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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d Influence Jan 16. 2020

통영의 굴, 벌교의 꼬막

새해가 되고 맞이하는  번째 일요일이었을 것이다. 오랜만에 들른 처갓집 저녁 밥상에 굴이 올라왔다. 형광등에 반사되어 반짝이며 하얀 몸체를 드러낸 싱싱한 굴의 위풍은 그 기세가 나무랄 데 없이 당당해 보였다. 평소에 즐겨 찾는 음식은 아니지만 하얀 굴의 속살과 빨간 초장의 조합이 입에 침을 고이게 할뿐더러 “생물이나 다름없는 싱싱한 것이니 많이 먹으라”고 권하시던 장모님의 정성에 한 젓가락 집어 절반을 초장에 담갔다가 입으로 넣었다.


뭐랄까? 오랜만에 맛을 본 느낌은 마치 넓디넓은 바다를 농축해 액기스만을 모아 작은 살 속에 넣어 만든 듯 입안에 바다 향이 가득 퍼지는 것은 물론이고, 굴 특유의 비릿함을 모두 덮어버릴 만한 신선함이 있었다. 통영에 사는 지인이 따자마자 택배로 보낸 것이라 했는데 과연 제철에 만난 살집 많고 여물대로 여문 굴의 맛이었다.  


누가 뭐래도 굴은 통영이 최고다.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굴의 70%가 통영산(産)이다. 통영 굴은 자연산이 아니라 양식굴이다. 통영에서 굴을 양식하는 방식은 종패(種貝)라는 씨받이 조개를 줄로 묶고 바다에 담근 다음 이태를 기다린 뒤에 걷어 올린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료를 주면서 키우는 양식과는 다른 방식이다.


통영 앞바다에서 줄을 타고 올라온 굴은 박신장에서 삼삼오오 모여 앉은 아낙들에게 껍질이 벗겨진다. 그런데 굴 껍데기 까는 일이 들어보면 아주 눈물겹기 짝이 없다. 알굴 1Kg을 까면 몇 천 원 정도 받는다고 한다. 굴 하나의 무게가 얼마나 되겠나? 아무리 큰 굴이라도 껍데기를 빼면 10g 이하이다. 하나에 10g이라고 치고 계산해 보면 100개를 까야 몇 천 원을 받는 셈이다. 대략 하루 10만 원을 벌려면 몇 천 개의 굴을 까야한다. 그래서 통영에 굴 까는 아지매들은 하나같이 손목이 시리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박신장 굴까는 장면

# 시댁인 해남에 다녀온 여동생이 오랜 시간 동안 차 안에서 허리를 못 펴고 왔다고 연신 죽겠다고 하면서도 해남 시장에 갓 올라온 꼬막(피조개)을 본 것 가지고 감탄을 연발했다. 주먹만 한 꼬막이 피를 머금고 쌓여 있는데 삶아서 그냥 먹거나 양념장을 올려서 먹으면 제철 꼬막의 쫄깃함이 말도 못 한다고 했다.


꼬막을 먹어 본 지가 언제인가? 어느 막걸리 집에서 삶은 꼬막과 막걸리를 기울였던 것이 벌써 이태 전 겨울이었다. 실로 잊었던 혀의 기억이었건만 뇌에서부터 혀까지 거꾸로 전달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여동생이 꼬막을 본 것은 해남에서였지만 꼬막 하면 벌교산(産) 꼬막을 최고로 쳐준다.


벌교산이 최고의 대접을 받는 것은 벌교 앞바다의 지리적 특성 때문이라고 한다. 고흥반도와 여수반도가 감싸는 벌교 앞바다 여자만(汝自灣)의 갯벌은 모래가 섞이지 않은 데다 오염되지 않아 꼬막 서식에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어서이다. 2005년에는 해양수산부에서 여자만 갯벌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상태가 좋은 갯벌로 평가했다. 그런 갯벌에서 자란 꼬막이니 최고가 아닐 수 없다. 예부터 “벌교 가서 주먹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꼬막을 먹는 것과 싸움을 잘하는 것과의 상관관계는 모르겠지만 쫄깃한 꼬막에는 단백질과 필수 아미노산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고 하는데, 혹시 이것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고집을 부려보고 싶다.


꼬막 중에 최고는 피조개이다. 정말 피조개는 사람처럼 붉은 선혈을 뚝뚝 흘린다. 원래 조개나 연체동물은 혈액 속에 구리를 함유한 헤모시아닌을 가지고 산소를 운반하지만 꼬막류는 철을 함유한 헤모글로빈을 가지고 있어 붉은 피를 흘린다고 한다. 피조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양식되는데 특이하게 양식이 자연산보다 맛이 좋고 가격도 세배 정도 비싸다고 한다. 멋모르고 벌교식당 가서 자연산, 자연산 하면서 촌발 날리지 않기를 바란다.


꼬막 채취는 예부터 아낙들의 몫이었다. 겨울이면 따뜻한 봄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널배에 한쪽 다리를 걸치고 한쪽 발로는 뻘밭을 밀며 꼬막을 채에 걷어 올렸다. 칼바람 부는 갯벌에서 시린 손발을 달래 가며 갯일을 하는 것, 이건 말만 들어도 고달픔이 느껴진다. 조정래 소설 『태백산맥』에도 꼬막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의 말을 빌리자면 갯벌에서 꼬막 캐는 일은 천하기로도, 고달프기로도 농사짓는 것은 비할 바가 못 되는 막일이어서 그 고달픔은 고스란히 가난한 아낙들의 한이 되고 서러움이 되었다고 한다.


# 비슷한 시기에 수확되는 굴과 꼬막은 경남 통영과 전남 벌교의 대표 수산물이다. 이 두 조개류가 우리의 상에 오르기까지는 예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아낙들의 눈물과 고단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초장이던 양념장이던 낼름 찍어 입에 넣기 전에 그녀들의 고단함을 생각하며 고마움까지 얹어서 먹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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