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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d Influence Oct 14. 2019

삶에 도전하는 요령

자전거로 산을 오를 때 나름의 요령이 있어요
- 김민식 MBC PD -


삶은 다양한 도전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아니 나약한 인간으로 태어나 살아간다는 자체가 큰 도전입니다. 우리들의 도전은 엄마의 태(胎) 속에 열 달을 살다 세상의 빛을 보겠다고 기를 쓰고 나오면서 시작됩니다. 그 후로도 기고, 뒤집고, 홀로 서며, 걷고 달리는 도전까지 수많은 도전을 통해 성숙해지며 생의 단계를 지납니다. 그렇게 멋모르고 해낸 도전의 순간을 지나면, 어느덧 도전이 힘든 것이라는 자각이 들 때가 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해내야 하는 당위성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매번 지금까지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길 위에 서있습니다. 해도 해도 끝나지 않을 것 같고,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은 도전 말입니다. 그런 순간은 항상 멈출 수도 없고 돌아갈 수도 없는 순간에 깨닫기 때문에 사람의 기가 질리게 합니다. 최승자 시인의 시처럼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은 온다” 고 한 것처럼 말이죠.


김민식 PD는 살다가 힘들 때가 오면 대학시절 자전거를 타고 한계령을 넘었던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한계령을 자전거를 타고 오르다 보면 굽이굽이 고갯길이 이어집니다. 하나의 고갯길을 다 돌았다 싶으면 또 다른 고갯길이 나와 사람을 잡습니다. 그 고비의 순간에 고개를 들어 산 정상을 바라보면 안 된다고 합니다. 산 정상을 보면서 “이 고개만 넘으면 정상이겠지”라는 생각, 이 속절없는 희망에 속고 또 속다 보면 기운이 빠져 그 자리에서 포기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럴 땐 그저 코앞에 있는 아스팔트에 눈을 고정하고 기어를 최대한 낮춰 한발 한발씩 꾸준히 페달을 밟습니다. 그러면 조금씩 나가고 있는 앞바퀴를 볼 수 있습니다. 이 앞바퀴를 굴리는 작은 성취에 집중하고 그 속에 희망을 담아야 합니다.

10여 년 전 처음으로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했던 때를 생각해 봅니다. 몇 개월 동안 훈련을 했고 30Km 이상 뛴 적도 몇 차례 있었기에 완주는 당연하고 기필코 4시간 안에 들어오겠다는 당찬 포부도 가졌습니다. 30Km까지는 예상대로 잘 달렸습니다. 그런데 33Km를 지나는 지점에서 일이 터지고 맙니다. 종아리 근육에 경련이 오고 다리가 점점 굳어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다리가 이러니 속도를 내기는커녕 걷는 것도 힘이 들었습니다. 남은 9Km 남짓 거리가 끝없이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33Km를 왔는데 여기서 주저앉을 것인가? 되돌아갈 곳도 없었습니다. 여기서 그만두면 내 한계는 여기까지라고 내 스스로 선을 그어버리는 것만 같아 애가 달았습니다. 스트레칭을 하면서 끌다시피 다리를 들어 그저 아스팔트 바닥만 보고 한발 한발 내디뎠습니다. 계속 반복되는 아스팔트 무늬에 하나 둘 하나 둘이라는 숫자를 붙여가며 뛰었습니다. 그렇게 1시간 30분을 가니 골인 지점인 춘천 운동장이 보였습니다. 33Km는 3시간에 왔지만 남은 9Km는 1시간 40분이나 걸렸습니다. 애초에 서브4(4시간 내에 주파)를 기대했던 마음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래도 완주메달을 목에 걸고 뛰어온 42.195km를 지도로 보니 다음에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이상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 후로도 저에게는 많은 도전이 찾아왔고, 스스로 시작한 도전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도전의 꼭짓점에 와 있는 느낌입니다. 사람은 항상 지금 내가 가장 힘들다고 느낍니다. 물론 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은 자기 앞의 삶을 살기 때문에 모두가 지금 힘든 시기일 수 있습니다. 아마도 잘은 모르지만 자신의 삶에서 가장 큰 도전에 직면했거나 그 속을 걸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이런 때라고 생각되면 어디가 끝인지 보려고 고개를 들지 말고 그저 한발 한발 페달을 밟아보세요. 그렇게 한 걸음씩 가다 보면 앞이 탁 트이면서 시원한 바닷바람에 땀을 식히고 있을 거예요. 우리가 넘었던 크고 작은 한계령을 생각하면서 지금 넘고 있는 이 산도 한발 한발 넘어가시죠. 힘을 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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