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안소니 밍겔라, <잉글리쉬 페이션트>

by 햇볕 냄새

사랑의 종착지는 무엇일까? 결혼인건가? 하지만 각종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보듯 결혼했다고 해서 더 사랑하는 것도, 헤어지지 않는 것도, 다른 사랑에 빠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영원한 사랑은 보장할 수 없지만 사랑하는 상대와 결혼하는 것과, 불가피하게 이별하지만 마음 속에서 영원히 사랑으로 기억되는 것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물론 결혼하고 함께 하면서 영원히 사랑할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잉글리쉬 페이션트> 는 진정한 사랑, 삶과 죽음의 의미를 한 남자의 '기억’과 ‘이야기’를 통해 보여준다.



때는 2차 세계대전 종전 무렵_

한나(줄리엣 비노쉬)는 연합국측의 간호병이다.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친구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절친한 친구를 잃는다. 그것도 바로 눈 앞에서. 방금 전까지 자신을 위로하며 농담을 하던 친구가 죽는 것을 목격하고 절망한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죽는다며, 스스로를 부정하는 그녀는 거의 죽을 것이 확실한 환자와 함께 빈 집에 남기로 한다. 이쯤 되면 그녀도 딱히 살겠다는 의지가 없다. 그녀에게 맡겨진 남자는 ‘잉글리쉬 페이션트(영국인 환자)’라 불리는, 자기 이름을 포함해 국적, 신분까지 모든 기억을 잃었다고 알려진 중증 화상 환자다. 그는 자신을 돌봐주는 한나에게 힘겹게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것은 한 남자와 여자의 사랑 이야기였다.

잉글리쉬 페이션트라 불리는 바로 그 남자, 알마시(랄프 파인즈)와 캐서린(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의 짧았지만 사실은 길고 긴 뜨거운 사랑 이야기. 캐서린은 이미 결혼한 상태였지만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다. 그 사실을 안 그녀의 남편은 분노에 차 두 사람에게 복수하려다 오히려 본인이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고, 캐서린은 다리를 다친다. 사막의 동굴속에 그녀를 피신시킨 알마시는 며칠만 버티면 꼭 데리러 오겠다는 약속을 한뒤 구호 요청을 하러 떠나지만,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겨우 사막을 건너온 그가 독일군 스파이로 몰리면서 결국 그녀는 홀로 죽음을 맞게된다. 차갑고 어두운 동굴 속에서 자신을 기다리다 죽어간 캐서린, 그녀를 살리지 못했다는 괴로움에 더해 자신 역시 사고로 심각한 화상을 입으며 지금의 영국인 환자가 된 것이었다. 알마시의 긴 이야기가 끝난 뒤, 자신의 죽음을 부탁하는 그에게 한나는 모르핀을 투여해주고, 알마시는 캐서린이 남긴 편지를 들으며 죽음을 맞는다.


한나는 처음엔 죽어가는 그를 살리려 애를 썼다가 마지막엔 직접 모르핀을 투여하여 그가 죽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처음 알마시와 단둘이 남기로 했을 땐 그녀 역시 삶을 포기한 상태였으나, ‘킵’이라는 인도인 군인을 사랑하게 되면서 다시 웃음을 되찾는다. 알마시가 죽은 뒤, 어디론가 떠나는 그녀의 표정은 한결 밝고 편안하다.


알마시는 그저 자기 사랑 이야기를 해준 것뿐인데, 게다가 그 이야기는 해피엔딩도 아니고 비극적인데 그녀는 왜 달라진 것일까?



# 육체의 삶과 죽음

나는 알마시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생각하는 육체의 죽음이 완전한 죽음이나 끝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캐서린의 몸은 오래 전 죽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알마시의 기억 속. 그의 마음 속에서 살아있었고, 그는 여전히 캐서린을 깊이 사랑하고 있었다. 알마시마저 죽는다 해도 두 사람의 사랑이 의미를 잃는 것은 아니며, 그 사랑은 한나의 기억 속에서 또 다시 살아남을 것이다. 반면 한나 자신은 몸은 살아있지만 모든 생의 의지와 의미를 잃어 죽은 것과 다름없는 상태였다. 그녀는 애인과 친구의 죽음을 문자 그대로 끝이라고 여기고 깊은 절망과 상실에 빠졌으나, 알마시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이 죽고 곁에 없다고 해서 자신의 사랑이 끝나거나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아닐까.


