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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니오 Mar 28. 2024

아들과 원심력.


일주일에 한 번 재활용을 하는 날이었다.

쓰레기 담당은 신랑이지만 그때그때 상황 봐서 내가 하기도 하고 아들들을 시키기도 한다. 신랑이 바쁜 시기라 방학을 맞아 열심히 뒹구는 중인 첫째를 불렀다.

"아들, 오늘 재활용해야 하는데 같이 가지고 나가자. 아빠 오늘도 늦어."

"네!"

웬일로 곧장 대답하고 방을 나오는 녀석. 내가 잔소리하기 전에 반팔, 반바지 위에 잠바도 갖춰 입었다. 고분고분한 아들의 모습에 왠지 흐뭇해진 나는 아들과 이마트 종이백(이마트 배송 때마다 물건을 담아 오는 것인데 여간 유용한 것이 아니다)을 하나씩 안은 채 현관을 나섰다. 종이가 든 것은 무거워서 아들에게 맡기고, 나는 가벼운 것들을 종이백에 한데 넣은 채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그런데 어쩐지 슬슬 불안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나는 고개를 돌려 아들을 돌아보았다. 역시나 엘리베이터가 올라오는 그 잠시의 시간을 참지 못하고, 아들의 엉뚱함이 고개를 슬쩍 내밀고 있었다. 아들은 들고 있던 종이바구니의 무게를 가늠하며 무언가 생각하는가 싶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

"엄마, 원심력이란 게 있잖아. 그러니까 이거를 이렇게 빙빙 돌리면 안에 있는 게 안 떨어지겠지?"

"......아들, 엘리베이터 왔다. 얼른 타."

마지못해 엘리베이터에 오르긴 했으나 아들은 연신 고개를 갸웃갸웃하는 모양새였다.

그래, 궁금해 죽겠지?

계속 혼잣말로 원심력이 어쩌고 저쩌고 하며 종이가방을 흔들대던 아들이 물었다.

"엄마, 여긴 너무 좁겠지?"

"......"(나는 말대신 그냥 째려보았다.)


그러나 역시 끝을 봐야겠지.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아들이 들고 있던 종이가방을 슬슬 롤링하기 시작하며 외쳤다.

"엄마, 이거 내가 빨리 돌리면 원심력이 생기니까 안에 있는 종이가 안 떨어질 거야. 그렇지?"

.......그, 그럴 리가요?

"하지맛!!"

하고 외쳐보지만, 사실 더 적극적으로 말려보지는 않는 ENFP 1인.

내가 뭐래거나 말거나 한번 해봐야 궁금증이 해소되는 또 다른 ENFP 1인.


"이렇게 원심력의 힘으로 얍!!!!!"

그 소리와 함께 하늘로 거꾸로 오른 종이가방은 곧장 안에 있는 것을 바닥 반경 2미터 안으로 다 토해냈다. 하, 하하.

"어, 어. 원심력이 있는데 왜? 왜에-????"

경악한 채 바닥과 종이백을 번갈아 보는 아들을 남겨두고 나는 재활용을 하는 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아들, 그거 다 정리해서 들고 와."


남은 재활용 쓰레기를 하나씩 분리하고 있는데, 종이를 다시 주워온 아들이 씩씩거리며 외쳤다.

"과학은 다 가짜야."

저, 저기요, 이것이 진정 물, 화, 생, 지를 배우는 중3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란 말인가.

"아들, 원심력만 생각하고 지구 중력은 생각 안 하냐?"

극단순한  ENFP 아들에게 한마디 툭 던지고 쏠랑 계단을 오르는데, 뒤에서 아들이 중얼대는 게 들렸다.

"우씨, 여기 무중력 아녔어? 무중력인 줄."

헐,,,,, 이제 돼도 안 하는 우기기 신공까지.

"엄마, 내가 여기가 사실은 무중력이란 걸 보여줄게."

그 말과 함께 아들은 긴 다리로 한 층을 거의 뛰어오르듯 한번에 오르더니 씨익 웃으며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해 보였다. 그런 아들을 보며 어이없어하면서도 그저 함께 하는 그 모든 게 좋은 나는, 우리가 같은 ENFP인 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우와, 아까 그거 우리 신랑이 봤으면 완전 난리 났겠지. 텨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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