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이 결코 총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을 보호하지 못하며, 칼이 결코 칼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을 이롭게 할 수 없듯이 법이 결코 법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의 편일 수는 없을 것 같은 깨달음이 왔다”
- 박완서 -
법은 법이 필요 없는 사람들에게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예부터 총이 총 없이 살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하지 않았고, 칼이 칼 없이 사는 사람들을 위하지 않은 것처럼 법 또한 법이 필요치 않은 이들의 편에 서지 않는다고 박완서 작가는 말한다. 이 땅의 법은 법에 지배당하는 민중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 법은 예나 지금이나 “용법(用法)”하는 자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이용당해 왔다.
법으로 밥벌이를 하는 이들의 행실은 민초의 정서와는 결이 다르다.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는 법조인의 입에서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업체 담당자에게 “법으로 괴롭힐 수 있는 방법은 많아요. 잘해주시면 저도 도움드릴게요.”라는 말이 나오는 것과 회사에 근무하는 법조인들이 매일 오가는 출퇴근길 도로에서 무단 횡단을 하는 것만 봐도 그들이 법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 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예는 우리가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최소한의 악용일 뿐이다.) 그런 사람들은 법을 지키는 자가 아니라 그저 법을 이용해 밥벌이하는 사람임을 스스로 증명할 뿐이다.
법은 권력의 하녀다. 진정 법을 필요로 하는 자들은 권력을 취하려 하는 자, 즉 정복하려는 자이다. 법은 항상 힘 있는 자들의 손과 발이 되어 힘없는 자들을 정복하고 그들의 목적을 위해 민중을 도구로써 수단화한다. 이 땅의 법은 힘없는 민중의 편에 서지도 피해자의 편에 서지도 않는다. 가해자를 심판한다고 해서 피해자의 피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듯 법은 피해자를 소외시킨다. 피해자의 몸과 마음은 피해의 상태로 화석이 될 뿐이다. (불공정 거래를 했다고 과징금을 수백억 때린다 해도 그저 나라의 곡간으로 들어갈 뿐이다.)
박완서 작가의 말대로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란 준법정신이 투철하거나 정의감에 불타는 사람이 아니다. 법이라면 달라는 것 없이 두렵고 싫어서 자기 양심에 걸리는 일과 법에 걸리는 일을 동일시하며 조심조심 살아온 사람들일 것이다. 법이 ‘법’ 같지 않고 법을 다루는 이들이 ‘사람’이기를 포기할 때, 정의는 사라지고 법은 사람 잡는 올가미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