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가족이 나밖에 없어?

엄마와 정서적으로 건강하게 독립하는 방법

by 노르망듀

엄마와 나는 둘이서 살고 있다. 내가 대학에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오랫동안 엄마를 괴롭히던 아빠와 갈라서기로 작정하고 집을 나왔다.


나는 지방에서 대학을 나왔는데, 엄마가 걱정되어서 매주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그런데 하루는 엄마가 나를 집이 아니라 파주의 한 오피스텔로 데려갔다. 그리고 한 마디 했다. ‘엄마 집 나왔어.‘ 나는 한마디만 했다. ’언젠가 그렇게 될 줄 알았어.‘


그리고 꽤 오랜 세월이 흘렀다. 나는 졸업을 하고 변변한 직장을 구하지 못해서 단기로 여기저기 일을 하다가 취업난에 백수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전세로 살고 있던 우리 집의 집주인이 재계약을 할 때 돈을 올려달라고 했고,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어린 시절을 보냈던 이 동네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사실 모두가 이곳을 떠나고 이곳에는 엄마와 나 둘밖에 없었으니까.


마침 결혼한 언니가 신혼집으로 입주를 하게 되어서 원래 언니가 살던 빌라로 들어가기로 했다. 하지만 신혼집으로 가기까지는 시간이 걸렸고, 이사 날짜가 맞지 않아서 세 달 동안은 단기로 빌라에 살기로 했다.


그때부터였을까. 한 동안 잠잠했던 엄마의 불안감이 다시 우리 집을 급습했다. 옆집에 살고 있는 한쪽 눈이 없는 중국인 아저씨는 하루에도 12번씩 담배를 피우며 우리를 주시하고, 우리 집에는 하수구에서 나오는 벌레가 끊임없이 나왔다.


우리는 언니집이 아니라 다른 곳의 아파트로 전세로 가기로 했고, 내 명의로 전세 대출을 받기로 했다. 하지만 직장이 없는 나는 재직증명서가 없어서 대출을 받지 못했다. 원래는 무직 신분도 대출을 받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상황이 바뀌어서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이런저런 대출을 알아보기 전에 이미 엄마는 집을 가계약한 상태였다.


당시 나는 가산에 있는 회사에 엔지니어 직군에 합격을 했다. 5분 대기조에 밤낮 없는 근무를 약속하고 받은 첫 합격 목걸이였다. 어디든 붙으면 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썩 내키지 않는 포지션과 연봉이었지만 우선은 가기로 했고 그렇게 대출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대기업 1차 면접을 합격해서 2차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지방에 있는 외국계 기업의 6개월 채용전환형 인턴에 붙게 되었다.


외국계 기업이라니..! 꿈에 그리는 직장 같았지만 포지션도, 회사의 사업도, 위치도, 그 무엇 하나 나에게 맞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 가치관과 너무 다른 일을 하는 회사였다. 어디 붙었다고 자랑하기도 어려운.. 그런 회사였다.


사람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가라, 가지 마라, 다들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나에게 조언을 해주었다. 그 조언들이 퍽 고마웠지만 때로는 너무 부담이 되었다.


가장 큰 부담이 되었던 건 아빠와 언니와의 만남이었다. 아빠는 돈이 너무 중요한 사람이라 무조건 가라고 했다. 가기만 하면 지원 다 해주겠다고, 차도 뽑아주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돈이 없다고 그렇게 앓는 소리를 하더니만.


평소엔 그렇게 역겨웠던 아빠의 돈자랑이 그때는 그렇게 달콤하게 들렸다. 시종일관 반대를 하던 엄마와는 달리 아빠의 말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어 보였다.


그러던 찰나에 대기업 2차 면접도 보고, 가산에 있는 회사와 지방 외국계 기업의 출근 날짜는 3주 정도 차이가 났다. 나는 3주 정도 가산에 출근하다가 지방에 있는 외국계 기업에 가야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출근 전 주 목요일 아빠와 둘이 밥을 먹었다. 당시 금요일이 휴일이었기 때문에 나의 출근 플랜을 말하자 사업을 하는 아빠는 절대 그러면 안 된다고, 이 분야는 좁아서 무조건 내일 만날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그 회사도 어려울 텐데 그렇게 출근하다가 다른 데로 가는 건 정말 경우 없는 행동이라고 당장 안 가겠다고 얘기하라고 했다.


웬일로 아빠가 맞는 말을 하는 것 같지? 나는 아빠 말을 그대로 따랐다. 내 머릿속에 가산은 이미 지워진 지 오래였다.


그리고 집에 오자 엄마도 아빠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리고 아직 대기업이 남아있으니까 거기 붙으면 좋겠다! 하고 서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다음 주에 대기업으로부터 탈락 공지를 받았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지방을 가야 한다는 생각에 착잡해지기 시작했고 엄마는 네가 결정한 일이니 네가 이 문제를 해결하라고 했다. 아빠는 전화 와서 그렇게 가기 싫으면 가지 마라, 근데 원래 회사와 상관없이 이사를 할 때 준다고 한 돈이 있었는데 그 돈을 마련하는 게 힘들다고 했다. 언니도 갑자기 전화 와서 다른 회사를 구해보라고, 근데 분수에 맞지도 않은 집을 이사를 간다며 화를 냈다. 언니가 들어갈 신혼집은 소송이 걸려서 언제 입주가 가능할지 모르는 상태가 되었다. 만약 그 집에 들어가기로 했다면 우리는 또다시 단기를 구해야 했던 것이다. 언니는 엄마한테 전화해서 왜 그렇게 무리하게 집을 계약해서 일을 이렇게 만드냐고 했다. 엄마는 언니의 무례한 말에 상처받았고 나는 나름대로 이 상황을 해결해 보고자 다른 회사에 미친 듯이 지원했다.


상황이 정말 힘들었다. 지방에 내려간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마음이 힘들었다. 그 간에 받았던 조언들로 인해 이미 어느 정도 지방에 안 가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는데 대기업에 떨어지다니, 당연히 떨어지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었어야 했는데.


엄마는 가산에 갔었어야 했다며 나를 나무랐다. 와중에 나는 다른 회사에 실무진 면접을 보고, 또 임원 면접을 보고 또 이사 날짜와 지방에 있는 집을 구해야 해서 그 사이에서 고통받고 있었다.


결국에는 다 내가 자초한 일이야. 내가 잘못했어. 그냥 내가 욕심부려서 그래. 너무 후회가 됐다.


그나마 본 면접도 결과를 다음 주에 알려준다고 했다. 다음 주에는 지방에 출근을 해야 하는데, 아직 집도 못 구했는데, 낙동강 오리알이 된 것 같았다.


엄마의 불안감이 점점 더 커져갔다. 안 그래도 면접을 보러 다니느라 죽겠는 마음에 엄마는 나를 볼 때마다 화를 냈다. 언니에게 아빠에게 받은 마음들을 계속해수 풀어댔다. 지난 몇 년 간의 힘들었던 날들이 다시 복기가 되었다. 예전에는 그래, 엄마한테 내가 못하면 나중에 얼마나 후회할까 하는 마음으로 버텼는데 이제는 그런 마음도 없었다. 이 정도면 된 거 아닌가? 엄마는 정말 우울증인가? 엄마는 나 없으면 친구도 가족도 없나? 내가 어디까지 받아줘야 하는 거지? 내가 어디까지 참아야 하는 거지?.. 점점 지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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