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형 4개로 사람들의 성향을 가늠하던 때가 있었다. 고작 4개의 분류로 어떻게 사람들의 성향을 대변할 수 있겠냐 싶기도 하지만, 의외로 제법 그럴듯하게 맞아들어가는 혈액형별 분류에 나 또한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우리 가족은 신랑, 나, 첫째 아들, 둘째 아들 네 식구이다. 식구는 넷이지만 묘하게도 혈액형은 전부 다르다. 신랑은 A형, 나는 B형, 첫째는 AB형, 둘째는 O형.
다들 혈액형에 따라 성격도 제각각이다. 전형적인 A형인 신랑은 경상도 장남으로 꼼꼼, 성실, 책임감이 강한 반면 무뚝뚝하고 완전 재미없는, 흠흠. 그에 비해 B형인 나는 자유분방, 사람 좋아하고 좀 엉뚱한 데다 허허실실 하는 성격. AB형은 천재 아니면 바보라던가. 말 그대로 그 둘 사이를 하루에도 열두 번 오가는 첫째와 O형답게 두루두루 잘 어울리고 재치 있는 분위기 메이커 둘째.
이렇게 놓고 보면 혈액형만으로도 어느 정도 성격이 나오는 거 같다.
하지만 요즘 대세는 MBTI!
남들이 해보는 건 한 번쯤 해보고 싶은 일인으로 후다닥 인터넷을 검색해 MBTI 테스트를 찾아낸다. 제법 많은 문항을 읽어내려 나온 나의 MBTI는 ENFP. 우와~ 결과를 읽다 보니 정말 나랑 딱 맞는 것 같다. 요거요거 잼있네. 하는 김에 신랑에게도 반강제로 들이미니 ISTJ란다. 역시나 결과는 신랑의 성향과 거의 일치. 이야, 신기하다, 신기해.
그렇게 재밌다고 이것저것 찾아들어가다 마침 눈에 띈 것이 MBTI별 궁합이었으니.
근데 웬걸, 둘이 최악의 궁합이라고???
하지만 처음의 놀람과 달리 나는 이내 입속으로 '맞다 맞다'를 외치며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그래, 우리 정말 많이 다르지, 하고 수긍하면서.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두 MBTI는 상극 중의 상극이다. MBTI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도 각각의 성향을 가리키는 m, b, t, i 넷 중 단 한 항목도 일치하는 게 없다는 것만 봐도 대충 눈치를 챌 것이다.
ENFP는 꿈꾸는 몽상가, 현실에서 발이 둥둥 뜬 채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에 비해 ISTJ는 현실주의자.
인터넷에 조금만 찾아봐도 '이 둘이 만나면 파국'이라는 둥 '절대 만나서는 안될 조합'이라는 둥 하는 이야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라면 끓일 때도 계량컵을 사용하는 남자와 뭐든지 대충 감으로 계량해 버리는 여자의 조합이랄까.
.
.
.
그러나 정말로 상상도 하지 못한 것은.....첫째도, 둘째도 ENFP라는 거였다.(리얼?)
물론 MBTI야 그때그때 조금씩 다르게 나오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며 변하기도 하니까, 하고 생각은 하지만 어쨌거나 처음 두 아이의 결과를 봤을 때는 기절초풍할 만큼 놀란 것이 사실이다. 특히 큰 아들이야 나랑 원체 비슷한 구석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겠거니 싶지만, 제 아빠를 쏙 빼닮은 외모의 둘째가 ENFP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또 금방 수긍이 된다. 그래, 그런 셋이 모였으니 우리 집이 늘 시끌벅적할 수밖에...(ENFP는 같은 성향끼리 만났을 때 시너지가 폭발한다고나 할까. 쿨럭.)
그리하여 어쩌다 보니 'ENFP 셋'에 'ISTJ 하나'로 살고 있다. 하고많은 MBTI 중 하필이면 상극끼리 모이게 된 희한한 조합의 가정이 되어버린 것. 하지만 MBTI와는 별개로 우리의 가정에 별다른 문제는 없다. 우리는 아직까지 잘 살아가고 있다. 이따금 한번씩 궁금해지기는 하지만.(서방, 우리 셋만 괜찮은 거 아니지? 당신도 괜찮은 거 맞지?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