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서로 성향이 극과 극인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연애 시절을 무사히 거치고 결혼까지 골인하게 된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장거리 연애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의 첫 만남은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였다. 삼십 년 가까이 지났지만 나도 아직도 그를 처음 봤던 그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갓입학해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모두 어색하게 눈치만 보고 있던 아이들 속에서 고개를 빳빳이 든 채 거리낌 없어 보이던 그는 처음부터 눈에 띄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올블랙의 패션에 누가 봐도 좀 놀았던 듯 보이는 데다 같은 또래라 하기엔 조금 성숙(?)해 보이는 외모까지. 당시 나름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이 들어오던 곳이라 날라리 같은 그 모습에 나는 적잖이 놀랐다.
(지금 생각하면 상상도 못 할 모습인데 그때는 나름 질풍노도의 시기였다고...)
그런 까닭에 선배들이 나눠준 김밥을 먹다 말고 옆의 동기랑 이야기하던 도중, 갑자기 그가 다가와선 내가 남겨둔 김밥을 가리키며 "그거 안 먹어?"하고 물었을 때는 정말로 놀라고 말았다. 아무 말도 못 하고 냉큼 김밥을 내밀었을 정도니까. 그런데 재밌는 것은, 그날 저녁 선배들에게 멋모르고 처음 받아먹은 술에 취해 정신없이 오바이트를 하고 있는 나의 등을 열심히 두드려준 이가 바로 그였다는 것.
여러 우여곡절 끝에 그해 여름 우리는 CC가 되었고, 주위 선배들로부터 징글징글하게 붙어 다니는 커플이란 소리를 들으며 대학 4년을 보냈다.
헌데 뭐가 그리 좋았을까? 지금 생각하면 아무래도 완전히 다른 서로의 성격에 끌렸던 것 같다. 나는 팔랑팔랑 좀 가볍고 유쾌하고, 그는 진중하고 믿음직스럽고(물론 연애 끝 결혼 후에는 서로 너무도 다른 그 성향 때문에 한동안 무수한 투쟁의 날들을 보내게 되었지만. 클클).
그러다 그가 군대에 다녀오느라 먼저 졸업을 하게 된 내가 서울로 취직하며 우리는 장거리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누가 봐도 이제 자연스레 멀어지다 이별하는 게 다음 수순이었다. 그런데 웬걸, 그렇게 5년 가까이 사귀면서도 우리는 헤어지지 않았다. 중간에 고비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것을 무사히 넘긴 우리는 마침내 장거리 연애의 단점을 극복하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아니, 어쩌면 장거리 연애 덕에 결혼에 이르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CC 시절 늘 붙어 지내다 보니 소소한 일로 종종 다투곤 했다. 그러던 것이 서로 멀리 떨어지자 다툴 일이 줄었다. 통화는 애틋했고 힘든 사회생활 중 그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새로이 힘이 솟곤 했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것은, 서너 달에 한 번씩 만날 때마다 둘 사이에 다시 스파크가 튀었다는 것이다. 갓 사랑을 시작한 이들처럼 몇 달마다 다시 뜨거워지는 덕분에 우리의 사랑은 채 식을 틈이 없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마침내 길고 긴 연애에 종지부를 찍고 하나가 된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우리가 진짜 인연은 인연이었나 싶다. 사실 신랑은 늘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그에 반해 나는 여기저기 관심이 많고 하나에 꽂히면 훅 빠져들었다 또 식기도 잘 식는 성격. 그런 변덕 심한 내가 유일하게 변덕을 부리지 않은 하나가 바로 신랑이다.
그렇게 연애 십 년, 결혼 이십 년, 도합 삼십 년. ENFP와 ISTJ. 서로 1도 맞지 않는 정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애 둘 놓고 알콩달콩 살고 있다. 겉으로면 보면 최악의 궁합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너무도 순탄하게 흘러온 것도 같지만, 우리는 우리대로 어른으로서 스스로 내린 결정에 충실하기 위해 서로 많이 부딪고 치열하게 싸웠다. 그리고 그런 지난한 투쟁의 시간들을 거쳐온 지금, 우리는 생각보다 잘 살고 있다. 매일매일 별다를 것 없는 일상 속 작고 소박한 기쁨들을 함께 나누며 여전히 손을 꼭 잡은 채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