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빠와 나

이상향

계속 어딘가를 꿈꾸는 중

by 때때로

아빠는 엄마와 함께 가게를 하셨는데,

가게 운영을 너무 힘들어하셨다.

일 자체도 힘들었지만, 다양한 요구를 하는 손님들을 상대하는 것이 아빠에게는 버거운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아빠는 집에 돌아오면 늘 지쳐있고,

화를 많이 내셨다.


엄마는 가게에서 인기가 많았다.

손님들은 가게에 오면 웃는 모습이 예쁘고,

온화하고 따뜻한 엄마를 먼저 찾았다.

그중에 간혹 아빠를 찾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은 아빠의 특장점인 유머와 따뜻함을

알아보는 아주 아주 귀한 사람들이었다.

아빠는 그럴 때면 손님들의 환대에 신명나게

팬서비스를 해주는데,

노래와 함께 두 손을 요리조리 움직이며

더욱 반갑게 인사를 하셨다.

(대부분은 손님에게 신경질을 내는 편이어서

아빠의 장점을 알아보는 극소수였다.)


그런 아빠의 마음은 늘 밭에 가 있었다.

아빠는 밭에서 무엇인가를 키우고 싶었고,

자연 속에 있고 싶었다.

하지만, 줄줄이 딸린 자녀들을 학교 보내고,

생활비를 대기 위해서 열심히 사셨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회사를 입사했을 즈음에,

아빠는 가게를 엄마에게 온전히 맡기고 그만두셨다.

그리고 아빠는 땅을 사서 그곳에 자두와 복숭아나무를 심고 열매가 나기를 기다렸다.

그 사이 밭에 직접 원두막도 만들고 자신만의 장소로 가꾸어갔다.


물론, 어려움도 많았다.

과실이 잘 안 열릴 때도 있었고,

묘목을 산 것과 다른 열매가 맺히기도 했고,

폭우로 흘러내린 토사가 밭을 덮기도 하고

고된 농사일에 지치기도 했다.

그래서 또 아빠는 일이 많다며 신경질을 내기도 하고 힘들어했다.

나는 이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왜 스스로 일을 만들어서, 괴롭게 하는 거지 의아했다.

쉬엄 쉬엄하면 되고, 적당히 일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알고 있다.

그 밭의 존재 자체와 열매는

고된 아빠의 삶을 위로하는 것이었고,

좋은 열매를 맺게 하는 그 과정 자체가

아빠의 기쁨이었다는 것을.


지금의 나는 가끔 소스라치게 놀란다.

투덜투덜 대고,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모습이

가게에서 일하던 아빠의 모습과 너무나 똑같다.


나도 늘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

내가 떠나고 싶은 곳은 책 속, 글 속, 그림 속이다.


가끔 약속된 서평시간을 지키지 못해,

시간에 쫓기고 늦은 시간까지 책을 읽거나 글을 쓰다 보면,

왜 이러고 있나 싶다가도 힘들지만 즐겁다.

지금 늦은 시간 글을 쓰는 것도 참 기쁘다.


아빠도 그런 거였다.

내가 볼 때는 자두와 복숭아를 키워서 수익이 생기는 것보다 아빠의 노동력과 재료비가 더 많이 들어가는 것같지만 그 자체가 아빠에게 기쁨인 것이다.

즐거움이다.


늘 꿈꾸던 그곳에 있는 아빠.

나도 늘 꿈꾸던 그곳을 서성인다.

나는 아빠 딸이니까, 언젠가 나도 내가 바라는 곳에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있겠지.

또 투덜거리고 힘들다고 하겠지만.

그래도 그건 다른 차원의 투덜거림이다.

즐거움의 투덜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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