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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용 May 18. 2023

오답들이 빚어내는 정답

이서수 ‘젊은 근희의 행진’ 서평

 우리 모두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필요할지 생각해본 적 있다. 이 의문에 해답을 찾기 위해서 우선 ‘우리’라는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 정의해야 한다.


https://blog.naver.com/yonggguggu/222653998560


https://brunch.co.kr/@son-yong/6


 작년에 ‘포스트 트루스’라는 책에 대해 서평을 쓴 적 있다. 그 책에서는 꽤 재밌는 주장이 나온다. 과거 우리는 마을 단위로 생활하는, 소규모 집단이었기에 그 집단 내에서의 입지, 생활수준 등을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난 지금은 고작 마을 단위 생활이 아다. 기후문제와 같이 세계가 같이 고민을 공유할 정도로 규모가 비대해졌다.


 과거 ‘우리’와 현재 ‘우리’는 규모가 다르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도 굉장히 다양해졌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 선행돼야 할 문제 해결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2023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수록작 이서수 작가님의 ‘젊은 근희의 행진’은 현재를 살아가는 청년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본작에서 근희는 청년을 대변하는 캐릭터다. 그런 근희의 당찬 행진을 가로막는 요소는 꽤 많다. 근희가 청년을 대표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소설을 읽는 내내 근희가 그래도 행진을 멈추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근희야, 사람은 땅에서 떨어져 살면 몸이 아픈 거야. … 엄마도 옛날에 아파트 살아봤어. 높은 허공에서 살아봤어. p161


 각자의 삶은 사회에서 맹렬하게 부딪힌다. 모두 자신이 걸어온 길을 해답지 삼아 판단한다. 누군가가 선망하는 아파트도 누군가에게는 ‘높은 허공’ 따위로 부를 만큼 무가치하다. 


 이러한 가치는 객관적인 지표로 정해지는 성격이 아니다. 최근 매매가와 입지 따위를 따져가며 숫자와 결과로 증명하는 가치가 아닌, 오로지 ‘나’가 내키는 대로 정해버리는 가치다.


 어떤 이는 틀렸다고 말할 수도 있는 그런 종류의 가치는, 일순 개성으로 치환된다. ‘엄마’는 결국 평생 모든 돈으로 반지하 방을 매매한다.


 최선의 선택이 아니라고 비난할 수 있으나, 그건 사실이 아니다. 각자 ‘나’의 생각을 판단할 수밖에 없다. ‘나’가 당신의 선택은 최선이 아니었다고 말해도, 그 선택을 한 당사자는 또 ‘나’로서 이건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시우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사실 잘못된 세상이야. 참 이상한 세상이야. p177


 ‘강하’는 ‘시우’에게 손 편지를 쓴다. 고작 11살인 ‘시우’가 자신의 유튜브 구독자를 빌미로 다른 원생 아이를 반쯤 협박하는 상황을 보고, ‘강하’는 분노했다. 


 ‘강하’의 분노는 유튜브 구독자를 마치 권력인양 휘두르는 ‘시우’를 대상으로, ‘시우’에게 그런 정보를 알려준 아무개를 대상으로, 그런 아무개가 활개 치게 내버려두는 세상을 대상으로 하는 권유다.


 우리 함께 잘못된 세상을 고쳐나가기 위해 힘써보자며 도움을 구하는 강한 의견 피력인 것이다. 


언니, 어쩌면 이 세계에선 진짜와 가짜의 구별이 의미 없는지도 몰라. 모두가 비트bit 위를 가볍게 흘러 다니는 건지도 몰라. p183~184


 사람 얼굴을 보면서 대화하는 것보다 카톡이나 전화 등으로 얘기하는 경우, 잘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는 최근 손에 꼽을 정도로 없지만 유튜브 영상에 댓글을 달며 일종의 소통을 하는 경우 등.


 어느 순간, 현실보다 인터넷을 필두로 한 가상공간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가상공간을 가짜라고 매도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이처럼 진짜, 가짜 구분도 사실 의견 차이일 수도 있다. 현 상황에서는 무조건적으로 맞을 수밖에 없는 ‘진짜’라고 해도 시간이 흘러 ‘가짜’로 밝혀질 수 있다. 변하지 않는 진리는 정말 희귀하다.


그런데 어쩌면 가장 진화한 형태의 생물은 아메바인지도 모른다. 모든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벗어던진 존재, 생을 가장 단순하고 솔직하게 설계한 존재, 그게 아메바인지도 모른다. p186


 오히려 단순해지는 것은 생존에 유리할 수 있다. 복잡한 고민 속에서 번뇌를 느끼며 괴로워하는 것보다 단순한 선택의 연속으로 삶을 영위하는 것이 더 스트레스가 적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행위를 회피라고 지탄할 수 있다.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 일침을 놓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나 옳은 답만으로 사람이 살아갈 순 없다. 틀린 선택도 하며, 나아가는 게 인생이다.


 공부할 때도 틀린다는 것은 중요하다. 오답노트는 정말 효율 좋은 공부법이다. 처음부터 다 맞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절대다수다. 인생에 공부처럼 오답노트를 구비할 순 없어도 비슷하게 따라할 수는 있다.


 ‘나’가 틀렸다고 생각한 다른 ‘나’들의 의견을 ‘나’의 의견과 같이 두고 펼쳐본다면, 보이지 않았던 무엇인가가 보이지 않을까, 생각하곤 한다. 결국 언제나 옳은 것이란 없으니까 말이다.



2023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2023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코멘터리북

 

작가 : 이서수

출판사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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