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탐하지 말 것.

마감일이 설정된 봄은 서럽다.

by 블레어

'슬슬 다시 일해야겠다'라고 마음먹었다.

이력서를 수정하고 자소서 내용을 다듬었다.

이걸 어떻게 쓰지? 고민하던 때도 잠시

일단 고! 하는 마음으로 한 줄 한 줄 써 내려갔다.


추운 겨울 해가 뜨기 전 출근하고 해가 잔뜩 진 후에 퇴근하던 삶이 기억 나서였을까

'겨울엔 일하고 싶지 않아, 봄엔 일했으면 좋겠다'

그런 작은 소망이 있었다.


그리고 성큼 봄이 오기 시작했다.


2월까지는 조금 느슨했던 마음이 3월 1일이 되자 조금씩 나를 조이기 시작했다.

계절감은 추웠지만 내 마음속 3월은 언제나 '봄'을 상징했다.

이력서를 넣고 또 넣고 또 넣는 과정을 반복했다.

서류 탈락을 숱하게 맛보고 몇 번의 면접 기회도 받았다.


그리고 언제나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괜찮아. 3월 안에만 취업하면 돼.'

그렇게 생각하며 계속 서류를 넣고 또 넣었다.


3월이 지났다.

4월이 됐다.

나는 자주 절망에 빠졌고 간혹 이겨냈다.


초연해지겠다고 다짐하던 어느 날, 또다시 받은 [귀하의 역량은 우수하나...]로 시작된

메일에 나는 무너지고 말았다.



데드라인은 빠른 효율을 이끌어낸다.

데드라인을 지키기 위해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해야 할 일을 끝마친다.

그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때 더욱 그렇다.


그러나 취업은 어떠하던가?


취업 준비의 과정은 일부 내가 통제할 수 있더라도

결과까지는 통제할 수 없다.

마지막 한 방은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실 취업은 운이 크게 작용하니까.


나는 그 '운의 타이밍'까지 통제하고 싶었다.


3월까지는 해내야 해

4월이잖아? 4월까지는 반드시 해야 해.

꼭 봄 안에는 취업해야 해.


스스로 세운 데드라인에 가까워질수록

데드라인에 맞춰 결과물을 내지 못할수록

나는 더 초조하고 불안하고 조급했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안에서]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추수감사절엔 나갈 수 있을 거야.' '크리스마스엔 나갈 수 있을 거야.' '일요일엔 나갈 수 있을 거야'

이렇게 기약 없는 기다림에 의지하던 사람들이 가장 먼저 생의 의미를 잃었다고.

대신 하루하루 성실히 임한 사람들은 생의 의미를 계속 찾아내 끝내 살아남았다고.


돌이켜보니 취업 역시 그렇다.

'3월엔 취업해야 해.'

'4월 안엔 진짜 해야 해;

'이 봄 안에는 반드시 해내야 해'


여전히 나는 통제할 수 없는 영역조차 통제하고 싶어 했으며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의 베스트 타이밍 '데드라인'까지 설정하고 있었다.


직접 설정한 '데드라인'에 가까워질수록

결과물을 받아보지 못한 날들이 길어질수록

나는 자주 불안했고 우울했으며 생의 의미를 상실하고 있었다.



강아지 산책을 하다 불어온 바람과 눈앞에 펼쳐진 싱그러운 봄의 색깔에

넋을 놓고 바라봤던 날이 있다.


문득 이 맘 때쯤, 점심시간 때 테헤란로를 거닐면서

'이렇게 날씨가 좋은데 사무실에 처박혀있다니.' 하고 투덜거렸던 때가 기억났다.


지금 그 봄을 완연히 즐기고 있으면서

그 봄 안에 반드시 해내야 한다고 초조하게 봄을 낭비하고 있었다.

작년엔 봄에 있으면서 봄을 탐냈는데

지금도 봄에 있으면서 또다시 봄을 탐내고 있었다.


마감일은 현재를 잊은 채 미래만을 호시탐탐 노리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스스가 설정한 데드라인을 벅벅 지웠다.

'이 봄 안에만 반드시 이뤄내야지.'가 아니라

'이 봄 안에 최선을 다해 임하자.'

미래에 있던 마음의 머리채를 잡고 현실로 끌고 왔다.


그제야 조급했던 마음이 놓이고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면접에 임할 수 있게 됐다.


잔뜩 탐한 봄의 대가 덕분이었을까.


비로소 계절을 탐하지 않고 풍덩 빠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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