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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니오 Mar 21. 2024

아들은 지금 사춘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엄마~~~~"

큰아들이 애절하게 나를 부른다.

"왜~~~~ 아들."

나도 애절하게 답해주고는 다시 설거지를 한다.

잠시 후 어디선가 달려온 녀석이 백허그를 하며 외친다.

"엄마, 사랑해!"

"아니, 내가 더 사랑한다. 아들."

"무슨 소리! 내가 더 사랑한다고!!!."

그러면서 나를 번쩍 들어 올려 공중부양시켜 놓고 절절매는 나를 보며 까르르 거리는 녀석.


요즘 우리 집의 풍경이다. 사춘기가 거의 지난 아들 녀석과의 그야말로 평화로운 실랑이가 아닐 수 없다. 이미 초딩 때 나름의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치고 난 첫째는 지금은 나와 친구 같은 사이가 되었다. ENFP 아니랄까 봐 감정표현에 아낌이 없는 녀석은 특히 본인이 기분 좋을 때면 사랑이 뿜뿜 넘쳐난다. 공부하다가도 숙제하다가도 뜬금없이  "엄마! 사랑해!" 하며 애정공세를 퍼붓곤 한다. 그런데 유독 자기 큰 거 볼 때 사랑해라고 외치는 건 무슨 이유일까? 흠흠. 아무튼 (세상의 중심이 아닌) 화장실에서 사랑을 외쳐대서 조금 난감하기는 하지만 어느 때고 나는 반가이 대답한다. 아들, 엄마도 무지무지 사랑해~~~






이와는 반대로 둘째는 요즘 '사랑'의 'ㅅ'라도 꺼낼라치면 죽는시늉을 한다. 작년 말부터 말과 행동이 삐리 하더니, 그렇게 사랑 노래를 부르던 녀석이 이제 정반대가 되었다. 요즘 애들은 뭐든 빨라서 보통 5학년 때부터 사춘기라더니 그런 것도 유행을 타나 부다. 아무튼 맨날 물고 빨던 녀석이 돌변하여 엄마는 조금 슬프다.


막내는 어디서나 그렇겠지만, 아들 둘 밖에 없는 집 막내는 찐사랑이다. 궁둥이도 발가락조차도 다 이뻐 보이는 그저 사.랑. 그 자체인 녀석. 털털하다 못해 실없는 첫째가 눈치 1도 없이 행동하는 데에 반해 상황에 따라 이쁜 말도 척척 잘해주던, 잘 때면 내게 찰싹 달라붙어 1에서 100까지 세어가며 쪽쪽 야무지게 뽀뽀해 주던 우리 집 막내.


그러던 녀석이 이제 내가 뽀뽀라도 할라치면 잽싸게 손으로 막아버린다. 우씨. 신랑한테는 종종 그러긴 했지만 설마 내가 블로킹의 대상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니, 아직은 좀 더 먼 얘기인 줄 알았다. 그동안 신랑이 둘째한테 저지당하는 것을 볼 때마다 멋모르고 웃었던 걸 반성한다.


이제 둘째하고 얘기라도 할라치면 대답은 거의 단답형이고 말투는 중딩이 형처럼 거칠어졌다. 둘째는 다 빠르더니 빨리 안 해도 되는 것도 빨리 배워버렸다. 씁. 조금 더 안아주고 이뻐해 주고픈데 울집 막내는 이제 남자가 되어가고 있다. 둘도 없는 내리사랑이라 종종 서운해지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순리이니 그저 시간이 가기를 기다린다. 아쉬운 건 아니지만 대신 내겐 방금 사춘기에서 돌아온 첫째가 있다. 이럴 때는 아들이 둘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둘째랑은 아직까지 같이 잠을 잔다. 초등 저학년 때 육아서대로 일찍 수면 분리를 하려다 실패한 이후로, 아이가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하긴 생각해 보면 큰 녀석도 중학교에 가고 나서야 자기 방을 찾아갔었다. 아마 둘째도 때가 되면 자연스레 떨어지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우스운 일은, 낮에는 한껏 다 큰 아이인 것처럼 행세하던 둘째가 밤이 되면 다시 어려진다는 거다. 등 뒤에 착 달라붙어 팔이며 다리로 나를 칭칭 감고서 잠을 청하는 녀석. 그러면 나는 가만히 눈을 감고 그 순간을 즐긴다. 다시 오지 않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작은 호사를 마음껏 누려본다. 잠시 후 이내 잠든 아이의 쌕쌕이는 숨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려 가만히 잠든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다 보면 저절로 감사인사를 하게 된다. 지금 이 순간 함께 있음을, 건강하게 잘 자라주고 있음을, 그저 내 옆에 이렇게 있어주고 있음을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둘째도 사춘기를 무사히 보내고 돌아올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화사한 웃음으로 아들을 반길테다.


사랑한다.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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