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가 쓴 여러 책을 읽으며, 마음속 깊이 존경했던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이 세상과 작별했다고 한다.
2. 사람들은 그를 사업을 일군 도덕군자처럼 말하지만, 그의 이야기 곳곳에는 ‘빡침’과 ‘좌절’이 있다.
3. 특히 그가 사업을 시작한 계기는 무언가 대단한 것을 해보겠다는 그런 결연한 의지는 아니었다고 한다. 27살이었던 어느 해, 그는 회사에서 세라믹 진공관을 개발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고 한다.
4. 그러자 회사는 외부에서 기술부장을 영입했고, 새로 온 기술부장은 청년 이나모리 가즈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자네들의 능력으로는 역부족이야. 그러니 거기까지 하고 (일은) 나에게 넘겨. 앞으론 내가 하지"
5. 자신과 팀을 하찮게 여기는 말에 모멸감을 느낀 이나모리 가즈오는 그 자리에서 퇴사를 결심하고 사표를 제출했다고. 그리고 그가 회사를 나가겠다고 하자, 그와 동고동락했던 동료들도 “사업이 어려움에 처하면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연구비를 지원하겠다”며 함께 하겠다는 선언을 했다고 한다.
6. 그렇게 자신의 기술에 큰 자부심이 있었던, 그래서 그 기술을 무시했을 때 모멸감을 느꼈던 청년 이나모리 가즈오는 자신의 기술이 전 세계적으로 얼마나 경쟁력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었고, 초기 사업의 목표 또한 ‘내 기술이 세상에 통하는지를 묻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게 비탈길 같은 어린 시절을 살았던 그의 절절한 꿈이었고.
7. 하지만 사업 2년 만에 퇴사를 함께 했던 동료들은 서로의 관계를 노사로 규정하며 단체교섭을 요구했고, 그렇게 그는 또 다른 갈등을 마주하게 됐다. 함께 땀을 흘리던 동료들이 갈등의 주체가 되는 모습을 보면서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은 회사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꿨다고 한다.
8. 회사는 경영자가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직원과 그 가족의 현재, 그리고 미래의 삶까지 책임지는 곳”이라고 생각을 바꾼 것이다. 회사의 존재 이유를 재정의한 것이자, 구성원과 경영진의 관계를 다시 얼라인(align)한 셈.
9.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업이나 조직을 이끌어가면서 여러 사람들을 공통의 목표나 욕망을 향해 정렬(align)하는 일은 엄청 힘든 일. 누군가가 이를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결국 모두는 각자가 자신의 욕망을 향해 내달릴 뿐이니까. 대부분의 기업은 그렇게 엉망진창이 된다.
10. 결국 청년 이나모리 가즈오는 경영자와 구성원 사이의 얼라인을 만들어냈고, 이 경험은 "회사는 사장이 가진 마음의 그릇 크기만큼 성장한다"는 '그릇론'으로 발전한다. 경영자가 더 큰 그릇으로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품을수록,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한 곳으로 모을수록 회사는 성장한다는 것이다.
11. 그렇기에 그는 경영자라면, 마음의 그릇을 닦고 키우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또한 자신의 그릇을 계속 키워가며 수많은 사업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냈고, 심지어는 그 과정들을 다 글로써 기록에 남겼다. 과연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만큼 직접 글을 많이 쓰고 책을 낸 경영자가 얼마나 있을까?
12. 이 때문인지 언젠가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은 왜 이렇게나 글을 썼을까?’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뇌피셜이지만 글을 쓰고 책을 내는 과정 또한 어쩌면 그에겐 자신의 마음을 닦고 자신의 그릇을 키워가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13. 경영뿐 아니라, 콘텐츠로써도 자신의 마음을 키워낸 사람. 어쩌면 그는 글이라는 콘텐츠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고, 글로써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 또한 자신의 그릇에 담으려고 했던 건 아니었을까?
14. 잘은 모르지만, 만약 그랬다면.. 그의 계획은 완벽히 성공했다. 일면식도 없는 한국의 일개 개인사업자마저 그의 마음의 그릇에 담겼으니.
15. 사실 ‘사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나 관점은 넘치도록 다양하고 많은데.. 그중에서 계속해서 늘어나는 이해 관계자들의 마음과 이익을 얼라인시키고, 그 욕망들을 올바른 방식으로 하나의 그릇에 담아내고, 그렇게 더 많은 사람들의 욕망을 담을 수 있게 경영자가 마음의 그릇 크기를 계속해서 키워가는 것이 곧 사업이라는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의 주장은 여러 면에서 깊은 울림이 있다.
16. 심지어 그는 자신의 주장을 삶으로 입증해냈으며, 글로써도 자신의 삶과 생각을 기록으로 남겼다. 과연 사업자이자 창작자로서 이런 결과를 만들어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17. 아니, 그는 사업을 함으로써, 그리고 글을 씀으로써,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마음의 그릇을 키우기 위해 애썼던 사람이 아닐까?
18. 그런 의미에서 그가 남긴 "사람은 자기 그릇 크기만큼의 기업밖에 못 만듭니다. (따라서) 경영자의 인격이 높아지면, 기업은 (저절로) 성장하고 발전합니다”라는 말에서, ‘기업’을 ‘콘텐츠'나 ‘글'로 바꿔도 무방한 것 같다.
19. 글을 쓰는 것 또한 마음의 그릇을 키워가는 일일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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