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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니오 Apr 16. 2024

우리의 합방은 요원하기만 하다.

우리 부부의 평화로운 각방 생활.


만난 지 30년 차.
결혼한 지 20년 차.



숫자로 꼽다 보면 가끔 나도 놀란다. 우리 정말 징글징글하게 오래도 되었구나. 크.


우리 부부는 각방을 쓴다. 


요즘 트렌드 뭐 그런 건 아니고 서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하다 보니 저절로 그리 되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애정 대상에게 달라붙는 걸 좋아하는 나는 신랑에게 팔다리를 착 감고 잠들곤 했다. 뭐, 얼마 지나지 않아 각자 편한 자세로 돌아누워 자긴 했지만. 그러던 것이 애들이 하나, 둘 태어나고 나도 신랑도 수면이 부족해지면서 점차 서로를 배려하기가 힘들어졌다. 그렇게 상황 따라 각자 편한 대로 지내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신랑은 거실에, 나는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큰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각방을 쓰고 있다. 신랑은 거실에서. 나는 큰방에서(아직도 둘째와. 씁). 그러니까 시작은 아이들이었을지 모르겠으나 우리의 각방은 어쩌면 필연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신랑과 나의 수면 패턴은 달라도 너~어무 달랐기 때문이다.


잠이 무척 많은 나는(평균 9시간은 자야 한다.) 밤 10시가 넘어갈라 치면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기 위해 서두르기 시작한다. 불을 끄고 커튼도 살짝 치고, 핸드폰은 한밤에 수면에 방해되지 않도록 무음으로. 잘 때는 어떤 빛도, 소리도 없이 오로지 잠에만 집중하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신랑은 올빼미 스타일로 12시는 기본, 한시나 두시쯤 되어야 잠자리에 든다. 그때까지 태블릿으로 유튜브 따위를 보면서 잠을 청하는 게 대부분이다. 잠드는 시각만도 서너 시간 차이가 나는 것이다.


게다다 신랑과 나는 온도에 대한 기준이 많이 다르다. 신랑은 더위를 심하게 타는데 나는 추위를 심하게 탄다. 내가 춥다고 보일러를 돌리면 신랑이 덥고, 신랑이 덥다고 선풍기를 틀면 나는 춥다고 이불을 뒤집어써야 한다. 굳이 한방에서 같이 잠을 청하려면 나는 혼자 전기장판을 깔고 따로 눕고, 신랑은 멀찌감치서 선풍기라도 켜놓고 자야 할 판. 그러니까 함께 편안하게 잠들기에는 헤쳐나가야 할 난관이 너무 많은 것이다. 서로 기질적으로 다른 탓에 본인에게 맞지 않는 상황을 애써 감수하며 참아야 하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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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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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연유로 우리는 각방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십 년 넘게 이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가끔 이제 그만 합쳐야 되지 않을까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딱히 굳이 합방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부부는 지지고 볶고 싸워도 한 이불 덮고 자야 된다는 말도 일리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세간의 말이나 남들의 시선 때문에 불편을 억지로 감수할 생각은 없다.


사실 아이들이 좀 컸을 때, 작은 녀석을 형 방으로 떼어놓고 잠시잠깐 합방을 한 적이 있었다. 애들을 독립적으로 키우려면 수면부터 일찍 분리해야 한다는 육아 트렌드에 맞추려는 생각도 있었고, 한 번씩 집에 오는 엄마가 각방을 쓰는 우리를 볼 때마다 입을 떼는 이유도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삼 주도 안 되는 그 짧은 기간 우리는 상당히 힘들었다. 시간이 흘렀다고 해서 서로의 성향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평생 가져온 생활패턴이 달라지는 것도 않으니까. 신랑은 나름 조심한다고 10시 이후엔 이어폰을 끼고 태블릿을 봤지만, 소리는 그렇다 쳐도 불빛까지 번뜩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거기다 아이들이 태어난 이후 잠귀가 밝아진 탓에 작은 소리에도 잘 깨는 나는 아무래도 신랑이 잠들기 전까지는 깊이 잠들 수가 없었다. 각자 자신의 취향에 맞춰 잠자리에 들던 생활에서 수면 패턴이 정반대인 상대에게 맞추는 생활로의 변화는 생각보다 고단한 일이었다. 덕분에 아침마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음에도) 간밤에 잠이라도 설친 것처럼 피곤한 채로 일어났다.


그렇게 불편한 걸 억지로 참던 어느 날이었다. 아직 초등 저학년이던 둘째가 작은 반란을 일으켰다. "나는 평생 절대 엄마랑 떨어지지 않을 거야!" 약간의 불안증세를 동반한 녀석의 선언에 나는 옳다구나 둘째를 받아들였다. 그래, 아직은 엄마 곁에 실컷 있어도 된단다. 흠흠.






그렇게 몇 년이 흘렀지만, 우리의 각방생활은 현재진행형이다. 각자만의 공간에서 각자의 성향에 맞게. 그러고 보면 각방은 상대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싶다. 나는 나대로 아직 아기 냄새가 남은 둘째 옆에서 얼마 남지 않은 순간을 맘껏 누리고, 신랑은 신랑대로 본인의 온도와 수면시각에 맞춰 잠들고 아침이면 혼자 조용히 잠을 깬다. 적당히 거리를 유지한 채 각자의 생활패턴을 지키며 서로의 일상을 조화롭게 꾸려간다. 이렇게 적고 보니 이 얼마나 평화로운 각방생활인지.


아무리 그래봤자 중학생이 되는 내년이면 둘째도 제 방으로 알아서 떨어져 나갈 것이다. 그러면 큰방에 덩그러니 나만 혼자 남게 된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다시 열심히 머리를 맞대어봐야 할 테다. 그동안 각자 편하게 즐기던 각방생활을 계속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이제 그 생활을 청산하고 합방생활을 시작할 것인지. 쉽지 않은 문제겠지만 어떤 방향이든 우리는 서로에게 맞는 합의점을 찾아낼 것이다. 여태 그렇게 서로에게 맞춰 온 것처럼. 


십 년 남짓한 각방생활의 경험자로서 조언하자면, 각방이냐 합방이냐 하는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공간의 거리가 마음의 거리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듯, 부부 사이의 애정전선에 이상이 없다면 한방에서 자든, 따로 자든 문제 될 것은 없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서로편의에 따른 선택의 문제니까. 우리의 각방은 서로의 다름을 수용하고 존중한 결과일 뿐이다.


따로 또 같이 우리 부부는 늘 함께 고, 앞으로도 별 일이 없다면 함께 할 것이다.

어쩌면....

사소해 보이는 그런 작은 차이들을 서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애정은 더욱 깊어지는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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