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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on Jun 30. 2018

목표가 없는 삶도 괜찮을 수 있다

스스로가 지금 이 순간의 실존에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면

1. 언젠가 교수님께서는 예술에 대해 설명하시다 '목적 없는 합목적성'이라는 말을 하신 적이 있다.


2. 당시 어리고 미천했던 나는, 그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기가 어려웠고, 그래서 그때의 나는 나대로 그 뜻을 이렇게 이해하고 넘어갔다. '어떤 하나의 예술 행위가 그 순간은 특별한 목적성을 가진 것처럼은 보이지 않지만, 그 행위들이 모이면 거대한 하나의 합목적성을 띠게 된다'고.



3. 그리고 이후, 뒤늦게 스티브 잡스의 졸업 연설을 보게 됐고, 'connecting dots'라는 표현을 보면서 교수님이 말씀하셨던 ‘목적 없는 합목적성’이 그 단어 위에 오버랩됐다. 


4.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은, 의미 없어 보이는 아주 사소한 점일지라도, 그것들이 모이면 언젠가는 하나로 연결되어 거대한 합목적성을 띠게 되는 건 아닐까?  


5. 그러고 보니 삶은 언제나 그랬다. ‘PD가 되겠다’는 나에게, 교수님은 계속 ‘기자가 되라’고 하셨다. 그때는 도대체 왜 그런 말을 하시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고, 사실 지금도 왜 그렇게 말을 하셨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리고 이제는 그것 알 방법조차 사라졌다.


6. 다만, 나는 여전히 교수님이 말한 그 단어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어린 시절 품었던 꿈이 사라진 이후, 그렇게 정처 없이 휘몰아치는 삶을 살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나는 글 쓰는 일을 하고 있었다.


7. 그래서 애초에 목표했던 일이 아니기 때문에, 도대체 이 일을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는 정말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에, 이 일을 한다는 게 과연 맞는 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 이유가 어쨌든, 지금의 나는 그럭저럭 잘 살아가고 있고, 어쩌면 흔들리는 삶 치고는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8. 그래서인지 요즘 부쩍이나 드는 생각은 이런 거다. 사람들은 보통 어떤 꿈이나 목표를 정한 후, 그걸 이루는 삶을 위대하다고 말하고, 때로는 실패하더라도 그 도전하는 삶 자체가 숭고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삶이 위대하다고 해서, 모두가 그런 삶을 살아야 하는 걸까?


9. 아니, 분명한 목표와 선명한 존재 이유(why)를 추구하는 삶이 위대하다고 해서, 그렇지 않은 삶은 과연 초라하고 무시 당할 만한 삶일까? 어쩌면 목적 없는 삶이라도, 지금 이 순간을 정말 열심히 살아간다면, 그리고 그 사람이 자신의 실존에 대해 철저한 책임감을 느끼며 살아간다면, 그러한 삶 또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닐까?


10. 특별한 목적을 추구하지 않아도, 어쩌면 최선을 다해 살아온 그 순간의 순간들이 모이면, 언젠가는 그 사람의 삶 또한 하나의 합목적성을 가지게 되는 건 아닐까? 어쩌면 우리가 인지하지 못할 뿐, 모든 것은 모든 것에 맞닿아 있는지도 모른다.


11. 그러고 보니 누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특별한 이유는 없더라도, 무언가를 끝까지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그 자체가 세상에서 '가장 끝내주는 이유'라고. 그 외에는 사실 다른 이유가 필요 없다고. 또 한 번 실존이 본질을 앞서는 순간에 서 있다.


2018.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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