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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마 Nov 30. 2023

지금의 내가 됐다는 게 기특해요.

우울을 부드럽게 다룰 줄 아는 동은과 함께한 첫 포터뷰:블루.

우리는 모두 우울을 품고 살아간다. 우울은 어찌보면 꼭 필요한 감정이기도 하다. 누구나 가지고 있기에, 그 우울을 잘 다루어야 삶을 안온히 살아갈 수 있다.

<포터뷰:블루>를 함께한 첫 번째 모델, 동은. 내가 본 동은은 우울을 아주 부드럽게 다루는 사람이었다.














웃는 것이 너무나 싱그러웠던 동은은, 작년부터 올해 초까지의 우울에 대해 말했다. 괴리감에서 기인한 우울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누었는데, 그 괴리를 메꾸는 과정을 통해 우울을 성장의 계기로 삼은 동은이 참 멋있어보였다. 나는 아직 그러지 못하는 것 같았기에.














동은은 지금의 자신이 된 것이 기특하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무수히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 자신을, 기특하게 여기고 있는가?


우리는 모두 생이라는 것에 내던져졌고, 온갖 시련을 버텨 현재까지 왔다. 그렇기에 우리는 모두 기특하고 멋진 존재일 것이다. 이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 동은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포터뷰:블루 시리즈를 함께하게 된 첫 번째 모델님이에요. 사전질문지를 보면 다른 다양한 주제들이 있는데, 오늘의 주제인 '우울'은 어때요? 만족스러우신 주제일까요? 지금은 조금 우울하지 않다고 해야 할까요, 되게 가볍게 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우울'에 대한 이야기를 잘 나눌 수 있을까 걱정하기도 했고요.

왜 지금 스스로 가볍게 살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해요? 뭐라고 해야 할까요, 요즘 되게 고민 없이 살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 말은 즉슨 예전에는 고민을 많이 하면서 살아가셨다는 걸까요? 제가 작년에 재수를 했거든요. 그래서 너무도 힘들었던 그 시기를 지금과 분리시키는 것 같아요.

그럼 지금의 대학 생활은 좀 어때요? 처음엔 재수생과 대학생 사이의 간극에서 허우적댔어요. 지금은 잘 살고 있는 것 같고요. (웃음)

지금은 잘 살고 있는 것 같아요? 멋지네요. 잘 살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는 건 정말 멋진 일이죠.  그럼 우울함을 주로 느끼던 시기는 작년에 가까운 걸까요? 작년부터 올해 초까지였던 것 같아요. (잠시) 제가 우울이라는 주제를 도저히 하나로 정리하지 못하겠어서, 많이 고민하고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했어요. 제 우울의 근원 중 하나는 괴리감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의 나, 그리고 내가 원하는 나 사이의 괴리감은 항상 있잖아요. 그런데 그게 수험생 때 조금 더 심했던 것 같아요.

맞아요, 저도 수험생활이 정말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압박, 경쟁과 비교에 치여서 말이에요. 맞아요. 누구는 취업하고, 누구는 대학을 다니고... 그런 친구들과 나 사이의 간격은 점점 벌어지는 것만 같았고요. 저와 비슷한 친구들도 적지 않았지만, 사실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멋져 보이는 사람들이 눈에 잘 들어오죠. 또 그런 사람들만 우리의 기억에 깊게 남고요. 그럼 수능을 다시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느끼는 우울은 어떤 식으로 해소했던 것 같아요? 이것저것 하긴 했는데, 제일 많이 한 게 한강 공원을 걸으면서 노래 듣기, 였던 것 같아요. 학원이 끝나고 꽤 멀리 떨어진 집까지 걸어갔던 기억이 나요. 그게 좋더라고요. 내가 해냈다는 느낌이었어요.

맞아요. 그 느낌이 참 중요하죠. 저는 입시를 준비하면서 너무 힘들었던 게, 성취보다는 실패를 더 배워가는 과정처럼 느껴진다는 것이었어요. 최근에 또 수능 날이 있었잖아요. 제가 그날 카페에 앉아서 울면서 글을 썼어요. 그 글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전에, 동은 씨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 있어요. 동은 씨는 청소년기에 배우는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사회성이라고 생각해요. 조직에 들어갈 수 있을 만한 능력이요.

