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혜령 ‘버섯 농장’ 서평
*본작에서는 피자의 ‘피’도 나오지 않는다.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비롯해 여러 소설을 읽다보면 읽는 도중 팍, 하고 단박에 이해되는 작품이 있는 반면, 곰곰이 생각해야 비로소 납득이 되는 작품이 있다.
여기서 이해라는 것은 작가의 의중을 날카롭게 파악해 그대로 소설의 거죽을 벗기고 드러내는 통찰력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름대로 해석해서 작중 열거된 많은 메타포를 열심히 기워 하나의 결말로 맺을 수 있는 정도를 말한다.
납득되지 않는 소설이라는 것은, 공감의 부재로부터 출발한다. 쉽게 말하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겠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라는 의견이 더 강할 때, 소설에서 하고자 하는 말과는 다른 얘기를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당연히 이런 의견을 내세우기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본작을 보다 심도 있게 이해해야 한다. 이럴 때마다 참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고마운 책이다. 해설을 달아주니까 말이다.
최근 피자를 먹었다. 넉넉한 냉동실 공간, 고장 없이 잘 돌아가는 에어프라이어와 전자렌지 덕에 피자나 배달음식을 먹으면 조금 더 많이 시키고 얼려놓는 편이다.
예전에는 그냥 지퍼백에 넣고 얼렸는데, 얼마 전부터는 무게를 재서 넣는다. 다이어트 용도라기보다는 좀 알고 먹고 싶어서였다. 이게 한 끼 분량이 맞는지, 과식인지 소식인지 알아야 할 것 같았다.
큰 피자를 시키기 때문에 보통 8조각으로 나뉘어서 온다. 남은 피자 중 보통 2개씩 한 지퍼백에 넣어 얼리는데, 무게를 재도 영 안 맞는다.
이 지퍼백에도 페퍼로니 피자 한 조각, 치즈피자 한 조각씩 넣고 저 지퍼백에도 똑같이 넣었는데, 무게가 근소한 차이도 아니고 꽤 많이 난다. 그럴 때는 억지로 페페로니 몇 조각을 빼 부족한 쪽에 우겨 넣는다.
단 한 조각 피자도 공정하게 나누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한 판의 피자는 공정하게 나눌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이미 불공정하게 난도질당한 피자를 보고 문득, 여기 8명이 앉아있었다면 몇 명은 손해 봤겠네, 라는 쉽게 휘발될 생각을 했었다.
2023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수록작인 성혜령 작가님의 버섯 농장은 책임감, 공정성 등을 말하고 있는 작품이다.
암막 커튼 사이로 얇게 스며든 빛이 침대를 칼날처럼 가로질렀다. p117
또, 작품의 특징이라면 공간적으로도, 인물 간 관계로도 마치 잘 벼려진 칼로 쓱 나눈 듯 분절시켜놓고 진행된다는 것이다.
공간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작품의 진척도와 인물의 내면, 맞닿아질 것 같지 않은 인물들의 관계는 유분리 현상이 일어난 우유처럼 섞이지 않은 상태로 독자를 맞이한다.
물론 독자는 굳이 섞을 필요가 없다. 하나하나의 이유를 파악하고 그대로 둔 다음, 더 넓은 시야에서 엮으면 그만인 것이다.
… 기진은 가끔 진화에게 진심인지 묻고 싶었다. … 회사를 나오면 다시 보지 않아도 될 사람을 어떻게 그렇게 싫어할 수 있냐고. 정말 증오해야 할 대상은 그런 회사에서 십 년간 나오지 못한 너 자신이 아니냐고. … p118
본작에서 진화는 책임감이 짓눌려 살아가는 인물이다. 진화의 오랜 친구인 기진은 진화를 잘 알지 못한다. 그들 사이에는 이미 계층 간 분리가 일어난 상태다. 굳이 일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기진이 아등바등 살아가는 진화를 이해할 리 만무하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은 그 남자애에게 인생을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적었다. 자기는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고 방안에서 술만 마시고 있어도 막 살아본 적 없다고, … p123
사기를 당한 진화는 사기 친 남자애에게 문자로 훈계한다. 이때 하는 말에는 무거운 책임감이 얹혀 있다. 진화가 줄곧 느끼는 책임감은 개인 ‘진화’로서의 책임감이라기보다는, 사회 구성원 ‘진화’로서의 책임감에 가깝다.
오피스텔에서 차로 이동하기까지 진화는 올바른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해야 하는 행위를 몸소 실천해 내고 있는 역군으로 그려진다.
