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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니오 Apr 11. 2024

라면과 아들.



아이들이 조금 어렸을 때의 일이다.


주말 오전.

느지막이 일어난 신랑이 간단히 아침을 때우려 냄비를 불에 올리다 말고 둘째를 불렀다.


"운아-, 너도 라면 먹을래?"

"네? 당근이죠!"


둘째가 '이게 웬 떡인가' 하는 얼굴 대답했다. 형아는 벌써 놀러 나가고 소파에서 혼자 놀고 있던 차에 횡재라도 한 듯한 표정이다.


이궁. 마뜩잖은 나는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이미 아침을 먹은 뒤지만, 다른 것도 아니고 라면을 거절할 리가 없지. 나는 신랑을 째려보다 다시 둘째를 보았다. 녀석은 "예-! 예-!" 를 연발하며 소파에서 신이 나 방방거리고 있다.


저런 저런. 나중에 라면 좋아하는 큰 녀석이 알면 무척 아쉬워할 광경이군, 하고 생각하다 얼른 창문을 열어젖혔다. 첫째가 오기 전에 라면의 흔적을 말끔히 없애버려야지.


되도록이면 라면을 주지 않으려는 엄마와 세상에서 라면이 제일 맛있다는 아이들.

특히나 큰 녀석은 삼시 세끼 라면만 먹으면 좋겠다는 멘트를 수시로 남발하는, 이 세상에 모든 종류의 음식이 다 없어져도 라면김치만 있으면 끄떡없이 살아갈 녀석이다.







잠시 후 물이 끓고, 라면스프를 뜯다 말고 갑자기 신랑이 입을 열었다. 라면 먹을 생각에 헤벌쭉하고 있는 둘째에게 넌지시 묻는 것이 있었으니...


"운아~ 라면이 좋아? 아빠가 좋아?"


헐..... 이것이 언제적 하던 질문인가? 그 유치함에 입을 떡 벌린 채 신랑의 뒤통수를 노려보는데, 곧바로 둘째의 대답이 이어졌다.


"당연히 아빠지~. 어떻게 라면이랑 비교를 해."


헉!!! 나는 녀석의 완벽한 대답에 혀를 내두르며 생글거리는 녀석을 보았다.


둘째들의 순발력이란. 저러니 안 예쁠 수가 없지.


둘째의 말에 기분이 한껏 업된 신랑은 좋아죽겠다는 표정으로 라면을 휘적휘적 댔다. 라면을 끓이는 건지 춤을 추는 건지 어깨를 덩실덩실하면서. 평소에도 둘째 사랑이 각별한데 얼마나 행복한 기분을 만끽하고 있을까. 신랑의 얼굴만 보아도 고스란히 느껴지는 감정에 흐뭇하게 보있을 때였다. 돌연 재밌는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서방, 있잖아..... 환이는 뭐라고 대답할까?"


잠시 침묵.


하지만 몹시나 궁금해진 나는 신랑을 다시 재촉했다.


"당신, 환이 오면 조금 전이랑 똑같이 한 번 물어봐봐. 응? 응?"


조용히 냄비 뚜껑을 닫은 신랑이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단호하게 말했다.


"안 해. 안 물어볼 거야."

"왜? 안 궁금해?"


잠깐동안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신랑이 뜬금없는 말을 뱉었다.


".... 상처받을 거 같아."

"뭐?... 누가?"


바로 이해하지 못 한 내가 되묻자, 신랑이 나직이 대답했다.


".... 내가...."


신랑의 그 진지한 대꾸에 나는 그만 웃어버렸다.

하지만 금세 이해가 되었다고나 할까.

그래, 그럴지도...


눈치 빠르고 애교쟁이인 둘째와는 달리, 늘 자유로운 영혼인 첫째. 그 엉뚱한 머리에서 무슨 대답이 나올지 나로서도 알 수 없다.


그래도 설마, '라면'이라고 할까? 물론 고민이야 하겠지만..... '라면이냐? 아빠냐?' 하고.


나는 혼자 큭큭대다 슬며시 고민에 잠겼다. 좀 있으면 돌아올 첫째한테 이걸 물어봐? 말어?

맛있게 라면을 후루룩대는 신랑과 둘째의 뒤로 가을 햇살이 장난스레 살랑살랑 비쳐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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