맞아요, 사회성은 정말 중요하죠. 그런데 저는 그 글에, 청소년기에 배우는 가장 중요한 것이 실패라고 썼었어요. 스스로가 그리 대단하지 않은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 이런 식으로 글을 전개해 놓았던데. 다음날 그 글을 다시 보니 참 슬프더라고요. 우리에게 실패는 많으면서도, 성공은 너무 막연하잖아요. 학교 생활을 생각해 봐도 성공이라는 게 웃기게도 수능 대박, 이런 것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실패의 경험은 반대로 너무나도 많이 존재하는데요. 그래서 하염없이 걸었고, 또 글을 자주 썼어요.

글을 자주 쓰셨군요. 어떤 내용의 글을 적으셨는지 궁금해요. 블로그에 글을 많이 썼는데요, 저는 시를 자주 썼어요. 제가 국어 과목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국어 수업을 들을 때 시를 배우잖아요. 그게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나도 써봐야지, 하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시상이 대부분 우울이었던 거죠. 나의 실패나, 나의 고통 따위의 것들이요.

동은 씨는 저와 되게 닮은 점이 많은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글을 자주 블로그에 써놓곤 했답니다. 조금 더 동은 씨의 글에 대해 자세히 듣고 싶어요. 이것저것 있긴 한데. 김광규 시인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라는 시가 있거든요. 그 시를 굉장히 좋아해요. 제 무력감을 담아서 투영해보기도 하고, 이어서 시를 쓰기도 했고요. 제가 생각했던 스무 살과, 현재의 스무 살 사이의 괴리감에 대해서요. 밤새 술도 마시고, 사랑도 하고 그럴 줄 알았는데. 나는 사실상 작년에 하던 일을 그대로 하고 있네, 하는 내용으로요. 재수를 하고 있는 친구들이 공감이 많이 된다고 이야기해 주어서 기뻤어요.

글에 대한 좋은 평가는 언제 들어도 기분이 참 좋죠. 저는 이렇게 글을 쓰는 걸 좋아하는데, 올해 초까지 우울이 연결되었던 것이, 제가 공대에 가게 된 것도 기인했던 것 같아요. 저는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고, 사유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공대에 가게 된 거죠. 그래서 또다시 괴리감을 느꼈어요.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것과 지금 하고 있는 것 사이의 괴리감이죠. 이게 맞나, 이대로 있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무력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어때요? 일단 받아들이고 해 보자는 마음가짐인 것 같아요. 하다 보면 조금 재미있다고 느껴지는 것도 있고, 이건 정말 아니다 싶은 것도 있고요. (웃음) 그렇게 맞춰가다 보면 새로운 길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멋지네요.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건 동은 씨가 정말 멋진 사람이라는 거죠. 그럼 올해 초와 지금, 달라진 건 무엇일까요? 올해 초까지는 우울함이 지속되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느끼시는 이유가 궁금해요. 그때는 우울하니까 별다른 일정이 없으면 집에만 있었어요. 그러다가 제가 5월에 학교 축제를 다녀왔어요. 연예인분들이 잔뜩 오시고, 동기들이랑 함께 구경을 했거든요. 저희 학교가 축제가 큰 편이고 응원도 많이 하는데, 그게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 순간 내가 지금까지 왜 집에만 있었지,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딱 5월 말부터 진행하는 학교 행사를 거의 다 참석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고, 만나는 사람들도 너무 좋은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학교 다니는 게 진짜 재미있어졌어요.

그러면서 덜 우울하다고 느끼시는 지금의 상황에 가까워지신 걸까요? 그렇죠. 생기를 찾은 것 같아요. 사람을 많이 만나면서요. 그 이전에 우울함을 느끼면 무조건 집에서 계속 유튜브만 봤거든요. 가끔 친구들을 만나면, 친구들과는 또 재미있게 웃으면서 놀았고요. 그런데 그게 여러 차례 반복되다 보니까 어느 순간부터 우울이 낮아지더라고요. 그렇게 우울이 점차 줄어들면서 지금에 와서는 안정적인 중간 상태에 머무르게 된 것 같아요.

