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고 싶은, 것은 잘 죽고 싶은 마음에서 기인한다는 은영
살아가는 이유가 무어냐는 나의 질문에 은영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나로서는 이 답변이 새롭게 느껴졌다. 나는 너무 오랜 기간 동안 살아가는 이유에 골몰해 지내왔기에.
이어 은영은, 잘 살고 싶은 것이 잘 죽고 싶은 마음에서 기인한다고 말했다. 잘 죽는다는 건 어떤 것이냐 묻는 나의 질문에, 은영은 미련과 후회가 없는 삶이 '잘 죽'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죽는다는 것의 의미가,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보다 더 크다는 은영의 말을 여러 번 곱씹었다.
우울을 '극복'해야 하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는 은영이 말이 좋았다. 그저 '잘' 우울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뿐.
사람들이 많이 우울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은영. 모두가 많이 우울해보고, 또 많이 성장하기를 바란다는 말에, 나는 또 한 번 힘을 얻는다.
포터뷰를 함께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어떻게 신청하게 되셨는지, 또 오늘의 주제인 '우울'이 마음에 드시는지 궁금해요. 제 마음을 꿰뚫어 보고 알고리즘에서 띄워준 것 같이 느껴졌어요. (웃음) 내가 우울한 걸 마침 알고 날 위해 포터뷰를 알려준 것 같은 느낌이었달까요.
저는 되게 궁금했어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우울을 다루며 살아가는지요. 그래서 기획해서 만들어진 것이 '포터뷰:블루'이기도 해요. 저도 궁금했어요. 다른 사람들은 자신이 우울한 것을 아는지요.
그게 어떤 의미예요?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우울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병원에도 잘 가지 않으려 하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은 본인이 우울하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을까, 궁금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은영 씨께서는 자각하고 계신가요? 저는 자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심리검사를 받기 전까지만 해도 스스로 별로 우울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냥 상황이 힘든 것뿐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검사 결과 지표를 보니, 오히려 받아들이게 되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이 봐도 이 정도면 속으로 많이 곯았겠구나, 하고요. 그래서 저는 이후로 조금 더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결론적으론 좋은 결과로 이어진 걸까요? 그렇죠. 저는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아요. 우울하다는 감정이 되게 자각하기 힘든 것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그저 우울감을 느끼는 건가, 하고요. 또 슬픈 것하고 우울한 것은 다르잖아요 보통 그냥 힘들고, 다들 이렇게 살지 않나, 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우울할 때 은영 씨는 보통 무얼 하셨나요? 스스로 위로하는 시간을 많이 갖게 된 것 같아요. 힘들 때,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죠. 그렇게 일기도 많이 썼고요. 그러면 안 되는데, 술을 많이 마시던 시기도 있었고요. 제과제빵이나 네일아트를 하기도 했었어요.
베이킹 같은 것이 정신건강에 이롭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결과물이 바로 눈에 보이게 나오는 것들이요. 내가 노력해서 해낸 것을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거니까요. 또 이런 게 있는 것 같아요. 우울함의 수치에 따라 해야 할 행동이 다른 거죠. 말로 하니까 되게 웃긴 것 같은데 (웃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살고 있을 거예요. 어떤 날에는 친구들과 모여서 술을 마시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다른 날에는 집에 들어가서 나와 비슷한 느낌의 영화를 보기도 하지요. 그런 것처럼요.
나와 비슷한 느낌의 영화라면, 어떤 걸까요? 최근에는 <페르소나 : 설리>를 봤어요.
저도 본 영화네요. 저는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보고 왔습니다. 가서 감독님 GV도 듣고 왔어요. 감독님께서는 어떤 이야기를 하시던가요?
감독님께서 하셨던 말씀을 메모장에 적어두었는데 일부를 읽어드릴게요. "유작이었던 도로시의 세계관을 빌려와서, 우리 곁을 떠난 게 사실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간 것으로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이 사람은 도로시였고, 자신의 고향인 캔자스로 이 세상에서 미래를 위한 기도를 만들고 돌아간 거죠. 그건 끝이 아니잖아요." 감독님께서 이별과 작별의 차이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셨대요. 헤어짐이라는 뜻은 같은데, 인사를 하고 떠나는 것이 작별 같다고도 말씀하셨거든요. 이런 이야기들을 해주셨어요. 은영 씨는 어떻게 보셨는지도 궁금하네요. 영화를 보는 내내 진리 씨 특유의, 계속해서 말을 조심해서 하는 듯한 그 태도가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플랫폼에서 볼 수 있기에 언제든지 보고 싶을 때 꺼내볼 수 있어서 너무 좋고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고요. (잠시) 그런데 이 인터뷰, 많은 분들을 대상으로 진행 중이신가요?
