엄마가 당한 일에 엄마 이상으로 분노하고 발벗고 나섰지만, 결국 그 일은 정순에게서 시작하고 정순에게서 끝이 나야했다. 그리고 정순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벼랑 끝까지 몰아부치지 못하는 성정을 지녔다. 누군 답답하고 바보같다 할지 몰라도 그게 정순이라는 사람이었다.


어영부영 사건이 마무리되고, 정순은 운전면허 학원에 다니며 새로운 삶을 준비한다. 이제 괜찮은 줄 알았다. 하지만 도로주행을 나간 날 우연히 영상을 유포한 작업반장 무리를 발견하고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여버렸다. 깔깔깔 떠들어대며 길을 건너는 그들. 여전히 심장이 두근거리는 정순. 무리를 쫓아가보니 그 남자도 작업반장과 함께다. 그순간 정순은 전혀 괜찮지 않다. 가슴은 두근거리고, 숨이 막혔다. 영상은 삭제되었지만, 그만하면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녀의 마음은 아직 그렇지 않았던 거다.


자신이 마음을 준 남자의 실체, 영상을 유포한 작업반장 무리의 실체를 확인한 정순은 쉬고 있던 회사에 나간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태연하고 당당하게. 그런 그녀를 마주한 동료들, 특히 작업반장과 그 남자는 당황하며 그녀를 못본체 하려 한다. 하지만 그녀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작업반장과 싸운다. 유포된 영상 속 노래를 부르며 마치 미친 사람 마냥 속에 있던 분노를 터뜨리고 회사를 나선 정순은 핏기 없는 얼굴로 딸에게 전화를 건다.


“나 좀 데리러 와”



정순을 보며 누군가는 그러게 왜 오지랖을 부리고 친절을 배풀었냐고, 왜 그런 남자를 만났냐고, 그런 영상은 왜 찍어서 빌미를 제공했냐고 탓할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일이 정순의 잘못인가?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정순의 행동은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고, 사람을 잘 믿고, 사랑에 빠지고.

그런데 이런 일이 벌어지니 모두 정순을 탓하는 것 같다. 정순 자신 마저도.


하지만

남자의 실체를 확인하고 돌아서는 그 와중에도 정순은 노숙자에게 자기 옷을 벗어주고 걸어온다. 아니 그럴 정신이 있냐, 너가 그러다가 이런 일 당하지 않았냐 하겠지만 정순은 그런 나쁜 일을 겪고도 자신의 친절하고 따뜻한 본래 성품을 잃지 않았다. 너무 호구같고 물러터지고, 아무에게나 잘 해주고 그래서 그런 일을 당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친절함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을 그렇게 바라볼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그 일은 자신을 무너뜨릴 수 없다는 것을.


다산 정약용의 큰형님이 세상에 지켜야 할 것은 오직 자신뿐이라는 뜻으로 서재 이름을 ‘수오재’라 지었다고 한다.


자신을 지킨다는 것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정의하긴 어렵지만,

바로 정순 같은 사람이 최악의 상황에서도 자신을 지켜낸 사람이 아닐까.


덧) 평생 처음으로 극장에 관객이 나밖에 없었다. 이 영화를 좀 더 많은 사람이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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