“… 나는 내가 해요. 누구 안 시켜. 내가 효도하고, 내가 책임지는데, 내 손 떠난 자식새끼 인생까지 내가 책임져야 하나? …” p128
진화는 사기 친 남자애의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요양병원에 간다. 그 남자는 당당한 태도로 진화를 맞이한다. 그게 왜 내 잘못이냐고, 그건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는 말을 얹어서 오히려 진화를 훈계한다.
기성세대인 남성의 구구절절한 변명에 진화는 할 말을 잃는다. 남자는 자신의 현재 자산을 낱낱이 공개한다. 그리고 현재 몇 억이 남았고, 이대로 지속되면 자신은 몇 년 후를 장담하지 못한다는 식으로 말한다.
남자는 진화가 사기당한 금액인 7백만 원이 체 되지 않는 돈은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마치 안타깝게도 자신이 감당해야 할 일도 아닌 것에 그런 돈을 지불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기에 진화는 천천히 분노했을 것이다.
기진은 어떤 경우라도 진화가 유리해질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차를 돌리지 못했다. p131
진화와 기진이 요양병원을 떠나려고 할 때, 주차장에서 빠져나가는 그 남자를 발견하고 쫓아간다. 버섯 농장에 도착한 셋은 그곳에서 터놓고 얘기한다.
기진은 출발할 때부터 어렴풋이 느꼈을 것이다. 진화는 결코 돈을 받아낼 수 없다. 이 둘 사이의 간극은 너무 컸다.
둘은 책임감이라는 단어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너무 달랐다. 개인 입장에서 좋을 대로 편집해 받아들이는 남자, 사회적 구성원으로서 온전히 받아들이는 여자, 둘 중 사실 유리한 쪽은 남자다.
책임감의 범위가 더 협소한 남자, 즉 지킬 것이 더 적은 남자는 이 싸움에서 유리한 지점에 위치할 수밖에 없다.
햇볕을 받지 못해 모든 것이 축축하게, 은밀히 부패해가고 있는 듯했다. p133
남자가 금전적인 이유를 들며 불법적으로 거주하고 있는 버섯 농장은 어쩐지 음침하다. 죽은 나무에 기생하는 버섯처럼, 남자는 어쩌면 자신이 살아왔던 수많은 현재가 모인 과거에 기생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더 공정한 사회를 위한 희생이 아닌, 본인 안위를 위한 급급한 방어를 내세우면서 여생을 안전하게 보내려고 하는 비겁한 회피일 수도 있다.
그런 남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지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진화 쪽이다. 진화로 표상되는 사회는, 우리가 진정 원하는 공정하고 올바른, 정의로운 사회로 나타나기 때문일 것이다.
본작을 다 읽고, 글쎄, 위험한 말일 수도 있지만, ‘공정해야만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공정하다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정의하는 게 중요하다.
https://ko.dict.naver.com/#/entry/koko/74b724fd45bc4c34b0035b20de43ad11
피자 얘기로 돌아와서 말하자면, 공정함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피자 8조각을 똑같은 크기와 무게로 8명에게 나눠주는 것, 혹은 크기와 무게는 다를 수 있어도 각자 양껏 먹을 수 있게 배분해 모두 비슷한 포만감을 느끼도록 나눠주는 것이다.
본작은 마치 전자의 공정함을 얘기하는 듯 보였다. 각자 소화할 수 있는 양은 고려하지 않고, 똑같이 주어야 한다는 식의 공정함으로 읽혔다.
또, 각기 다른 피자 조각을 들고 있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문제가 발생한다는 듯한 접근도 아쉬웠다. 불공정하게 피자를 자른 사람이 문제 아닌가?
기성세대 대표격으로 등장한 남자도 사실 칼을 쥔 사람이라기보다는 피자 조각을 든 사람에 가깝다. 그 사람들끼리는 내 것이 크냬, 네 것이 크냬 싸울 필요가 없다. 근원적인 해결책과는 거리가 먼 행동인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소설 내 등장한 사기 친 남자애의 아버지인 남자를 응원한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책임을 지는 것, 그것을 알고 행동하는 것이 자신의 그릇의 크기를 아는 것이다.
누구는 그릇의 크기를 알고 살아가는 게 한계를 정해놓고 살아가는 불쌍한 삶의 태도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는 중요한 부분이라 강하게 반박할 수 있다. 크기를 알아야 부족함과 과함을 알고, 나중에는 그에 맞춰 그릇을 바꿀 수도 있는 노릇이다.
우리는 각자 들고 있는 피자를 맛있게 먹으면 된다.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왔든, 옳았을 것이다. 물론 본작이 모호하게 답을 내리는 것처럼, 본 서평도 이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답을 줄 수는 없다.
2023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2023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코멘터리북
작가 : 성혜령
출판사 :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