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를 소중히 여기는 예린에게, 기억에 남는 편지는 어떤 것일까.
당신에게 '편지'란 어떤 것인가. 일상 가까이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저 멀리 외딴곳에 있는 것인가.
내게 편지는 정말 가까이 있는, 내 마음을 보다 쉽게 전할 수 있는 매개체이다. 감정이나 생각을 나서서 표현하기 어려워하는 내게 말을 활자로 대체한 편지는 소중하다.
나는 부치지 못하는 편지 몇 장을 자꾸 만지작거리곤 한다. 그 편지가 언제는 그에게 닿을 수 있기를 바라며.
예린은 특별한 날, 특별한 사람에게 꼭 편지를 선물한다고 한다.
그런 예린에게 편지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또 기억에 남는 편지는 어떤 것이 있는지.
예린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자.
'편지'를 주제로 고르신 분은 처음인 것 같은데. 왜 이번 포터뷰 주제로 '편지'를 고르셨는지 궁금해요.
제가 첫 타자가 되었다는 게 기쁘네요. 제가 사실 편지를 가져오려고 했어요. 편지를 가져오려고 했어요. 편지를 빼곡하게 넣어둔 큰 박스가 집에 있거든요. 그런데 그걸 가져오기에는 무리가 있어서 가져오지 않았는데, 키워드에 마침 '편지'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골랐어요.
예린 씨는 편지 쓰는 걸 좋아하나요?네.
그럼 주변인에게도 편지를 자주 써주는 편인가요? 그런데 제 생각에 편지는, 정말 마음을 다해 쓰는 매개체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특별한 날, 특별한 사람에게 꼭 편지를 써서 선물해요.
저도 편지를 모아 두는 큰 보관함이 있거든요. 그래서 처음 예린 씨 이야기를 들었을 때 굉장히 반가웠어요. 누군가 나에게 시간과 정성,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것을 들여 쓴 것인 편지를 차마 버릴 수가 없더라고요. 맞아요. 어렸을 때에는 선물을 줄 때, 사실 현물을 주는 게 더 어려웠어요. 왜냐하면 가지고 있는 돈이 지금보다 훨씬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좋은 걸 주고 싶은데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은 얼마 없으니까. 그래서 마음을 다해 편지를 쓰는 게 훨씬 쉬웠단 말이죠. 그런데 이제는 편지가 더 어려워요. 그래서 정말 특별한 나의 마음과 진심을 전할 때 편지를 쓰게 되는 것 같아요. 그 편지가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아니까, 받으면 더 고마워하게 되고요.
맞아요. 학생 때처럼 무언가 사고 싶은데 돈이 부족해서 사지 못하는 상황이 조금 지나고 나서인 지금이 되니, 편지가 더 소중해지더라고요. 점점 시간이 갈수록 편지는 아마 더 소중해질 것 같아요. (잠시) 그럼 예린 씨에게 기억에 남는 편지가 있어요? 너무 많죠. 일단 시간 순으로 이야기를 해보자면, 고등학교 때에는 포스트잇을 여러 개 붙힌 편지를 제게 준 친구가 있었어요. 그런데 내용이 되게 특별했던 게, 너를 시기하고 질투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내가 너를 좋아했던 것 같다, 라는 되게 솔직한 마음을 담은 내용이었어요. 사실은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던 것이 미안해질 정도로 내가 그냥 너를 좋아한 거더라, 라고 말을 해준 게 너무 소중한 거예요. 돌이켜보면 솔직하고, 그 나이 때 할 수 있는 생각들이잖아요. 그런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해 준 그 친구가 너무 고맙고, 그 편지가 정말 기억에 남아요.
정말 굉장히 용기 있는 표현이 담긴 편지네요. 질투와 같은 감정들은 정말 써내려가기 쉽지가 않잖아요. 그리고 저는 이 생각을 정말 많이 해요. '질투'라는 감정이 입 밖으로 나오거나 표현이 되면 정말 사랑스러운 감정 같다는 생각이요.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 기억에 남는 편지는 제가 친구에게 쓴 편지예요. 제가 지금까지도 가장 친한 친구라고 자부할 수 있는 친구 중 한 명에게 쓴 편지인데요. 어쩌다가 이 친구와 딱 한 번, 정말 크게 싸우고 일 년 가량 말을 안 했거든요. 생각보다 긴 시간 동안 연락도 소통도 안 한 채로 지냈는데, 어쨌든 저의 잘못으로 인한 거였어요. 그래서 사이가 많이 틀어졌었는데 그 친구 생일이 된 거예요. 선물로 줄 친구 취향의 책을 한 권 사고, 편지를 용기를 담아 세 장 가량을 적었어요. 그렇게 택배로 보냈는데, 그 뒤로 장문의 연락을 받고 화해를 했어요. 제가 이 친구와 사이가 틀어지고 정말 연인과 이별한 기분으로 그 친구를 그리워했거든요. 그런데 그 편지를 쓰는 순간, 제 책을 내는 듯한 그런 노력과 정성으로 쓴 편지라 잊어지지 않아요. 그래서 제게 그 편지가 정말 특별해요.
그럼 이건 우리 예린 씨가 용기를 많이 내신 거네요. 맞아요. 그리고 그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이 참 기억에 많이 남아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이 들다가도 당연하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너무 많이 주고받았어서요. (웃음)
저 최근에는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한 친구와 이야기를 하는데 그 친구가 여행을 다녀오며 소중한 사람들, 그러니까 부모님, 애인, 그리고 몇몇 친구들에게 편지를 써서 선물했대요. 그런데 그 편지를 쓸 때 자신의 문체나 어투 같은 것이 꼭 받는 이를 따라가는 것 같다는 말을 해줬거든요. 이건 어때요? 예린 씨도 그런 것 같아요? 네, 그런 것 같아요.
왜일까요? 소통의 방향 아닐까요? 그 사람의 화법에 맞춰가는 것 자체가 배려이기에, 진심을 더 잘 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의사소통을 할 때에는 나만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닌 상대방도 배려해야 하는 게 당연하니까요. 그렇다 보니까 자연스레 문체가 닮아가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로 기억에 남는 편지가 있는데요, 전에 일했던 샐러드 가게 매니저님께서 그만두시며 제게 남겨주신 편지였어요. 그런데 그 편지 자체도 감명 깊었지만, 그분께서 편지에 대해 생각하기는 바가 정말 인상 깊었던 것 같아요. 그 매니저님은 자기가 편지를 쓰고 보내기 전에 사진을 찍는대요. 너무 소중해서요. 그 사람에게도 소중하지만 그 글은 자신에게도 소중한 거라서요. 그래서 나중에 읽어보며 내가 그 사람을 이런 식으로 생각했구나, 내가 이런 식으로 진심을 담는구나, 하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그게 너무 신기했어요. 받은 편지만이 아니라 쓴 편지도 계속해서 본다는 것이요.
제가 예전에 그랬어요. 그런데 요즘은 조금 생각이 바뀌어서 찍어놓지 않아요. 그 시점의 제가 생각하고 쓰는 것으로 남겨두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해서요. 신기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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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SOMMAR CHO
photographer SOMMAR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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