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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d Influence Nov 19. 2019

가방에 책을 넣는 행위는 내가 세상을 나서는 출정식

한 권의 책을 다 읽을 만큼 길게 한가한 때를 기다린 뒤에야 책을 편다면 평생 가도 책을 읽을 만한 날은 없다. 비록 아주 바쁜 중에도 한 글자를 읽을만한 틈만 있으면 문득 한 글자라도 읽는 것이 옳다
- 홍석주 -


집을 나설 땐 항상 가방을 메고 나선다. 일하러 가는 길에도 예외를 두진 않는다. 퇴근 시 몸수색을 철저히 하는 보안 제일의 일터를 다닌 탓에 퇴근길 고역이 만만찮다. 가방을 멘 이들과 빈 몸인 이들의 줄도 달라 가방을 지닌다는 것은 일종의 차별(?)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어떤 이들은 공수래공수거를 실천한다. 며칠 전 퇴근길에 길게 늘어선 줄에 서있던 나를 보며 선배가 한 마디 했다.


“일하러 오는 곳에 뭘 그렇게 들고 다니냐?”

“책 몇 권하고 수첩 같은 거요.”

“제대로 읽지도 못할 텐데, 무겁고 번거롭지 않냐?”


일하는 사람이라 대놓고 책 읽을 시간이 없어 아침마다 책 몇 권과 수첩을 챙겼다. 하루에 몇 분의 시간이 날지 몰라 책을 고르고 가방을 챙겼다. 일과 후 차를 기다리며, 약속시간 전에 사람을 기다리며, 차를 타고 다음 일정으로 가며 읽고 또 썼다. 일과 일 사이를 메우던 허드레 시간은 반복된 일상을 따라 켜켜이 쌓여 성장의 반석이 되어주었다. 날마다 조금씩 읽고 쓰던 책과 수첩이 쌓여 방을 채우고 나도 채워 주었다.


홍길주는 「수여방필」 에서 형인 연천선생 홍석주의 독서습관에 대해  “어떤 책은 세수한 뒤 호좌건을 얹으면서 읽었고, 안채에 있으면서 속으로 외우고, 잠들기 전에도 외우는 책이 있어 매번 한 두 장을 넘지 않았지만 달이 쌓이고 해가 지나니 너덧 질의 책을 마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원래의 일과는 서로 방해되지 않았다” 고 소개했다. 일상을 살며 배우는 이의 모습이다. 예나 지금이나 책 읽기는 일상의 틈에서 이루어진다. 이 세상에 책 읽을 시간이 남아도는 이가 어디 있는가? 틈이 생기면 읽고 배우는 사람이 진정 삶을 읽고, 삶을 살아 내는 사람이지…


「읽기의 말들」을 쓴 박총의 말을 빌려 말한다. “가방에 책을 찔러 넣는 행위는 내가 세상을 나서는 하나의 출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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