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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니오 Apr 04. 2024

애정결핍 아니고 애정과다.


<ENFP 팩폭>

- 상상력 풍부, 호기심 대마왕, 정신산만, 자유영혼.

- 감정기복이 심하다. 일명 조울증.

- 무언가에 금방 몰두하지만 금방 질려한다. 

- 관심 있는 것에는 끝도 없지만, 정작 관심 없는 것에는 1도 관심을 주지 않는다.

- 삶의 원동력은 사람과 사랑. 사람들에게서 에너지를 얻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




사랑을 먹고살고 사랑에 죽고 못 사는 ENFP는 늘 사랑에 고프다. 애정 대폭발. '사랑해'라는 말은 조사처럼 말끝마다 따라붙고, 사랑하는 이를 보는 눈에선 꿀이 뚝뚝 떨어진다. 상대가 원하는 만큼 주어도 언제나 넉넉한, 마르지 않는 애정의 샘물을 지닌 '나' 란 여자.




언제나 애정 뿜뿜, 사랑을 갈구하는 나. 젊을 때는 그런 내 모습에 지인들이 농담 삼아 '애정결핍'이냐고 놀렸었다. 그럼 나는 '애정결핍이 아니라 애정과다'라고 받아쳤다. 애정을 못 받고 자라 애정에 굶주린 게 아니라 애정을 듬뿍 받으며 자란 만큼 애정이 철철 넘쳐난다고.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 속에서도 우리 삼형제는 애정 하나만큼은 부족하지 않게 자랐다. 종종 너무 넘쳐 자식들을 힘들게 하기도 했지만 엄마는 자식들에게 무한애정을 주는 사람이었고, 그런 속에 나이차이가 많지 않은 동생들과 나는 친구처럼 자랐다. 셋이 모이면 장난감 하나 없이도 일 년 365일 신나고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그런 덕에 돈은 없었어도 나름 충만했던 나의 어린 시절은 나를 사랑으로 충만한 여자로 만들었다.

 

그런 내가 어쩌다 애정표현에 유독 박한 ISTJ의 남자를 만나게 되었을까? 그건 아마도 금사빠인 ENFP 특유의 자기합리화 덕이 아닐까 싶다.


사랑에 빠지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유독 짙은 색안경을 끼게 된다. 가령 한창 연애 중도 아닌 신혼 때까지도 드라마만 보면 남주의 얼굴에 신랑의 얼굴을 겹쳐 보곤 했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과 대화 중에 저도 모르게 "드라마를 보다가 이병헌의 얼굴이 우리 신랑처럼 보이더라." 따위의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소릴 하곤 했다. 그러면 모두들 경악한 채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언니야, 그건 아니잖아!!!" 물론 내가 내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송혜교 비슷했던 적이 없었듯이, 우리 신랑 또한 이병헌 이랑은 전-혀 거리가 멀다는 건 나도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순간 내 눈에는 정말 그렇게 보였는 걸 어쩌겠는가. 흠흠.






당연한 수순처럼 지금은 그 애정의 대상이 아이들에게로 옮겨갔다. 잠든 모습은 천사 같고, 녀석들 입에 음식 들어가는 게 세상 제일 행복한, 옆에서 그저 바라보는 것만도 눈에 생기가 도는 아들 바보 엄마. 자식에 대한 애정이야 어느 부모든 마찬가지겠지만, 내 뱃속에서 나와 나랑 같은 성향을 지닌 녀석들을 보고 있자면 신기하기도 하고 경이롭기도 하다. 하지만 부모라도 자신과 다른 성향의 자식들 때문에 힘들어하는 경우를 주위에서 심심찮게 본다. 서로가 가진 성향이 다른만큼 상대를 이해하기 힘드니까.


처음에 우리 신랑이 그랬다.


ISTJ 극현실주의적인 신랑은, 어릴 때부터 ENFP 특유의 초초초현실적인 면모를 뽐내는 첫째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은 그것이 고쳐야 할 문제가 아니라 아이의 성향이란 걸 이해하고 받아들이지만, 아이가 한참 클 때까지도 그 문제로 우리는 많이 부딪치고 싸웠다. 같은 성향인 나야 아이의 엉뚱하고 별난 행동들을 이해하며 기다려줄 수 있었지만(사실 나도 쉽지는 않았다;;), 정반대의 성향인 신랑은 그냥 보고 넘기기 힘들었을 터였다. 신랑이 그것을 이해하는 데에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제 신랑은 아들의 엉뚱한 행동을 보고도 지적하지 않고 고치려 하지 않고 그냥 웃고 넘긴다. 아니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으며 나를 쳐다보거나. 그 눈빛 속에 담긴 의미를 나는 안다. 어찌 저런 건 그리 똑같이 닮는가 하는 표정. 여전히 머리로는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해도 신랑은 우리의 모습 그대로 우리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집은 늘 시끌벅적하다. 사람 좋아하고 흥 넘치는 ENFP 셋이 모였으니 텐션 업업,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둘째가 피아노를 치고, 첫째는 신곡이란 신곡은 죄다 불러대고, 덕분에 나도 모르는 노래가 없다보니 따라 부르며 씐나씐나~.


물론 이런 우리의 평화는, 언제나 말없이 우리 곁에 머물며 한결같이 우리를 지지해 주는 신랑이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주체하지 못하는 흥부자 ENFP들이 너무 업됐다 싶거나 정도를 초과해 오바라도 할라치면 두둥 바야흐로 신랑의 등장 타임이다. 가만히 방문이 열리고 신랑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고는 스스로 조절 못하는 ENFP들을 꾸-욱, 꾹 눌러준 다음, 조용히 본인의 방으로 사라진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며 종종 나는 생각한다.

ISTJ와 ENFP가 상극이라고? 놉! 어쩌면 우리는 의외로 최고의 궁합일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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