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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니오 Mar 26. 2024

죽어야만 끝나는 무한반복의 세계

잃어버리는 자와 찾는 자


자주 물건을 잃어버린다. 

그것도 집안에서, 하루도 몇 번씩.

잃어버리고 찾고, 잃어버리고 찾고 무한반복.


방금 들고 있던 폰이 어디 있는지, 금방 끼고 있던 안경이 어디 갔는지, 좀 전에 가져왔던 양말은 어디 뒀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뭔가를 찾아 집안을 헤매고 있으면 신랑은 늘 말한다.

물건은 항상 두는 곳에 두라고.


맞는 말이다. 나도 알고는 있다. 하지만 알면서도 잘 고쳐지지 않는다. ㅜㅜ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것은, 따로 있다.

내가 그렇게도 찾아 헤매는 그 무언가를 신랑은 용케도 찾아낸다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이 어디에 있던 신랑은 그것을 잘도 찾아낸다. 심지어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정말 말도 안 되는 곳에 둔 물건까지 신랑은 귀신같이 찾아내고야 만다.






예를 들면 최근에 있었던 차키 분실 사건에 대한 일화가 있다.

그날, 아이 학원을 픽업하러 집을 나서던 나는 조금 전까지 손에 들고 있던 차키를 찾지 못해 십여 분을 헤매다 결국 아이를 택시에 태워 보냈다. 그러고도 한참을 집안을 뒤지다 나중에는 아이들까지 동원했지만, 결국 포기하고 신랑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분명히 집에는 있으나 아무리 찾아도 집에는 없는 미스터리.


퇴근한 신랑에게 오늘 사라진 것에 대해 얘기하고 찾아주길 요청했다. 사태에 대해 듣고는, 쯧쯧 혀를 차면서도 눈에 생기가 도는 신랑. 옳다구나 내가 나서야 할 때군, 하는 표정으로 집안 수색을 나선다. 무슨 사건이든 해결하는 명탐정 코난처럼 자신만만하게 미션을 시작한 신랑.


먼저 내게 사건의 상세 개요를 물은 신랑은 내가 움직인 동선부터 파악한 후, 구획을 나누어 하나씩 꼼꼼히 뒤지기 시작한다. 간혹 너무 얼토당토않은 곳을 뒤지기도 해서(가령 양말을 찾는데 냉장고문을 연다거나, 폰을 찾는데 세탁기를 찾아본다거나-나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닌데;) 나의 원성을 듣기도 하지만, 신랑은 굴하지 않고 본인의 의지대로 하고야 만다. 정말 가-끔은 그런 곳에서 찾아준 적도 있긴 하다;;


그리고 한참을 온방을 뒤지는 신랑을 보며 나는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하소연을 했다. 구석구석 서랍까지 열어보는 신랑 뒤를 쫓아다니며 한숨을 폭폭 쉬다 '진짜 없는가 보다, 내가 어디 밖에서 잃어버리고 착각하는가 보다' 포기하고 앉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신랑의 목소리가 들렸다.

"찾았다!"  


그리 찾아도 없었는데, 온 집안을 샅샅이 뒤졌는데... 신랑의 말이 믿기지 않아 눈을 남산만하게 뜨고 쪼르르 달려 나가니 신랑이 보란 듯이 차키를 흔들고 있었다. 세상에나 그게 어디에 있었어?


그러자 신랑이 키를 다시 원위치로 돌려놓았다. 헐..... 키는 신발정리선반에 놓인 운동화 옆에 있었다. 그러니까 신발을 신으려 들고 있던 키를 잠시  위에 두고는 신발을 신고 나선 그 사실을 잊어버린 것이다. 그제야 아하, 기억이 났다.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지만 종종 있는 일이다. 역시나 ISTJ다운 꼼꼼한 신랑의 수색능력에 감탄하며 나는 신랑을 한껏 추켰다.


그렇게 이십 년, ENFP인 나는 늘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ISTJ인 신랑은 그걸 다시 찾아준다.

덤벙덤벙대는 내가 그때그때 되는대로 물건을 놓아두고선 돌아서서 잊어버리고 나면, 꼼꼼한 신랑이 제자리를 찾아 내가 발견하기 쉽도록 한다. 미안하고도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며칠 전의 일이다.


"맨날 보이는 데 아무 데나 툭툭 던져두제."

안방에서 책을 읽고 있는 내게 폰을 가져다주며 신랑이 말했다.

'어 이게 어디에 있었지?' 싶으면서도 괜히 "뭐,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하고 받아쳤다.

그러자 신랑 왈, "이십 년을 살아도 새삼스럽네."

ㅡㅡ;;;


그런데 책을 읽는데 자꾸 머리가 흘러내리는 거다. 그러고 보니 머리띠는 또 어디 갔나?

신랑을 따라 거실로 나오며 "머리띠가 어디 갔지? 운아 머리띠 못 봤어?" 했더니, 아들이 말했다.

"엄마는 맨날 뭘 잊어버려?"

안 그래도 방금 신랑한테 면박을 들은 터라,

"너도 늙어 봐라!" 하고 대꾸했다.

그랬더니 뒤에서 신랑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너희 엄만 젊을 때부터 그랬다."

ㅡㅡ;;;;;;;


확 고개를 돌려 째려보는데 허거걱 신랑이 컴퓨터방에서 머리띠를 찾아 나왔다. 도대체 왜 거기 있는지 짐작도 가지 않은 내가 급꼬리를 말고 머리를 긁적였다.

"어, 이게 왜 거기 지?" 하면서.

그러자 신랑이 "할 말이 없네." 하며 가만히 나를 바라봤다.

"왜, 할 말이 많이 있는 거 같은데 해 봐 봐."

"아니, 너-무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이 없다."

그러면서 신랑은 컴퓨터방으로 쏙 사라졌다.

ㅡㅡ

음. 사실 나도 할 말은 없어서 신랑이 막 닫은 방문만 째려보다 말았다.

그러고는 혼자 조용히 생각했다.


신랑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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