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의 느리게 흐르는 주말

by 곰곰


주말의 시작

그토록 기다리던 주말, 여느 직장인과 다를 것 없이 나의 주말도 금요일 퇴근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금요일 저녁에는 특별한 무언가로 한 주의 노고를 달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나는 이때 주로 맛있는 식사로 나를 위로한다. 가끔 한식당에 가고 싶다가도 망설이게 되는데, 부다페스트의 한식당은 마치 한국인들의 비공식 만남의 장소 같아서다. 그곳에 가면 헝가리에 있는 모든 한국인이 모인 듯한 진귀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그래서 종종 중식당으로 발길을 돌린다. 헝가리는 의외로 중국인 거주 비율이 높아 중식당의 퀄리티가 놀라울 정도로 좋다. 한국에서는 제대로 맛보지 못했던 양꼬치와 북경오리를 이곳에서 처음 경험했는데, 어느새 이것들은 나의 소울푸드가 되었다. 다만 이런 맛집들이 대부분 시내 중심부에서 떨어져 있어 택시를 타거나 차량을 가진 친구와 함께 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또 다른 선택지로는 도심의 와인바가 있다. 헝가리는 전국 곳곳에 와인 산지가 있어 합리적인 가격에 품질 좋은 와인을 즐길 수 있다. 특히 2만 원대에 마실 수 있는 토카이 와인의 퀄리티는 놀라울 정도. 이런 소소한 즐거움이 이국땅 생활의 달콤한 위로가 된다.



의외로 부지런한 토요일 아침

토요일 늦잠은 사치, 늦잠은 일요일에 자기로 한다. 부다페스트에서 보석 같은 브런치집을 발견했는데, 일요일이 휴무라 갈 수 있는 날은 토요일뿐이다. 게다가 아침 일찍 줄을 서지 않으면 먹기가 어렵다. 부다페스트에서도 '오픈런'을 해야 할 줄은 몰랐다.

이 집이 특별한 이유는 매달 새로운 메인 메뉴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제철 식재료를 활용해 매번 신선한 음식을 선보이니, 방문할 때마다 색다른 맛을 경험하게 된다. 한국에서라면 약속이 있으면 가끔 먹으러 가는 브런치가 이곳에선 주말을 시작하는 나만의 작은 의식이 되었다.



부다페스트를 탐험하는 즐거움

평일에는 미처 가보지 못했던 부다페스트의 새로운 장소들을 탐험한다. 내가 특히 즐기는 것은 평일 동안 인스타그램에서 찾아둔 새 카페와 맛집들을 저장해 두었다가 주말에 하나씩 방문하는 것이다. 일종의 '새로운 집 도장 깨기'다.

요즘은 부다페스트에도 트렌디한 카페나 레스토랑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동유럽에서 맛있고 촉촉한 빵을 맛보리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이제는 아몬드크루아상을 파는 새 베이커리에 푹 빠져있다.

이렇게 글로 쓰다 보니, 못 먹어 죽은 귀신이 들러붙었는지 온통 먹는 얘기뿐이다. 솔직히 말하면, 헝가리에서 혼자 살며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다 보니 이렇게 먹는 것에 집착하게 된 듯하다. 하하.


한국에서 목욕탕 가듯이 헝가리에서 온천 가기

부다페스트는 온천으로 유명하다. 세체니 온천, 갤레르트 온천 모두 가봤지만 물이 좋다고 한들 너무나 미지근한 온도의 온천이기도 하고, 관광지여서 그런지 힐링되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가장 자주 가는 온천은 루다스 온천인데 여기는 물의 온도가 한국의 열탕을 연상케 할 만큼 뜨끈하고 건식 사우나도 있다. 규모는 작지만 노천탕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따뜻한 물로 몸을 녹이며 부다페스트의 멋진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다뉴브강의 야경을 바라보고 시원한 밤공기를 마시는 시간은 일주일 간의 모든 스트레스를 씻어내는 마법 같은 순간이다.


혼자라서 더 특별한 시간

한국의 빠른 템포와 달리, 헝가리의 주말은 느림의 미학이 있다. 맘에 드는 카페에서 몇 시간이고 책을 읽거나, 공부하고 싶었던 분야를 깊게 파보기도 한다. 최근에는 미국에 있는 사촌 동생에게 부탁해서 영상통화로 영어회화 공부를 하기도 하고, 관심 있던 미술 클래스를 신청해서 드로잉을 배우기도 했다. 친구도 많지 않고 가족도 없는 곳이기에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 주어진다. 그 시간 덕분에 나는 지금껏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나만의 취미와 관심사를 발견하고 있다. 어쩌면 나 자신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가는 여정인지도 모르겠다.






헝가리의 매력은 때마다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봄에는 마가렛 섬에서 자전거를 타고 피크닉을, 여름에는 발라톤 호수에서 수영과 음악 페스티벌을 즐긴다. 가을이면 와인 축제가 열리고, 겨울에는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뱅쇼를 마시며 추위를 달랜다.

때때로 헝가리를 벗어나 주말을 보내고 싶을 때면, 기차나 버스를 타고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폴란드, 혹은 체코로 떠나기도 한다. 주말을 활용해 해외여행을 갈 수 있다는 점은 헝가리에서의 직장 생활이 주는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다.


이렇게 헝가리의 특별한 주말은 고단한 평일을 견디게 해주는 힘이 된다. 때로는 가족이 그리워 마음이 무거워지지만, 이곳에서 쌓아가는 소소한 행복들이 나를 다독여준다. 그래서일까, 주말이 오면 나는 나 자신에게 더욱 집중하게 된다.

이 곳에서의 주말은 나를 돌아보고, 새로운 경험을 쌓으며,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발견해 가는 소중한 시간이다. 그리고 그 시간이 있기에 낯선 땅에서의 생활도 충분히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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