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공부의 위로

그 많던 모범생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by 솜글

5년 전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나는

공부를 꽤나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인생을 살았다.


중학생 시절 영어 수업에서 기다리던

‘If절’ 수업 시간을 앞두고 혼자 설레하기도 했고,

아끼는 교과서에 남겨진 새까만 손떼를 보며 내심 뿌듯해하기도 했다.


물론 지금도 지적 탐구심이 강한 기질을 타고나서

이런저런 분야의 책을 읽고 영상 보기를 즐겨한다.


그러나 끈기가 부족한 탓인지,

목표의식이 결여된 탓인지

학교에서 얻던 배움과는 그 체계와 깊이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 것 같다.


이 책은 배움과 공부가 우리 삶에

어떠한 흔적을 남기는지,

나라는 사람의 자아 형성에

어떤 큰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살아가다 무심코

"그때 공부했던 그것이 내 안에 이렇게 남았구나"

하는 순간에 대한 이야기.


또 그 순간이 선사해 주는 왜인지 모를

격려와 위로에 대한 이야기.


저자는 말한다. 대학에 다니며 공부했던 학문들이 또 다른 세계를 향한 문을 하나씩 열어주었다고.


그 열어둔 문틈 새로

방대한 지식 체계가 통째로 들어오진 못해도,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과 용기가

스며들 수는 있다고.


-306p-

“그 시절, 우리는 무엇 때문에

청춘의 일부를 투자하여 대학을 졸업하면

더 이상 쓸 일 없을 것 같은 언어를

붙들고 끙끙대며 머리를 싸매었건 것일까?


그 언어는 대부분의 수강생들에게

삶의 잉여였지만

분명 ‘위안’이었다.


세상은 우리에게 ‘쓸모’를 요구하지만

유용한 것만이 반드시 의미 있지는 않으며

실용만이 답은 아니라는 그런,

위로“



무용함의 아름다움에 대해

자주 생각하곤 하는데,

무용한 것을 배우고 공부하는 것은

더 이상 무용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게 모르게 내 안에서 든든한 자양분으로 쌓여,

어떤 방법으로든 나의 시야를 틔우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주입식 교육에 대한

회의 젖은 이야기들이 많다.

암기가 주를 이루는

일률적인 교육 방식에 대한 회의이다.


그러나 저자는 암기가 기반이 되는,

공부의 기본 터를 잡는 과정이 없이는

창의성도 발현되기 어려울 것이라 말한다.


아무것도 없는 맨바닥에서

창의성이 툭 하고 던져지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영역이든 지난하고 힘든 공부 시간을 겪으며

그 기반을 잘 다져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제껏 해온 공부에 대한,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돋보여서 기억에 남는 구절이었다.


이 책에는 교양 수업임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소망을 담아

열정적으로 강의한 강사님들과,


학점을 그저 쉬이 얻을 수 있는 길을 택하지 않고

진정한 학문 탐구의 길을 선택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그 모습이 아름다워서, 부러워서,

괜히 울컥하는 순간이 많았다.

그러나 가장 서운한 감정이 든 건

이 책을 덮으면서였다.


1학년 신입생으로 시작해 4학년 막학기로

대학 생활을 마치는 과정을

너무 이입해서 읽은 나머지

마치 나도 저자와 함께

졸업을 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모든 이의 대학 생활에 대한,

공부해 온 시간에 대한

찬사 같은 글이다.


옛 모범생들은 아직 어디에나 남아있다.

공부했던 내용들에 의해서

삶아가는 힘을 얻으면서,

또 그 기억을 단단한 지반으로 삼아

다른 새로운 것들을 거리낌 없이

한아름 받아들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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