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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니오 Mar 18. 2024

우리 신랑은 하숙 중.


오랜만에 친구와 점심을 먹으며 수다를 떨던 중이었다. 우리 식구가 한집에서 주거주지를 분리해서 따로 지내는 이야기를 듣던 친구가 말했다.

"뭐야. 그러면 언니 신랑은 집에서 혼자 하숙하는 거나 다름없네. 밥 먹을 때 빼고는 따로 생활하는 거잖아. 완전 하숙생이구만. ㅋㅋ"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대답했다.

"하숙생이라.... 뭐 그런 셈이네. 돈도 벌어다 주는 고마운 하숙생~. ^^;"

내 말에 친구는 배를 잡고 깔깔 웃었다.



우리 집은 크게 두 구역으로 나뉜다. 신랑이 주로 지내는 컴퓨터방. 그리고 아들 둘과 나 이렇게 셋이 주로 생활하는 나머지 공간. 그것은 누구의 개입 없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각자의 성향에 맞게 자연스레 구획된 것이다. 혼자 있기 좋아하는 ISTJ인 신랑은 조용히 혼자. 한데 어울리기 좋아하는 ENFP인 우리들은 셋이서. 그렇게 각자의 성향에 따라 편한 대로 생활하다 보니 우리 가족 속 섬처럼 신랑은 따로 지내는 경우가 많다. 그 습이 친구가 보기엔 방 하나에 하숙 든 하숙생같이 여겨졌나 다.






작년에 재미로 MBTI를 해보다 아이들 둘 다 나와 같은 ENFP인 것을 알았다. 첫째가 그런 것을 알았을 땐 조금 놀랐지만 이내 수긍이 되었는데, 둘째까지 그렇다는 것을 알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집에 MBTI가 같은 사람이 셋, 그것도 둘째까지 ENFP라니.


첫째는 누가 봐도 나와 비슷하다. 나의 어린 시절을 연상케 하는, 나와 뇌 회로가 비슷한 녀석. 그러나 외모부터 신랑을 쏙 빼닮은 둘째는 첫째와 달리 꼼꼼한 편에 규칙을 중시하는 면도 있어 당연히 신랑과 비슷한 성향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너도 ENFP라고? 쿨럭.


MBTI는 참고만 할 뿐 그 결과를 맹신하지는 않는다. 같은 사람이라도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도 하고, 같은 사람이라도 시간이 지나며 성향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으니까. 하지만 둘째의 결과를 보며 '피는 못 속이는 것인가, 아니면 환경의 탓인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형을 동경하는 녀석이라 한창 형의 행동을 따라 하는 시기라 그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추측을 해볼 뿐.


그리하여 졸지에 ENFP 셋이  우리 집은 그 성향답게  시끌벅적 왁자지껄하다. 혼자임을 즐기는 ISTJ와 달리 사람에게서 에너지를 받는 ENFP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데다 비슷한 성향끼리 모이면 시너지 폭발. 그런 까닭에 우리 집은 매일 엇비슷하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365일 버라이어티 하다.



이쯤에서 조금 궁금해질지도 모르겠다. 그런 가운데 우리 신랑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하고.


신랑은 주로 본인만의 방에서 모든 것을 해치운다. 식사와 수면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그곳에서 혼자 휴식과 재충전, 공부 등을 하며 보내는 것이다. 밖에서 셋이 요란을 아무리 떨어도 웬만큼 면역이 생긴 신랑은 끄덕하지 않고 본인의 할 바를 한다(물론 가끔 뭐 그렇게 재미난가 궁금한 표정으로 방에서 나올 때도 있지만.^^;).


그래서 우리는 집에서 주로 3:1로 지낸다. 신랑은 컴퓨터방을 주무대로, 우리는 거실을 주무대로. 신랑은 인터넷과 컴퓨터만 있으면 365일 24시간 방에서 나오지 않을 수도 있는 사람이고, 우리는 우리대로 거실과 나머지 방들을 누비며 각자 할 일을 하고 하루를 보낸다. 누구는 그런 식으로 지내는 게 좀 이상하지 않느냐고 묻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의 상태가 편안하다. 각자의 취향과 생활을 존중하며 우리 나름의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주말이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둘째의 피아노 연주를 듣는 것이다.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하는 둘째가 곡을 쳐내려 가기 시작하면 나는 커피를 한잔 타서 앉아 음악에 빠져든다. 그렇게 조금 있을라치면 신랑이 방문을 열고 빼꼼 고개를 내민다. 이 귀한 기회를 놓칠세라 얼른 소파에 앉아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귀를 기울인다. 그렇게 몇 편의 연주가 끝나고 나면 일동 물개박수. 아들과 한바탕 애정표현을 하고 난 신랑은 제집을 찾아들어가는 소라게처럼 자신의 방으로 몸을 쏙 숨긴다. 우리 셋 또한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하고도 시시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첫째의 엉뚱한 아재개그로 배를 잡고 웃다가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을 읽기도 하고 새로 나온 영화를 보기도 하고 노래방을 틀어놓고 신나게 노래를 부르기도 하면서. 그렇게 같이 있으면서 따로, 따로 있으면서 또 같이, 강줄기가 모였다 나뉘었다 다시 한데 모여들듯 우리는 자연스레 서로 섞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한데 어우러진 채 매일의 추억을 쌓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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