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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니오 Apr 18. 2024

클라이밍과 풀업바.

아빠는 안전제일주의자


작년 여름 우연히 실내 클라이밍을 접한 아들들.

뛰어노는 거 좋아하고 원체 몸도 가벼운 녀석들이라 첨인데도 넘 잘하더니 한 번만에 클라이밍의 매력에 쏙 빠져버렸다. 그렇게 단숨에 꽂혀버린 아들들 덕분에 매주 토요일은 클라이밍데이가 되었다. 시험 같은 특별한 일이 없다면 우리는 무조건 클라이밍장으로 향한다.


우리가 자주 가는 곳은 클라임존. 집에서 조금 거리가 있지만 처음 시작한 곳이기도 하고 사장님도 친절하셔서 우리의 주 아지트가 되었다.


하지만 클라이밍장이라면 어디든 환영이다. 명절날 시댁에 내려가서도 근처의 클라이밍장을 찾아내고, 괜찮은 클라이밍장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일부러 찾아가기도 한다. 각각의 시설마다 그곳만의 특색이 있기도 하고, 센터의 사장님마다 스타일이 다른 까닭에 가는 곳마다 새로운 스타일의 문제를 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작은 소망이 있다면 언젠가 아이들이 좀 더 크면 도장 깨기 하듯 하나씩 전국의 클라이밍장 투어를 다니는 것이다.








반년 넘게 그렇게 열심히 다니다 보니 녀석들의 실력이 쑥쑥 느는 게 보인다. 레벨1인 빨간색에서 시작한 난이도가 어느덧 레벨4, 5까지 올랐다. 가끔은 레벨6의 분홍색을 깨는 날도 있다. 따로 레슨을 받은 것도 없이 첫날 수업을 한번 들은 뒤로 자기들끼리 순수하게 올린 실력이라 정말이지 박수를 쳐주고 싶다.





사실 단순히 자주 간다고 해서 실력이 그냥 느는 것은 아니다. 클라이밍에 욕심이 생긴 녀석들은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각종 운동을 섭렵했다. 손아귀힘이 중요하다고 다이소에서 악력기를 사고, 팔근육을 늘리겠다고 저녁이면 푸시업을 다. 어디 공원을 지나다 철봉이라도 보일라치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달려들어 매달린다. 서로 경쟁이 되기도 하고, 스스로도 갈 때마다 실력이 느는 재미에 더 열심히였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기야 아이들이 졸라대기 시작했다.


집에 풀업바를 설치해 달라고.




하지만 우리 집 대장, 즉 우리 신랑은 안전제일주의자였으니....



ISTJ인 울 신랑으로 말하자면, 늘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ENFP인 나와 달리 언제나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해서 생각하는 사람이다.


가령 해운대 백사장을 걸으며 해변 번쩍번쩍한 고층 아파트들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와, 하고 감탄을 뱉는다. 하지만 그는 안 됐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한다.

"쯧쯧, 쓰나미 오면 제일 먼저 덮치겠군."

".......(나는 부럽기만 하고만 ㅡㅡ;;)"






그런 연유로 아이들과 합세하여 반년을 졸라봤지만 신랑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이유는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이따금씩 나를 졸라댔다. 그렇게 어느새 조금 잠잠해지는가 싶던 어느 날이었다.


명절이라 다들 모여 이야기를 하는데 클라이밍 얘기가 나왔다. 잠시 후 당연한 수순처럼 화제는 풀업바로  바뀌었다. 그런데 글쎄, 사촌 집에 풀업바가 설치되어 있다는 것이 아닌가!


그 얘기를 듣자마자 녀석들은 제 아빠가 들으란듯 다시 조르기를 시전했다. 사실 나도 집에 풀업바가 있으면 하던 참이었다. 매달리기도 하고 그참에 등근육도 기르면 좋지 않겠는가. 나는 이참에 제대로 푸시하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인터넷을 뒤졌다. 찾아보니 풀업바도 다양한 종류가 있었다. 나는 게중 제일 안전해 보이는 풀업바 몇 개를 골라 신랑한테 링크를 보냈다. 알아서 골라달라고. 그리고 기다렸다. 이번에는 먹힐 것 같은 강한 예감이 왔다.


잠시 후......


아이들과 셋이서 영화를 보고 있는데 톡이 왔다.


'앗, 신랑이 보낸 거다!!'


과연 어떤 모델로 골랐을까? 기대를 하며 셋이서 머리를 모은 채 신랑이 보낸 톡을 열었다.


쓰압! ㅡㅡㅡㅡㅡ;;;;;;;;;;;;;

.

.

.


[문틀철봉사고... 사용하지 말아야 할까요?]

[풀업바 사지 마세요]

[집에서 문틀 철봉 턱걸이 연습하다가 사고 영상]


신랑이 보낸 링크의 제목들이다.

음.......... 역시 안 되겠군.


이후 나는 깔끔하게 풀업바를 포기했다.

신랑을 교체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란 걸 깨달았으므로.



[문제의 카톡]



아직도 이따금 아이들은 풀업바 얘기를 한다. 그러면 나는 이제 더는 여지를 주지 않고 확실하게 말한다. "우리 집에 풀업바는 안돼. 아빠가 안 된다고 하셨으면 안 되는 거야." 그러면 아이들은 여전히 아쉬운 얼굴을 하긴 하지만 사실 본인들도 알고 있다.


안전에 있어서 아빠는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 가족은 든든한 아빠 덕에 안전하게 지내고 있다는(급훈훈하게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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