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게 서로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는 삶이길.
세은과 나는 올여름 독서모임에서 만났다. 나는 세은에게서 다름 속의 닮음을 발견했다. 나는 세은에게서 나와 비슷한 상처를 보았고, 나와 비슷한 걸음을 보았으며, 나와 비슷한 삶의 형태를 보았다.
세은은 나에게서 무엇을 보았을까. 사실 나는 세은에 대해 아는 게 많이 없는 것만 같다. 비슷하다는 것을 아는데, 비슷하다는 것밖에 모르는 것 같다.
그럼에도, 그렇기에. 더 살고 싶다. 세은과 더 많은 대화와 사유를 나누고 싶다. 오늘도 살아갈 이유를 하나 더 찾는다.
'서로에게 살아가는 이유가 되는 삶이길 바라요.'
세은이 나의 블로그에 달아준 댓글이었다.
서로에게 서로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는 삶이길 바란다.
우리가 서로에 기대어, 조금은 더 살아가길 감히 바라본다.
Sommar 사전질문지를 보면, 다양한 주제가 많지요. 오늘의 대화 주제인 '우울'이 마음에 드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Seun 저는 가끔 이런 걸 느껴요. 우울이 나고, 내가 우울인 느낌. 저번에 이런 적이 있었어요. 요즘 되게 행복하게 잘 지내는 것 같았는데, 간만에 우울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거든요. 그때 우울한 내가 진짜 나,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태껏 행복했던 저는 그냥 다른 사람이고, 우울해지고 나서야 비로소 제자신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Sommar 그런 생각이 들면 세은 씨는 기분이 어떤가요?
Seun 좀 이상했죠. 저는 이 생각을 자주 해요. 제가 정말로 우울한 건지, 아니면 그냥 '우울해요'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은 건지.
Sommar 그 두 경우의 차이는 뭘까요?
Seun 관심의 차이 아닐까요. 후자는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요.
Sommar 우울해서 사랑을 받고 싶어할 수도 있잖아요.
Seun 저는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바를 계속해서 고려하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볼지요. 남들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기분이에요. 저는 그래서 많이 궁금했어요. 소마님은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저는 남들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쓰는데 소마님은 그러지 않는 것 같아서요. 그래서 저는 소마님을 저와 굉장히 비슷하면서도 되게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Sommar 저는 세은 씨의 시선에서, 세은 씨와는 어떤 점이 달라보였던 걸까요?
Seun 소마님은, 되게 당차요. 소마님 스스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에 있어서요. 그리고 보다 더 우울의 끝자락에 있는 사람 같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어요. 제가 여름에 봤던 소마님과 겨울인 지금에 보는 소마님은 많이 달라졌어요. 그때는 소마님이 말을 하실 때, 무언가 '행복'과 비슷한 단어를 쓰지 않으셨던 것 같거든요. 행복이라든가, 만족이라든가 하는 단어들이요. 그런데 요즘에는 그런 표현들을 많이 하시는 것 같아서, 그래서 좋아요.
Sommar 저도 요즘 저의 긍정적인 변화를 체감하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어요.
Seun 아프고 우울한 것을 숨기지 않는다는 것이 저와 다르다고 느꼈어요. 지금은 저도 많이 변화했다고 느끼는데요, 소마님께 용기를 많이 얻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소마님이 꼭 알았으면 좋겠어요. 소마님이 있기에, 제가 변했고. 소마님이 그렇게 다른 사람들에게도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요.
Sommar 정말 감동적인걸요. 저는 어떻게 제 아픔에 당차고 당당할 수 있어왔나, 잠시 생각해 봤어요. 물론 저를 비난하는 사람도 분명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어렸을 적부터 가지고 있는 신념이라고 할 만한 것이 하나 있어요. 바로 '나는 잘못한 게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 감정 앞에, 스스로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아픈 것이, 제가 우울한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고, 제가 무언가 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요. 스스로 잘못한 것이 없다는 것을 비교적 빨리 깨달은 것 같아요. 저는 그래서 이러한 우울에 대한 이야기를 더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요. 우울은 잘못된 게 아니니까요. 그럼 세은 씨는 살아가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Seun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서 가끔 생각을 하는데. (잠시) 내가 사람을 사랑하니까.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아직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아있잖아요. 살아있으니까 살아가는 거고. 아직 명확한 이유는 찾지 못한 것 같아요. 그럼에도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극단적으로 들지 않는 이유는,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고, 또 달이 예쁘기 때문일 수도 있겠어요.
Sommar 좋네요. (잠시) 세은 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든 생각인데요, 저는 최근에 제가 스스로 나아지고 있는 걸까, 하는 약간은 오만한 생각이 들었어요. (웃음) 뭐든 인간은 다 나아지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겠거니와. 우리는 바보여서 그걸 계속해서 망각하지요. 그렇기에 상기하는 게 참 중요한 것 같아요.
Seun 상기하는 건 참 중요하죠. 스스로 되새기는 거요. 책을 읽다가 이런 대사가 있었어요. '인간은 이래서 안돼. 인간은 너무 쓸데없는 것에도 감정을 느끼잖아'라고요. 하지만 인간은 어쨌든 그 감정 때문에 여기까지 왔지요. 그래서 그 문장이 너무 좋아서 필사를 해놨던 기억이 있습니다. (잠시) 생명체 중에 자살을 하는 생물은 인간과 돌고래밖에 없다는 거 아세요? 애초에 자살이란 게 말이 안 된대요. 쥐들에게도 스트레스 실험 같은 것들 많이 하잖아요, 하지만 쥐는 자살하지 않는대요. 자해는 하더라도, 자살은 하지 않는. 대부분의 생명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살하기에, 어떤 분이 자살은 변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걸 들은 적이 있거든요. 자살에 대해 '변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 불편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있어요.
Sommar 자살이 생명체의 생존 본능에 반하는 행위이기에 일반적인 행위가 아니라는 건 많은 곳에서 다룬 내용이죠. 하지만 세은 씨가 그 표현에서 불편함을 느낀 건 '변이'라는 표현 때문이었겠지요? '변이'는 대부분 부정적인 표현으로 사용되니까요. 마지막으로 이 자리에서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실까요?
Seun 우리의 대화를 누군가 끝까지 옆에서 지켜봐 준 사람이 있다면, 굉장히 고마울 것 같아요. 여기까지 읽어준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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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SOMMAR CHO
photographer SOMMAR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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