# 사랑이란 무엇인가

또 한편, 알마시의 이야기를 듣고 남녀의 사랑이 결혼이라는 형식이나 육체적으로 함께함과 동의어가 아니구나, 깨닫는다. 알마시와 캐서린의 사랑이 불륜이라며, 이 영화가 불륜을 미화하는 작품이라 욕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그렇게 비판한다면 매우 안타깝고 슬픔 ㅠㅠ). 그러나 둘의 관계를 그렇게 설정한 이유는 불륜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만들어낸 인위적인 제도나 형식 그 자체가 사랑은 아니라는 것, 사랑이 본질적으로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장치였을 거라 생각한다.


캐서린은 혼자 동굴 속에서 죽어가면서도 알마시가 자신을 구하러 올 거라고 믿었다. 그녀는 그저 알마시를 믿었다. 알마시 역시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고 기다리는 것을 믿었다. 이러한 믿음은 실제 두 사람이 그것을 수행했느냐와 관계 없다. 알마시는 그녀가 살아 있을 때 그녀를 구하러 오지 못했고, 캐서린 역시 그가 도착하기 전에 죽음으로써 그를 끝까지 기다리지 못했다. 하지만 알마시도 캐서린도 서로에 대한 원망 같은 건 없다. 죽어가는 캐서린은 담담하고, 알마시는 더 일찍 오지 못해 슬프고 미안할 뿐이다. 이렇게 두 사람은 그 약속의 실제적 이행 유무에 관계 없이 서로를 전적으로 믿었다. 그런 믿음이 없었다면 아무도 없는 사막의 동굴 속에서 기약 없이 혼자 남아 버티겠다고 할 수 있으며, 모랫바람과 굶주림에 지친 채로 밤낮 없이 걸어서 구호 요청을 하러 갈 수 있을 것인가.


상대에 대한 전적인 믿음과 기다림_

그래서 캐서린은 몸은 죽었지만 알마시의 기억과 이야기 속에 살아있다. 마치 그녀가 공부했던 역사 속 이야기와 그림처럼. 그리고 알마시는 죽음의 순간에도 그녀가 남긴 편지, 사랑의 고백을 들으며 영원한 잠에 든다.


#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만약 알마시가 캐서린에 대한 기억까지 모두 잃었다면 어땠을까? 모든 것을 잊어버린다고 해도 그들의 사랑은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일까? 알마시는 캐서린을 여전히 사랑한다고 할 수 있을까? 캐서린이 알마시의 기억 속에서 살아남아 있다고 하니 꼭 기억이 없으면 안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알마시가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고 해도 두 사람이 진실로 사랑했다는, 또 사랑한다는 사실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다. 내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해도,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도 나는 나인 것인가? 사람들은 '기억'이 인간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요소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나도 과거의 내가 모여서 오늘의 내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하기에 기본적으로는 '기억'이 '나'를 인식하는 데 중요하다는 것은 동의한다. 그러나 사고로, 또는 알츠하이머와 같은 질병으로 기억을 잃은 사람은 어떻게 될까? 이름을 잊어도, 내가 누구인지, 내 앞의 그녀가 누구인지 잊어도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과 감정은 그대로 남아있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믿고 있고, 또 믿고 싶다.


캐서린의 직업은 고고학자였고, 알마시는 길을 잘 찾는 지도 제작자였다. 그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심이 없는, 잊혀진 옛 기록을 발굴하여 의미를 찾아내는 일을 한다. 모두가 무관심하고 잊었다 해도 그것은 존재했던 사실이다. 벽화의 그림처럼 캐서린과 알마시가 그 흔적을 찾아낸다면, 적어도 두 사람에게는 의미가 생긴다. 그것은 다시 부활해 살아있게 되는 것이며, 그것이 그들이 사랑하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지만, 이름없이 잊혀진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무의미한 것은 아닐테니까.



이렇게 생각하면 한나의 변화가 이해될 것 같다.

그녀는 이제 죽은 애인과 친구를 마음 깊이 아름답게 간직하고 추억할 수 있으리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또 자신을 죽여달라는 알마시의 말이 단순히 생의 포기 같은 것이 아님을 이해했을 것이다. 그 죽음이 전부가 아니란 것도.


다시 한번,

진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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