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에서 퇴근까지, 하루 들여다보기
부다페스트에 살고 있지만 부다페스트에서 약 7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터터바녀(Tatabánya)로 출근한다. 터터바녀에는 큰 산업단지가 있고, 내가 일하는 곳은 그 산업단지 내 한국 기업의 해외 공장이다.
영업부서 소속이지만, 지금은 일련의 이유로 생산팀, 물류팀 등과 함께 공장 옆의 작은 사무 공간에서 일하고 있다. 영업부서의 신입사원으로서 하나씩 배워가는 중이다.
우리 법인에는 한국인 직원이 10명 정도 상주하고 있다. 그중에 부다페스트에 살면서 자차가 없는 직원 몇 명을 위해서 회사에서 통근 교통을 마련했는데, 그 인원이 버스를 탈 정도의 인원은 아니라 택시를 계약했다. 우리 세 명은 부다페스트의 한 지점에서 만나서 통근 택시를 타고 출근한다. 3명밖에 없는데 이왕 프라이빗하게 운영되는 김에 택시가 우리의 집 앞에 들러서 한 명씩 태우고 가면 좋지만, 그렇게 하면 시간이 더 지체되고 부다페스트의 출근길 교통난이 상당하기 때문에 이게 합리적인 결정이라고한다. 부다페스트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터라, 선배들의 조언을 따라 택시 탑승 장소와 가까운 곳에 집을 구했다. 운 좋게도 도보 10분 거리에 괜찮은 집을 찾았다.
6시 50분, 집에서 슬슬 걸어 나간다. 아침을 먹을 시간은 전혀 없고, 노트북만 잘 챙기면 다행이다. 걸어가는 길에 웬만하면 부모님이랑 통화를 한다. 헝가리 - 한국은 이 시간이 아니면 통화가 쉽지 않다.
7시 5분, 모두가 택시에 타야 하는데 변수는 항상 생긴다. 하하, 회사 다니는데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누군가는 늦잠을 자고, 누군가는 "아, 맞다! 노트북! 잠시만요! 정말 죄송합니다. 진짜 빨리 갔다 올게요. 죄송합니다!"라며 집까지 다시 전력질주를 해서 노트북을 가지러 간다. 보안상의 이유, 혹은 간혹 퇴근 후에도 일을 해야 하는 이유로 모두 노트북을 매일 들고 다니는데 아침에 정말 정신없이 나오면 그걸 깜빡한다. 그게 나인 경우에는 뛰면서 '헥헥, 평소에 운동 좀 할 걸' 하고는 진심으로 후회한다. 그런데 지각과 노트북을 빠뜨리는 일은 대부분 대리님의 몫이라는 게 함정.
그래서 출발 시간이 일정하지 않아 도착 시간도 들쭉날쭉하다. 처음엔 음악을 들었지만, 이제는 차에 타자마자 잠든다. 차에서 편하게 꿀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8시 20분, 눈 뜨니 회사라서 정말 눈을 비비면서 사무실로 들어간다. 방금 일어난 사람 여기 있습니다...
아, 우리 회사에 커피머신 같은 복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가끔 출장자분들이 사 오시는 카누 스틱커피로 하루를 연명한다. 하루에 여러 잔을 마시는 사치는 부릴 수 없다. 언제 올지 모르는 다음 출장자를 기다리며, 남은 커피를 아껴 마신다. 빈속에 커피를 한 입 마시고 마음을 가다듬으며 오늘의 전투를 시작한다.
업무 중, 아쉽게도 한가롭게 일하는 직장은 아니다. 영업부서에 있지만 공장에서 일하는 것의 장점은 실시간으로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생산팀이나 물류팀과 다이렉트로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다. 컴퓨터 앞에서 업무를 보다 고객사의 긴급한 전화를 받고 물류팀으로 뛰어가는 일이 일상이다. 다행히 현지 직원들은 일을 잘한다. 똑똑이 요셉과 산도르와 일하면서 많이 배운다. 그들과 수다를 떨 수 있는 여유는 없어서, 정은 들었지만, 끝까지 친해지지 못한 것은 아쉽다.
점심시간, 드디어 점심시간이다. 우리 공장엔 식당이 없다. 그럼 어떻게 먹느냐? 현지 직원들은 도시락을 싸 오고, 한국 직원들은 한 한식당과 도시락을 계약했다. 맛에 대한 평가는 아끼고 싶지만 슬프게도, 이 도시락은 정말 형편없다. 그래도 감사히 여긴다. 점심으로 한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게 어디야.
너무 맛이 없는 날엔 탕비실 서랍에서 컵라면을 꺼낸다. 모두가 컵라면을 찾는 날이 있어, 간혹 남아 있는 것이 하나도 없을 때도 있다. 그래도 기다려지는 점심시간이다.
택시를 타고 출근하기도 하고, 일이 많아서 자리에 꼼짝 않고 앉아 있다 보면 하루 걸음 수가 1000보 조차 안 되는 날이 있다. 그래서 조금 마음이 여유로운 날에는 대리님과 공장 주변을 걷는다. 풍경이라고 해봐야 넓은 들판, 화물차, 지게차 정도. 하지만 가끔 사슴 같은 동물을 발견하면 신기하고 반갑다. 보통은 귀여운 달팽이를 마주하는 정도다.
17시 30분, 퇴근하고 싶어서 드릉드릉한 시간. 우리의 퇴근은 눈치 게임이다. 누가 눈치를 주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통근 택시를 타는 3명의 일이 동시에 마무리되어야지 택시가 출발할 수 있다. 메신저로 몇 시까지 본인의 일이 마무리될지 살짝 공유한다. 모두가 일찍 끝나는 날은 드물다. 누군가 중요한 저녁 약속이 있는 날에는 미리 공유해야 한다. 그래야 제시간에 부다페스트에 도착할 수 있다. 보통 우리 대리님은 "곰곰씨... 먼저 가요... 저는 일 마무리가 안 돼서 다른 분 차 얻어 타고 퇴근할게요..."라고 하셔서 2명이 퇴근하는 때가 가장 많다.
19시, 부다페스트에 도착. 차가 밀릴 때도 많아서 도착 시간이 들쭉날쭉하다. 저녁 메뉴를 열심히 고민하지만, 요리를 잘하는 편이 아니라서 늘 고민만 하다 끝난다. 늦게까지 여는 마트가 없어서 퇴근길에 작은 슈퍼에서 간단한 간식거리와 맥주라도 사 본다. 한때 퇴근 후 PT를 등록해 운동했지만 오래도록 지속하지 못했다. 결국 집순이 본능에 충실하게 곧장 집으로 향한다.
20시, 나의 식사는 주로 한국 음식이다. 주말에 한인 마트에 다녀온 보람이 있다. 간장 계란밥, 카레, 라면, 만두 등 최대한 간단한 메뉴로 해결한다. 쉬는 것이 더 중요하기에 요리에 긴 시간을 투자할 수 없다. 밥을 먹으면서 넷플릭스로 한국 드라마를 보는 건 하루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헝가리에서 일하는 나의 하루는 이렇게 흘러간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고 업무 스트레스도 많지만, 사람들과 부대끼는 일이 적어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없다. 무엇보다 이 모든 시간을 버틸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 헝가리 직장인의 유일한 낙인 꿀 같은 주말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의 주말은 가히 일주일 내내 기다릴 가치가 있을 만큼 다채롭고 즐겁다. 덕분에 일주일을 살아갈 힘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