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러 들어가더니 10분을 못 앉아 있고 나오니 네가 뭐가 되겠냐?” 어릴 적 어머니께 종종 듣던 잔소리다. 몸에 익지 않은 공부, 왜 하는지도 모르는 공부가 재미있을 리 없었겠지. 세상일은 번거로운 긴 시간을 견뎌내면서 제 자리를 찾아간다고 해야 할까. 그런 유년시절을 지나 대학을 거치는 동안 책상에 앉아 책을 보는 일은 견디는 일에서 일상의 일로 자리를 잡아갔다.
“한 명의 천재가 만 명을 먹여 살린다”라는 소위 ‘천재 경영’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기업 총수의 주장이라 그런지 너나 없이 국내는 물론 해외의 박사들을 끌어모아 매달 떼로 채용을 했다. 그들의 이력서를 보고 있자니 “이 사람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부터 12년, 그 이후로도 10여 년, 도합 20여 년의 세월을 공부만 하고 살아왔구나” 하는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대리 시절 그런 인재들을 교육하는 일을 했을 때 어떤 박사에게 “박사님은 머리가 좋은가 봐요. 얼마나 공부를 잘하셨으면 석사도 아니고 박사까지 하셨어요?” 하고 물은 적이 있다.
그는 “제가 생각하기엔, 머리가 좋다기 보다 오랜 시간 동안 앉아서 공부하는 걸 잘 견딘 사람들이 박사가 되는 것 같아요. 박사학위 받기까지 공부하고 논문 쓰고 하는 시간이 정말 오랜 시간이고 그걸 견뎌내는 게 가장 힘든 일인 것 같아요. 머리가 좋으면 도움은 되겠지만, 그래도 일정한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라고 지난 시간을 돌아보듯 말했다.
그 후로 몇 명의 박사들과 얘기를 나눴을 때도 박사가 된 비결은 한결같았다. 오래 견딤이, 오래 앉아 있을 수 있음이 박사를 만드는 것 같다고…견뎌온 사람들의 말이었다.
머리로 승부해야 한다면 자신 없지만, 오래 견디는 건 해볼 만하다는 패기가 복받쳐 올랐다. 그래서 그랬을까. 이듬해 바로 학문의 길로 들어섰다. 들어서 보니 알 것 같다. 가장 힘든 것이 오래 견뎌야 하는 것이고, 가장 두려운 것이 오래 견디지 못할까 하는 조바심이다. 이제 “오래 견딜 수 없다면 아주 작은 일조차 해낼 수가 없다”는 이항로의 말은 회초리가 되었다.
“학문에는 기적이 없다. 다만 축적의 결과만 있을 뿐”이라는 은사님의 가르침을 통해 오랜 시간 인고의 이유를 헤아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