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od Influence Nov 16. 2019

일상의 노동이 가장 중요한 공부

‘일상’에 발이 닿지 않는 ‘이상’은 그저 흘러가는 뜬구름일 뿐

식사를 준비하고 집을 청소하고 빨래를 하는 일상적 노동을 무시하고서는 훌륭한 삶을 살 수 없다.
- 레프 톨스토이 -


논어의 첫 문장은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悅乎)’ 다. ‘때때로 배우고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로 번역된다. 동양 철학 최진석 교수는 “공자의 가르침을 한 글자로 말한다면 바로 ‘學(학)’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그런 탓인지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우리나라에서는 유난히 학습에 대해 호의적이다.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는 모습은 누구에게나 환영받는다. 어릴 적에도 다른 건 몰라도 책 읽고 공부하는 아이를 건들거나 나무라는 어른은 보지 못했다. 심부름을 시켜도 공부하는 아이에겐 시키지 않는 게 불문율이다. 또 무엇보다 책을 사는 것은 순결하고 윤리적인 행위로 숭상되었다. 어머니는 없는 살림에도 책을 산다고 하면 빌려서라도 돈을 마련하셨고, 종심(從心)에 이르는 연세가 되어도 자식들 공부 뒷바라지 제대로 못하신 게 후회라면 후회라고 공공연히 말씀하신다.

 

그래서인지 예부터 글 좀 읽는다는 이들은 글 읽고 공부하는 일을 다른 어떤 일보다 가치 있고 명예로운 일로 생각한다. 특히 집안 살림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의 위상으로 비교하곤 한다.


“이놈의 집안일은 열심히 한다고 티가 나는 것도 아니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해도 해도 끝이 없네”. 아내의 푸념은 어머니의 푸념이었고 또 할머니의 푸념이었다. 아무리 오래 해도 이력서 한 줄 채우지 못하는 주부라는 경력이 이 사회에서도 일상의 노동을 어떻게 대우하는지 짐작게 한다.


책을 읽고 공부하는 일이 일상의 노동보다 귀하다는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 살림하는 주부보다 글 읽는 선비가 존중받아야 하는 이유도 딱히 생각나지 않는다. 삶에서 공부 중의 공부는 우리의 일상을 이어주는 집안의 허드렛일이다. 일상은 섬세하다. 조금만 게을리해도, 조금만 틀어져도 삶의 굴레는 허물어진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일상의 틈에서 키워지기 마련이다.


공부의 한자 ‘工夫’는 사람이 도구를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옛사람들은 농사를 지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 바로 그것을 공부라고 생각했다. 신영복 교수는 “공부란 삶을 통하여 터득하는 세계와 인간에 대한 인식이다”라고 말한다. 이 말에 동의한다면 우리의 ‘학(學)’은 일상의 허드렛일을 존중하고 실천하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일상’에 발이 닿지 않는 ‘이상’은 그저 흘러가는 뜬구름일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 빼고 남들은 다 잘 나간다고 생각될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