좋네요. 긍정적인 변화는 항상 좋지요. 원래 말만 긍정적으로 하는 편이었는데, 요즘은 마음도 함께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럼 우리 동은 씨는, 살아가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지금 생각이 나는 답은, 살아가는 이유에 대한 답을 모르니까. 그걸 찾으려고 계속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윤동주 시인의 시를 되게 좋아하거든요. 윤동주 시인의 <길>이라는 시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라고요. 무언가 지금 나에게 없는 것, 그걸 계속해서 찾아가고,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소소한 이유들을 찾아가는 것, 그게 살아가는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너무 거창한 이유가 있으면 부담스럽잖아요. 그리고 그런 삶을 함께하는 동지가 있고요. 일단 작가님과 저만 해도 서로의 동지죠.

동지라니 너무 좋네요. 동은 씨의 이야기를 쭉 들으며 든 생각인데, 지금에서야 그 시기를 돌아보며 웃을 수 있는 시점이 된 것 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 시기를 어느 정도 회상할 수 있는, 그만큼 지나오고 성장해 온 시점이요. 동은 씨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제가 어제 저녁에 생각을 해봤었거든요. 우울이라는 게, 내가 극복을 했다면 또다른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성장의 계기가 되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제 우울은 괴리감에서 많이 온 거잖아요. 그런데 그 괴리를 메꾸면서 스스로 더 성장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기의 제가 너무 기특한 거예요.

어떤 점에서요? 하기 싫은 것을 꾸역꾸역 해내서, 어쨌든 성과를 낸 점이요. 우울한데, 어쨌든 잘 버텼고요. 그렇게 해서 지금의 내가 됐다는 게 기특했어요. 그래서 이제 조금 힘든 일이 있으면, 그때의 기억이 있으니까 좀 더 잘 지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심리학적으로도 그런 표현이 있잖아요. '회복탄력성'과 같은 표현이요. 지금, 과거의 내가 기특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가요? 그렇죠. 그간 경험해 왔던 것들이 쌓여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잖아요. 그래서 이러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정말 기쁜 일인 것 같아요.

그럼 지금의 삶에 얼마나 만족하시나요? 수치로 표현하자면 70퍼센트 정도인 것 같아요. 하루하루 즐겁기는 한데, 평생 이렇게 살아도 되겠다 싶은 마음은 또 아니거든요.

그 이유를 조금 더 들어볼 수 있을까요? (잠시) 지금은 성취감이 부재한 것 같아요.

성취감이요? 어떤 면에서 그렇게 느끼시는 걸까요? 스스로 자기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거든요. 나아지진 못하더라도 뒤쳐지고 싶진 않은데,라는 생각을 해요.

그런데 다르게 생각해 보면, 지금 저와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동은 씨는 발전하고 나아지고 있는 거죠. 그렇네요.

그런 기회를 함께하게 되어 진심으로 기쁩니다. (웃음) 그럼 삶의 만족도는 몇 퍼센트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무언가 100퍼센트는 아닐 것만 같은데요. (잠시) 평균적으로 70퍼센트가 딱 좋은 것 같아요. 평균적으로요. 더 만족스럽고 재미있는 날도 있을 거고, 조금 부족한 날도 있을 거고요. 그런데 그 부족은 또 만족을 위해 나아갈 수 있잖아요.

그럼 지금 삶의 만족도가 70퍼센트 정도라고 앞서 말씀하셨는데, 꽤나 좋은 상황인 걸까요? 그렇죠, 꽤나 좋아요.

좋네요. 그럼 이제 포터뷰가 마무리되어 갑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실까요? 마지막이라고 하니까 뭔가 멋진 말을 해야 할 것만 같네요. 마지막으로 기억이 될 테니까요.

맞아요,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힘이 생각보다 크지요. 아무거나 편하게 말씀해 주셔도 좋답니다. (잠시) 우울이 나쁘게 보이는 게, 보통 사람들이 우울한 상태를 싫어해서 그런 거잖아요. 그러니까, 우울한 나라도, 우울하지만 할 수 있는 게 많다는 것을 알고, 사랑해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사랑해주고 계신가요? 그러지 못했던 것 같아서, 지금은 그러려고 하고 있어요. 좀 부족하면 어떻고, 좀 힘들면 어떻고. 그냥 편하게 생각하면, 사실 부족한 것도 부족한 게 아니고 힘든 것도 힘든 게 아니더라고요. 쉬운 게 아니라는 걸 알지만, 마음가짐이 참 중요하다는 걸 기억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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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SOMMAR CHO

photographer SOMMAR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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