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다는 말
고향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정면에 어색한 가족사진이 우리를 반긴다. 오른쪽으로 조금 몸을 돌리면 큰 TV 옆에도 같은 날 찍은 더 큰 사이즈의 더 어색한 가족사진이 있다. 아빠는 언제나 가족들과 사진을 남기고 싶어 하셨는데, 우리 4남매는 사진을 찍기 싫어해서 적극적으로 거부해 왔다.
2009년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왔다. 내 결혼을 앞두고, 아빠는 사위 없이, 온전히 우리 가족들만의 사진을 찍고 싶어 하셨다.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몸도 준비가 안되어 있고 늘 옷이 없었는데, 마침 결혼식을 위해서 사 둔 옷들도 있으니 가장 최적의 타이밍이라고 생각하셨다.
사진 앞 왼쪽에 한복을 입은 엄마와 오른쪽에 양복을 입은 아빠, 뒷줄에 딸들과 아들이 웃으며 나란히 서 있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아빠가 특히나 활짝 웃고 있는데, 뭔가 모르게 어색하다.
사진 찍던 그 순간이 생각난다.
"자~ 웃으세요. " "팡", "팡", "팡"
고향은 인구 12만 명 정도의 지방 소도시인데, 내가 학교 다닐 때와 별반 인구 차이가 없다. 가족사진을 멋지게 찍고 싶은데, 당시에 마땅한 곳이 없어서 동네 시내에 있는 아무 사진관에 가서 촬영을 했다.
"자~ 웃으세요. " "팡", "팡", "팡" 뭔가 미소를 신경 쓸 새도 없이 마구 플래시를 터트리는데, 과연 사진을 제대로 찍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표정을 어떻게 할까요? " 물어보면, "그냥 웃으시고, 제가 알아서 잘해드릴게요" 과연 어떻게 잘해주신다는 거였을까? 그렇게 어색하게 웃다가 끝나버렸고, 사진관 아저씨는 찍은 사진을 편집하는 과정을 보여줬다. 아빠의 까만 얼굴은 조금 더 하얗게, 아빠의 활짝 웃은 입은 화면에서 잘라서 다른 사진과 합성시켜 버린다. 그렇게 탄생한 가족사진, 참 부자연스럽기 짝이 없는데, 아빠는 거실에 큰 액자로 떡하니 걸어놓으시고 좋아하신다. 당시에는 큰 화면 속 내 모습이 너무나 싫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래도 그때가 가장 젊었고 아름답다. 아빠 덕분에 한 시절 가족들의 젊음을 박제할 수 있었다.
아빠가 꺼내놓지 못하시는 사진이 하나가 있다. 내가 대학 때 돌아가신 친할머니, 아빠의 엄마 사진이다.
할머니는 경상도 시골, 아빠가 태어난 집에서 평생을 사셨는데, 남아 선호도 강하시고 장자에 대한 애착이 강하셨다. 큰아버지가 할머니를 모시고 시골 한옥집에서 사셨는데, 우리가 명절에 내려가면, 큰 엄마와 우리 엄마 이하 여자들은 계속 음식을 하며 일을 해야 했다. 남성들이 식사를 다 마치고 나서야 밥을 먹고, 아이들은 사랑채에 있었는데, 할머니는 남동생이 아들이라고 남동생만 예뻐하셨다.
할머니는 늘 한복을 입고 쪽진 머리를 하고 계셨는데, 단아하기보다는 칼바람이 부는 듯 몹시도 차가운 모습이라 나는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아빠가 꺼내놓지 못하시는 사진은 할머니의 영정 사진이다.
할머니는 살아계실 때처럼 흰색 한복에 50대 50의 완벽한 쪽진 머리에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계신다. 보기만 해도, 할머니가 백호랑이가 되어 튀어나올 것 같은 무서운 사진이다.
아빠는 그 사진을 거실에 꺼내놓으셨는데, 우리는 할머니의 모습이 무서워 다른데 두면 좋겠다고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는 할머니의 사진을 거실 주목나무 뒤 뒤집어서 두셨다. 아빠는 언제든 할머니가 보고 싶었는데, 극성맞은 자녀들로 인해, 언제든 손 닿는 곳에 아빠의 엄마를 두었다.
보고 싶다. 그립다.
아빠의 그 마음을 이제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