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온종일 집안에서 울리고 있는 이 소리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 소리가 무엇인고 하니 바로 둘째가 돌을 가는 소리이다.
둘째는 지금 거실 한편에 신문지를 펼쳐놓고 고이 앉아 돌을 갈고 있다. 그제도 몇 시간을 갈더니 오늘도 아침 먹자마자 또 시작이다. 이번엔 어쩌다 돌에 꽂힌 것일까?
하긴 둘째는 어릴 때부터 돌을 좋아하긴 했다. 모양이 특이하거나 동글동글 예쁘거나 보석처럼 반짝이는돌들. 그런 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그렇게 돌멩이들이 하나씩 둘씩 생기면 나는 집에 있는 커다란 화분에 그것을 올려두곤 했다. 그러다 아이가 좀 크고 언젠가부터 돌을 가져오는 일이 뜸해졌다. 그렇게 잊고 있었는데, 그제 느닷없이 둘째가 화분 속 돌들에 다시 꽂혔다.하나씩 꺼내 들고 살펴보던 녀석이 갑자기 돌 하나를 꺼내며 물었다. 노르스름한 호박색이 물감을 풀어놓은 듯 옅게 그라데이션된 고운 빛깔의 돌이었다.
음, 돌을 갈 수 있는 게 없냐고? ...집에 뭐가 있을까?
잠시 생각하다 문득 떠오른 것은 칼 가는 숫돌. 쇠도 가는데 돌도 되겠지, 싶어 찾아서 꺼내주었다. 되든 안되든 얼마 하다가 말겠지 하면서.
그런데,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아들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돌멩이 연마를 끝낼 기미가 없었다. 끝내기는커녕 무어가 그리 재밌는지 콧노래까지 부르기 시작했다. 갈면 갈수록 자신이 원하는 모양이 되어간다고 신나게 자랑까지 하면서.
한동안 그렇게 돌을가는 데에만집중하던 아들이 갑자기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엄마. 이거 재밌어. 엄마도 갈아볼래?"
(놉, 난 사양할게) 하, 하, 엄만 저녁준비해야 돼서 아쉽네~
근데 진짜 신기한 건 돌이 제법 잘 갈린다는 사실이었다. 중간중간 어찌 되어 가나 살펴봤더니 진짜 돌가루가 수북해서 내심 놀랐다. 헐. 돌이 이렇게 막 갈리나?
그렇게 아들은 그날 자기 전까지 돌을 갈았다. 정말 몇 시간을 그것만 했다. 그러는 사이 돌은 동그란 모습에서 어느새 삼각형으로 바뀌고 있었다. 세상에나. 아들 너도 정말 대단하구나.
그런데 자기 전, 돌가루가 수북한 신문지를 치우려 했더니 아들 왈, 내일도 갈아야 된단다.
^^;;; 그, 그래. 하는 수 없이 돌가루만 버리고 나머지는 거실 한쪽에 치워두고는 내일은 적당히 하기를빌었다.
그리고 다음 날인 토요일도, 그 다음날인 일요일도 아침을 먹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아들은 다시 돌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쓱쓱쓱쓱, 돌을 열심히 갈며신문에 있는 기사를 읽기도 하고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면서. 몇 번이고 말려봐도 소용없었다.
주말 내 이게 무슨 일이고? 한두 시간도 아니고 지겹지도 않나? 그런 생각을 하며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둘째의 혼잣말이 들린다.
"인내심과 근력을 기를 수 있다! 돌이 이뻐지면서 행복과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
에고고. 아마 저도 며칠째 저러고 있는 게 힘들 것이다. 허리도 아프고 지겹기도 할 텐데 본인이 정한 목표가 있으니 그만둘 수가 없는 모양이다. 주문처럼 스스로를 독려하는 그 말을 듣고 있자니 그만하라고 더 말릴 수도 없다. 내가 보기엔 그저고생스러워만 보여도 저에겐 즐겁기도 하고 나름 의미도있는일인 것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공부는 하라고 하라고 해도 안 하는데, 본인이 하고 싶어서 하는 건 그만하라고, 그만하라고 노래를 불러도 "조금만 더 하겠다" 를 외친다. 그런 둘째를 보며 다시금 깨닫는다. 공부든 뭐든 본인 스스로 동해서 해야 한다는 것을. 그래야지 어려움이 닥쳐도 지속할 수 있고, 거기에서 즐거움과 보람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여기서 늘 고심하덧 한 가지 문제가 떠오른다.
그.래.서 공부는 어떻게 동하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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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여전히 잘 모르겠다 ^^;
그렇게 며칠째 아들은 열심히 돌을 갈고 있다. 돌은 이제 본래의 모습과 사뭇 다른 기타 초크 같은 모양이 되었다. 노랑빛이 도는 삼각형의 초크. 동그란 돌을 갈아 이걸 만들었다면 누가 믿겠는가.인내심의 승리가 따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