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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볕 냄새 Jun 04. 2021

내가 좋아하는 곤충

매미의 매력 탐구

어느 저녁 조카가 갑자기 물었다. “이모는 무슨 곤충을 제일 좋아해요?” 응? 곤충?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나는 몹시 당황했다. 사실 나는 곤충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떤 녀석은 무섭고 또 다른 녀석은 징그럽고 싫다. 무엇보다 수많은 곤충의 존재에 관심이 없으며 잘 알지도 못한다. 하지만 이모는 곤충에 관심이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될 것만 같았다. 조카는 자그마한 개미부터 내가 무서워하는 송충이까지 모든 벌레를 사랑하는 아이였으니까. 아니, 조카의 곤충 사랑이 지극하지 않다고 해도 다섯 살 아이의 질문에 그렇게 무심하게 답하는 건 어쩐지 좀… 그랬다. 나의 입에서 나올 한마디를 기다리는 그 호기심 어린 눈을 보며 “이모는 매미를 가장 좋아해.”라고 대답해버렸다. 내가 느낀 당혹감과 뭐라 대답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누구도 알아채지 못할 만큼 짧은 시간에 나는 정말 매미를 오랫동안 좋아해 온 사람인 양 대답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나조차도 갑자기 왜 매미라는 답이 튀어나왔는지는 알지 못했다. 이모는 왜 매미를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뭐라 답할지 고민할 틈도 없이 조카는 “나는 나비를 제일 좋아해요.”라고 말했다. 그 말에 촘촘하게 엮어진 아름다운 결 위에 색색의 무늬가 새겨진 나비의 날개가 떠올랐다. 어린 시절 예쁜 나비를 쫓아가던 기억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지 않을까. 잡힐 듯 말 듯 쫓는 이의 마음을 밀고 당기며, 경박스럽게 빠르지도 둔해 보일 만큼 무겁지도 않게 사뿐사뿐. 산뜻하고 우아한 그 날갯짓을 상상하니 왜 옛사람들부터 어린 조카까지 나비를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런데 불쑥 튀어나온 나의 매미 사랑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조카는 잊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언제라도 왜 그때 매미라고 대답했는지 이유를 댈 수 있어야만 거짓말을 했다는 찜찜한 기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매미의 매력 탐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먼저 매미의 생긴 모습을 그려보았다. 이 녀석의 날개에도 아름다운 무늬가 있었던가. 자세히 보면 나를 매혹하는 뭔가가 있지 않을까. 하지만 살아 있는 매미를 아주 가까이 본 기억이 많지 않아서인지 구체적인 형상이 떠오르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그려본 모습에서 나는 내 마음을 무의식중에 빼앗은 그 무언가를 찾지 못했다. 인터넷으로 매미의 사진을 찾아보자 더욱 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가까이서 크게 확대된 매미의 모습은 역시나 조금 징그러워 금방 화면을 닫아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역시 나는 곤충을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쪽이라는 사실을 솔직히 말했어야 했을까. 이럴 거라면 어린 시절 잡으러 다니던 추억의 메뚜기며 또렷한 무늬가 예쁜 무당벌레며 하고많은 다른 녀석들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왜 뜬금없이 매미라고 답해 이런 이유를 찾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내가 속으로 당황스러워하면서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마치 언제고 준비된 대답인 듯 매미를 이야기했다는 사실이었다. 메뚜기나 무당벌레는 물론, 아름다운 나비조차 애당초 후보에도 있지 않았다. 그 순간 맨 처음 내 머리에 떠오른 것은 분명히 매미였다.   



여름의 소리.

매미 이 녀석은 생긴 모습보다는 소리가 훨씬 더 익숙하다. ‘매미’라고 하면 여름철 우리의 단잠을 깨우는, 줄기찬 울음소리가 먼저 떠오른다. 시끄럽게 들리는 그 소리 때문일까. 녀석을 좋게 봐준다고 해봤자 여름이 왔구나, 계절의 변화를 알려준다는 것 이상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땅속에서 애벌레로 7년 가까운 긴 시간을 보낸 뒤 여름 한 철을 겨우 살고 죽는 매미를 옛 선비들은 군자의 상징과도 같이 여겼다고 한다. 이슬만 먹고 살아 맑고, 곡식을 탐하지 않아 염치가 있고, 따로 집을 마련하지 않는 검소함을 지녔으며, 때에 맞게 울다가 자신이 죽을 때를 알기에 신의가 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내가 서둘러 닫아버렸던 그 생긴 모습마저 머리 모양이 갓끈을 닮아 글을 아는 선비와 같다고 칭송을 받았다니! ‘여름의 소리’라는 별칭밖에 붙여주지 못하는 나로서는 옛사람들이 매미에 대해 보여준 깊은 애정이 놀랍고 또 한편으로는 몹시 부러웠다.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보았기에 매미가 가진 여러 덕(德)을 볼 수 있었고, 그래서 더 애정이 깊어졌으리라. 그 ‘볼 수 있음’과 작은 벌레도 ‘사랑할 수 있는 태도’가 나를 뭉클하게 만들었다. 인터넷에서 뒤져본 매미 이야기가 퍽 그럴듯하여 나는 잠시 감상적으로 변해버렸다. 특히 시끄럽게 들리는 높은 울음소리를 내는 것은 수컷인데, 짧은 그 생의 시간 동안 암컷을 만나 짝짓기를 위한 구애의 소리를 목청 높여 내는 것이라니 그 절절함이 낭만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렇게 매미 소리에 대한 감상에 젖어 있으려니 문득 어느 여름밤의 기억이 떠올랐다.


8월 경이었나. 밤 11시가 넘어 인적이 드문 공원을 거닐다 벤치에 누워 밤하늘을 보고 있었다. 한여름이었지만 밤공기가 시원했던 그날도 매미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조용하다가 다 같이 온 동네가 떠나갈 듯 맹렬하게 울어대는 소리. 쏴아… 하는, 그 여름의 소리만이 밤의 공기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매미 울음소리의 강약이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다. 얘네들은 왜 무슨 약속이나 한 듯 단체로 울어서 시끄러운 존재라는 오명을 쓰는 걸까. 하지만 그 밤의 매미 소리는 거슬리지 않았다. 오히려 쏴아, 하고 시원하게 내지르는 그 소리가 진짜 여름의 맛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매미를 가장 좋아하는 곤충으로 꼽은 것은 어쩌면 그날의 기억이 아름답게 각인되었기 때문일 거다. 여름밤 조용한 공원에서 매미의 울음소리를 들어보면 매미를 좋아한다는 말이 나비를 좋아한다는 것처럼 말하지 않아도 이해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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