네, 꽤 많이 신청해주신 것 같아요. 그럼 우리만 우울한 건 아닌가 보네요.
그렇죠. 포터뷰:블루를 진행하며 만난 한 모델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어요. 여기 지금 우울한 사람이 일단 두 명 있으니, 혼자가 아니라고요. 우리는 이미 서로의 동지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 동지라는 표현이 너무 좋았어서 기억에 오래 남아요. 맞아요. 그런데 저는 제가 우울하다고 하면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같은 부분이 있다고 느껴요. 외로움과 우울은 별개라고 생각하는데요, 사람들은 이 둘이 같은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사람들에게 우울하다는 말을 꺼내기가 더 힘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이야기를 꺼내면, '네가 나가서 사람들을 좀 만나봐'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니까, 결국에는 제 탓이 되는 거죠. 그래서 말하기가 더 싫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혼자만의 시간이 더 길어졌던 것 같고요.
그럼 우울함과 외로움은 어떻게 다를까요? 외로워서 우울할 수는 있는데, 우울하다고 해서 외로운 건 아닌 것 같아요. 요즘은 또 혼자 있는 걸 잘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기도 하고요. 전 혼자 있는 게 참 좋은데요. 사람들이 자꾸 오해를 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점점 입을 닫게 되는 것 같고요. 어느 날은 나가서 잘 놀다가, 어느 날은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어요. 그럼 일기장에 열심히 적었죠. 지금 보면 좀 부끄럽고요.
왜 부끄럽다고 생각하세요? 제가 항상 하는 생각 중에 이런 생각이 있어요. '죽고 싶다'는 생각은 스스로 비교적 괜찮다고 보는데, '죽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는 큰일이 났다고 봐요. 그런데 이번 연도에 그랬던 적이 있거든요. 그래서 큰일 났다고 생각하고 저는 오히려 더 바쁘게 살았던 것 같아요.
바쁘게 산 게 은영 씨에게 도움이 되던가요? 네, 전 그나마 나아졌던 것 같아요. 취미 활동을 다시 시작하고, 생각 정리가 잘 안 될 때는 일기를 썼어요. 다음 날 아침에 그 일기를 보면 별일 아니었네, 싶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그럼 우리 은영 씨는 살아가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그냥, 어차피 살아야 하니까요. (웃음) 잘 살고 싶으니까, 잘 사는 이유에 대해선 생각을 가끔 하는데요. 살아간다는 건, 잘 죽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지금 짐을 싸고, 하나씩 준비해서 멀리 떠나기 위해서. 그래서 잘 살고 싶은 게, 잘 죽고 싶어서인 것 같아요. 살아'간다'는 것은, 과정이잖아요. 그건 잘 죽기 위해서인 것 같아요.
그럼 잘 죽는다는 건 뭘까요? 후회가 없는 거죠. 미련도 없고. 그런데 제가 만약 우울해서 죽어버린다면, 그건 제 선택인 거겠죠. 더 이상 삶에 미련이 없으니까 그런 선택을 한 것일 테고요. 그런데 저는 지금 당장은, '이거 하나 더 해볼걸'하는 미련이 들 것 같아요. 죽으면 너무 억울하잖아요. 저한테는 죽는다는 의미가 살아가는 것의 의미보다 더 커서요. 그래서 작가님께서 '왜 살아가느냐'는 질문을 던지셨을 때 처음에 무어라 답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았던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이 자리에서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실까요? 사람들이 많이 우울해봤으면 좋겠어요. 우울함을 많이 겪게 되면, 시행착오도 물론 많이 겪겠지만, 저처럼 이렇게 정신적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우울해 보고, 또 많이 성장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저는 우울을 극복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내가 잘 우울할 수 있는 방식을 찾는 것이죠. 사람들이 잘 우울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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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SOMMAR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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